미디어/영화

영화 <쁘띠 마망>, 나에겐 동화로 보이지 않던 동화 같은 영화

비상하는 새 2022. 3. 5. 15:54
반응형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 셀린 시아마의 영화 <쁘띠 마망>을 봤다. 제목의 petit maman은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면, 어린 엄마(?) 정도 되려나. 영화의 화자는 어린 여자아이 넬리(조세핀 산스)다. 그녀는 부모님과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뒷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양로원과 시골집을 방문한다. 시골 집 근처 숲에서 넬리는 자신의 엄마와 이름이 같은 소녀 마리옹(가브리엘 산스)를 만나 친구가 된다. 알고 보니 마리옹은 엄마의 어린 시절이었고, 넬리가 궁금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의 같은 시공감을 경험하면서 엄마에 대해 더욱 이해하게 된다. 영화 중간중간 웅루한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넬리가 외로워하고 불안해하는데, 어린 시절 엄마(극중 친구)가 넬리에게 엄마가 감정적으로 힘든 건 네 탓이 아니라는 말에 걱정이 많이 사라진다. 

 

 감독은 부녀관계와 다른 모녀관계의 특수한 유대감, 친밀성, 애착관계에 대해 아름답고 동화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이 비뚤어져서인지, 나는 마리옹(엄마)이 넬리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의 꿈이었던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23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길러야 했던 마리옹, 할머니(마리옹의 엄마)의 병을 앓지 않기 위해 어린 시절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평생 몸이 불편한 할머니(마리옹의 엄마)를 보살펴야 했기에 그녀의 삶에 깊이 베여있는 고단함에 대한 공감과 위로는 충분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공감과 위로는 자식에게 얻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건 부모와 자녀의 역학 관계가 역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방식이 부모에 대한 공감과 위로, 이해를 어린 자녀에게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은 흐름이라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감독이 시나리오도 썼다는 점에서 감독의 어린시절 엄마는 극 중 마리옹처럼 자녀에게 감정 표현을 안하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안해줬었나 보다. 소통이 아예 단절된 듯한. 어른들끼리의 일이 있고 어린이들은 알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그래서 감독은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엄마의 어린 시절로 가서 친구가 되는 설정을 만들었겠지? 반대로, 나는 성장과정에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졌으리라. 마치 강요된 공감, 자녀의 위치에서는 해줄 수 있는게 없는 데도 딱한 사정을 계속 듣기만 해야했던 무력감이 다시 상기되어서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동화적 장치들을 아름답게만 느낄 수 없었다. 영화는 친구같은 모녀관계에 대한 환상이 떡칠된 한 편의 아름다운 유화인 듯 보이지만, 그 유화의 스케치에는 상대방의 어두운 희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 모든 인관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 특히 모녀관계에서도 적절한 애착 설정이 중요한 것이지만 자녀를 부모의 위치로의 역전을 강요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기하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