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가 감독을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봤다. 그녀가 배우로서 무력감에 시달리던 시절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화연출을 전공하면서 제작한 3편의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묶어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1막 <여배우>에서는 과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던 여배우 문소리가 나이든 이후, 캐스팅이 불발되고 일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립영화 캐스팅 자리를 거절하면서 모인 그들은 한국영화가 형사물 아니면 조폭물이니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자조섞인 이야기를 내뱉는다. 이런 와중에 대중에게 이미 알려진 여배우로서의 일상 생활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친구들과의 등산 후 식사 자리에 우연히 합석한 남자들이 외모 평가를 일삼으며 그녀에 대한 존중은 1도 없는 언사들을 내뱉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공인이기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자유롭게 화를 내는 등의 감정표현도 하지 못한다. 공인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회적, 도덕적 역할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2막 <여배우는 오늘도>에서는 배우, 딸,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5중고에 시달리는 그녀가 보인다. 특히 남배우라면 겪지 않았을 돌봄 노동에 대한 그녀의 시선이 잘 담겨 있다.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급 노동인 돌봄 노동을 강제당하면서 일까지 해내야하는 N포의 정반대 N중고의 상황에서 요리죠리 기예하듯 살아간다.
3막 <최고의 감독>에서는 과거 작업을 같이 했던 영화 감독의 장례식장에서의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예술로서의 본질(무엇이 진짜 영화고 가짜 영화인가)에 대해, 작품과 창작자의 관계에 대해, 영화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이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엔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한 고인이 된 감독에 대한 아름다운 시선이 있고, 그녀와 함께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던 인물들이 다함께 해장국을 먹으러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결국, 그녀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핵심 줄기는, 대한민국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팍팍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도치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대한 그녀만의 숭고한(?) 애정이 팍팍 묻어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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