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김명희

비상하는 새 2022. 2. 24. 09:51
반응형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페미니즘 프레임 :

 

(209쪽)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 여성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돌봄이나 애착과 관련 있다. 그래서 남성은 진취적, 지배적 성향을 갖고, 여성은 타고난 모성애와 돌봄 성향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폴스키 같은 뇌과학자는 최신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서, 공격성은 테스토스테론보다 사회적 학습과 더 관계있고, 테스토스테론으로는 사람들 사이에 누가 더 공격적인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고 이 호르몬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테스토스테론의 역할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사폴스키 책에 소개된 유명한 실험연구에서 서열이 확실한 탈라폰 원숭이 무리 중간 서열에 해당하는 원숭이에게 테스토스테론을 과량 주입하여 그들의 공격성 수준을 높였다. 그랬더니 자기 보다 서열이 높든 낮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도전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서열 낮은 원숭이들만 골라서 공격하더라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냈다기보다, 기존의 공격성 유형을 그저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19) -> 강약약강 오지고요 ㅋㅋ

 

옥시토신 또한 언제나 한결같은 사랑의 호르몬이 절대 아니다. 테스토스테론과 마찬가지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나와 같은 편을 대할 때는 더 친밀하게 만들어 주지만, 위협으로 여겨지는 타자를 만나면 더 가혹하게 대하도록 만드는 것이 옥시토신이다. (21)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생물학적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고도의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구조나 기능에서 남녀간 차이는 미미하거나 거의 없고, 공격성과 돌봄이라는 전형적 남녀 특성과 관련된 호르몬도 사회적 학습과 맥락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남녀 차이를 매일 목격하고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성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적 제도나 젠더 고정관념 위협 같은 사회적 차별 구조는 가린채 말이다. (23)

 

 

머리카락 길이와 스타일만으로 특정 집단을 식별해 낼 수 있을 만큼(히피 문화, 스킨헤드 등등), 그 상징적 의미가 크다. 털은 생물학적 본성보다는 사회적 의미가 크고, 또 이것이 질병 문제는 아닌 탓에 보건학이나 의학 분야에서는 오히려 털에 대한 연구가 적은 편. (29)

 

몸을 덮는 털은 대개 이차성징과 함게 나타나는 성인의 징표이다. 남성의 털이 성숙함, 경쟁력, 공격성을 상징한다면, 여성의 털 없음은 성인 이전의 무해하고 수동적인 상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모에서의 젠더 차이는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39)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올랭피아>를 예로 들며 시선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고, 여성은 바라보이는 존재로서 자신을 관찰한다. 이는 대부분 남성-여성 관계를 결정지을 뿐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와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 안에 있는 여성의 탐구자는 남성이고, 탐구되는 자는 여성이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을 객체, 특히 시선의 객체, 볼거리로 전환시킨다현실에서 여성은 눈을 빼앗길 뿐아니라 남성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또 그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몸을 변화시킨다. (52)

 

피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 여성의 비타민 D 결핍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 햇빛이 강한 여름철에 혈중 비타민 D 농도가 오히려 낮아지는 점은 실외 활동 부족과 햇빛 노출을 기피하는 현상 때문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들이 미인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보아 하얀 피부에 대한 열망은 딱히 서구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사실 하얀 피부는 논밭이나 야산에서 험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생활을 보증하는 유구한 계급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비타민 D 부족이지만. (59)

 

보고서에서 말하는 성애화는 단순히 어린 소녀들이 화장하는 행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애화는 어떤 사람의 가치가 다른 특성은 배제한 채 성적 어필이나 행위에서만 비롯된다고 여겨질 때, 육체적 매력이 협소하게 정의된 섹시함으로 등치될 때, 어떤 사람이 독립적 행동과 의사 결정 역량을 가진 개인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타인의 성적인 목표에 이용될 때, 개인에게 섹슈얼리티가 부적절하게 부과될 때 일어난다. (65)

 

성애화는 소녀들이 자기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여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다루게 만든다. 이러한 자기 대상화는 자신의 외모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검열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낳는다. 외모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이 한정된 인지 자원을 고갈시키기 때문에 성적이 하락할 수 있다. 또한 자기 대상화는 신체적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육체 활동을 제약하고 자기 몸에 대한 확신과 안정감을 침식하며 사회적 미의 표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심과 불만을 갖게 한다. (67)

 

목소리

 

순진무구하고 귀여운 어린이 행세를 함으로써 자신이 위협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타인의 심기를 살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이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 내는 것. 이것이 여러 커뮤니케이션 방법 가운데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면 취향과 선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애교가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리고 이 방법만을 강요당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77)

 

1990년대 호주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비교 분석한 결과, 눈에 띌 만큼 여성들의 목소리 톤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이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것과 관련지어 해석했다. 굳이 애교를 발산할 필요가 사라지고, 공적 영역 진출이 늘어나면서 보호 본능보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저음의 목소리로 점차 이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83)

 

어깨

 

유방

 

심장

 

심근경색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즉각적인 의료 대처를 하지 못했다. 여성은 민폐를 끼치거나 소란을 떠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혹은 별것 아닌 문제로 밝혀졌을 때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구급차에 연락을 취하거나 응급실 방문을 미뤘다. 자칫하면 나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조차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은 비단 의료 서비스만이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관찰되는 여성적속성이다. (128)

 

비만

 

오늘날 비만에 대한 비난과 편견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기 관리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다. 비만은 의지박약과 게으름의 상징이다. 심지어 이런 개인의 나태함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까지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개인의 식생활과 신체 활동, 라이프 스타일이 모두 합리적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인데, 하지만 과연 그런가? 비만은 다른 많은 건강 문제가 그렇듯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 (138)

 

국내 통계에서도 사회적 지위와 비만율 사이에는 역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여성에게서 특히 뚜렷하다. 여성의 경우 고학력일수록 체질량 지수가 낮았고, 남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소득에 따른 비교에서도 남자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여자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비만율이 낮아지는 뚜렷한 역 관계를 드러냈다. 가난이라는 굴레와 비만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짝을 이루는 가운데, 젠더 이슈까지 얽힌 상황이다. 여성에게서 이토록 뚜렷한 불평등 현상이 관찰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외모에 대한 젠더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가운데 사회적 불평등이 교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40)

 

자궁

 

성매매처벌법에 의해 성매매, 성매매 알선 행위 모두 금지되어 있지만, 국가는 특정 업종의 여성노동자를 콕 집어 지목하며 성병 검진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남성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불법이지만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매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강제할 필요도 없고, 검진 대상자의 성별을 특정할 필요도 없다. 식품을 다루는 종사자들은 식품위생법에 따라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보건증을 발급받는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품 구매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여성 종사자 대상의 성병 검사 또한 남성성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해 여성생식기의 위생을 보장하는 조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158)

 

생리

 

한국인의 키와 체중,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등은 국가 평균을 주기적으로 산출하고, 심지어 연령별, 성별, 지역별 평균값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이 평생 경험하는 생리에 대해서는 평균과 표준을 잘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무월경이나 생리 주기 이상 같은 문제를 경험하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이들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여성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되는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68)

 

다리

 

여성의 많은 신체 부위가 그렇지만 다리는 생식기관이 아님에도 복잡한 성적 의미를 갖는다. 경건한 자리에서는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고, 기왕 드러내야 하는 곳에서는 엄격한 미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거나 쩍벌녀가 되어서도 안 된다. 여자니까 치마를 입어야 하지만, 너무 짧은 치마는 미풍양속을 해치니 단속감이다. 참 어렵다. 조신하되 섹시하고, 건강하되 근육은 없어야 한다. (181)

 

하지만 서 있는 자세가 모두 건강에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세를 자유롭게 변형하지 못한 채 불편한 자세로, 심지어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장시간 서서 일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183)

 

당시 원진노동환경연구소에서는 일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직접 신체검사를 실시했다. 그랬더니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지정맥류 비율이 34.1%. 대개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에서는 그 비율이 4.1%로 나타났다. 나이, 가족력, 비만 여부 등을 고려하고 분석했을 때 3년 이상 서서 일하거나 5년 이상 서서 일한 경우 하지정맥류 위험은 각각 8, 12배 이상 높아졌다. (186)

 

목숨

 

아무런 인위적 조치가 없는 경우, 여아가 100명 태어날 때 남아는 105~106명 정도 태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라 106을 보통 자연성비라고 한다. 그런데 1981년 이후 국내 출생 성비는 106을 줄곧 넘었을 뿐 아니라 1986111.7, 1988113.2, 1990116.5 같은 피크를 보여 주었다. 심지어 1990년 경상북도와 대구의 출생성비는 각각 130.6129.3이었다. (192)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일탈로 결론 내려졌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망상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법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조현병 환자가 독재 정권이 나를 미행하고 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는 망상에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당대의 사회적 관습 안에서 망상의 내용도 구성된다. 그것이 정신질환자의 망상일지라도 불특정 여성을 증오하여,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범죄를 저지른 이 사건은 개인적 수준에서는 아닐지라도 사회 수준에서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19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