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딴짓 좀 하겠습니다>, 박초롱

비상하는 새 2022. 7.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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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좀 하겠습니다>

(175)

 

 

들어가며 딴짓을 권합니다 005

 

이렇게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딴짓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니즈는 많다. 왜 그럴까? 하나, 딴짓을 하면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지 못한다.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로 어른이 되면, 정말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딴짓을 통해 이런저런 일을 조금씩 경험하다 보면, 자기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떨 때 기쁨을 느끼는지 찾을 수 있다. , 딴짓을 하는 순간은 오롯하게 자신의 것이다. 밥벌이에 치이다 보면 스스로를 위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시간을 잡아먹힐 때가 많다. 딴짓은 소소할지언정 분명하게 그 시간에 대한 의미를 준다. 누군가에게는 딴짓이 단순한 취미가 될 수도, 혹은 미래를 위한 투자나 투잡의 기회를 엿보는 실험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일도 더 많다고 말했다. 딴짓을 하는 건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 (9)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고리타분함 013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성공했다고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분명한 행운이지만 만족스러운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노동 시간, 임금, 평판, 발전 가능성 등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가 그 일이 싫어진 사람이 얼마나 숱한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나 임금이 적어도 된다는 착각, 하루에 열 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일해도 괜찮다는 오해는 접어 두자. 직업으로 삼을 때 필요한 건 그 직업이 갖는 일상적인 루틴의 만족스러움이다. (16)

 

| 나는 과연 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019

 

나는 정말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걸가? 과연 주체적인 노동이란 무엇일까? 사회학자도 아닌 내가 주체적인 노동에 대해 정의할 깜냥은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일하면서 착각일지언정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정리하자면 대략 세 가지 인 것 같다. 하나,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내 일이 개인에게, 조직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일이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셋 중에 두 가지 이상은 만족스러워야 그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 내가 하는 일이 나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는 안 된다. 노동의 대가가 직접적으로 내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정도는 되어야 했다. 나의 노동과 그 결과가 지나치게 멀리 떨어지면 내 손으로 일하고 있다는 감각이 떨어졌다. 그건 나를 어떤 부품처럼 느껴지게 했다. , 내게 노동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24)

 

|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025

 

어쩌면 회사 같은 조직에서 나라는 개인이 유일무이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었나 싶다. 한 사람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은 건강하지도 않거니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기업이 가진 다양한 자원 중 가장 변할 가능성이 큰 인적 자원에 의지하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회사가 가 아니라 회사원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300

 

| 안정적인 궤도를 벗어난다는 것 031

 

| 퇴사할 회사를 찾습니다 038

 

| 어차피 남의 일 해 주는데 뭐가 달라? 044

 

한 사람의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이 오로지 이 된다는 것은 천박하고 촌스러운 일이다. ‘가치를 서열화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 자본과 그 사람의 사상, 정치적 견해, 회사 외의 사회적 활동을 무시하고 월급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건 배를 곯아 본 나라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45)

찬 바람 쌩생 부는 노동권익의 사각지대에 서 있지만, 이곳에서 나는 조금 더 자유롭다. 미약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주체적이라 착각하며 살 수 있다. 물론 그 주체성이라는 건 미미하다. 허나, 내가 선택한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는 문제는 나 같이 자존심 강한 사람에게는 너무 중요한 가치. 두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나 프리랜서, 자영업자로 일하는 것 모두 남의 일을 대신해 주고 돈을 버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적당히 견딜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지점에서 일한다. “그래 봤자 프리랜서지하여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내 일과 일하는 방식이 자랑스럽다.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49)

 

| 사회적기업에서 일한다는 것 050

 

여러 형태의 노동을 경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디에도 천국은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작은 지옥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51)

 

| 꼭 정규직이어야 하나요? 056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면 회사를 다니는 의미가 훨씬 풍부해진다. 회사에 있는 동안 내가 원한 것은 급여와 약간의 커리어, 그리고 배움이었다. (60)

 

| 직업 선택의 세 가지 원칙 062

 

월말이 오면, 두 가지를 지키는 게 몹시 어렵다. 돈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돈에 속박되지 말 것. 미래를 생각하면서도 오늘을 살 것. 하여,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나름의 세 원칙을 정했다. 첫째,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셋째, 최적생계비(최저가 아니다)를 받을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 (65)

 

| 프리랜서, 휴식의 리듬 만들기 068

 

프리랜서의 프리는 자유롭게 일한다는 게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보는 게 낫겠다. 자유의 값에 놀라며, 혀를 내두르며, 불평불만을 쏟아 내며 뒤돌았다가 기어이 다시 와서 그 값비싼 자유를 사는 사람. 자유의 값을 치르느라 일감을 찾아다니고, 영업을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더 적은 돈을 받고, 법의 테두리 망 밖에 있는 것을 감내하는 사람. (70)

 

| 프리랜서, 노동의 리듬 만들기 075

 

| 프리랜서가 지켜야 할 덕목 081

 

장사봉사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취지가 좋으니까, 혹은 의미 있는 일이니까 같은 핑계로 임금을 깎거나 아예 주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의 취지가 얼마나 좋든, 임금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꼭 대가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봉사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봉사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함께해도 좋다. 다만 장사꾼에게 일꾼 취급을 당하면서 자원봉사자의 영예는 누리지 못하는 상황만은 피하자는 것이다. (85)

 

| 딴짓을 오래 할 수 있는 원동력 087

 

딴짓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의외로 소소한 인정에 있다. 커다란 성과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 작지만 여러 번의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이 전체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데 좋다고 한다. (90)

 

| N잡러는 어떻게 일을 구하나요? 093

 

농담처럼 프리랜서는 갑을병정에서 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여, 갑을 잘 아는 것보다 병을 잘 아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98)

 

| N잡러의 끝은 자영업자? 100

 

나는 이거나 할까족이었다. 서점이나 할가. 술집이나 할까. 제주도나 내려가서 살까. 요즘은 점점 이것도 했네족으로 변하고 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술집도 오픈했고 제주 대신 시골살이 1년도 했다. 이렇게 살면서 느낀 건 세상에 이거나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일이 고되었다. 저마다 제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데 담장 너머로 눈만 흘깃거리며 건너편의 삶을 이거나로 폄하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한다. (106)

 

| 자유로운 자영업자는 모순일까? 107

 

| 충고할 거면 돈 주고 하세요 111

 

고작해야 책으로 쌓은 탑은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야 눈으로 보는 것들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데미안>에서 받은 감명은 포르쉐를 타고 내리는 중학교 동창 앞에서 사라지고, <오래된 미래>를 읽어 봤자 샤넬백이 안 갖고 싶어지기란 쉬운 게 아니니까. (113)

언젠가 내 삶의 범위를 1000에서 +1000까지, 언젠가는 10000에서 +10000까지 넓혀 볼 생각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처음과 같은 0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0은 처음의 0과는 분명히 다를 것 같다. (115)

 

| 지출 줄이는 것의 중요함 116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수준까지만 벌고 그 이상의 시간은 자신의 다른 욕구를 위해 쓰라고 강신주 작가가 어느 책에서인가 말한 기억이 난다. 지출을 줄이면 닥쳐올 삶을 살아갈 자신감이 생긴다. (122)

 

| 언제 겨울이 올지 모른다 124

 

| N잡러 방황 극복 노하우 129

 

| 무계획이 정말 완벽한 계획일까? 135

 

| 다짜고짜 같이 일해 보자는 사람들에 대하여 140

 

| ‘여성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 144

 

그러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대 발언을 한다는 것은 이제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 힘을 인정한다는 의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용감한 행동으로 취급되는 것은 상대가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누구도 약한 동물이나 벌레를 괴롭히는 자를 용감하다고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페미니즘이 상식이 되고 지성인들의 교양이 되는 사회에서 반대 발언을 하는 건 확실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에서도 이미 지성이 용기의 전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145)

차별적인 말을 들었을 때 그것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눌러도 된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상식적이지 않은 말을 듣고도 그것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상식인 줄 아니 말이다. 김형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명예를 잃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을 때 진짜 명예가 훼손되는 것이라 했다. 모욕적인 말을 듣고 교양 있게반응하는 것은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으면서 점잖게 대응하기까지는 적잖은 경험이 필요하다. (148)

 

| 결혼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149

 

나이가 들수록 아이를 가지는 게 더 힘드나, 아마 이 결정은 마흔을 넘기면서 보류에서 확정으로 변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선택은 한 셈이니, 그에 대한 결과 역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밥벌이와 마찬가지로 결혼과 출산 같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 역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했느냐는 사실은 내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쩌다 보니, 우물쭈물하다가, 남들이 다 하니까 등의 이유로 하게 된 선택에는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결과가 좋아도 기꺼이 행복해하지 못하고, 결과가 나빠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한 선택이라는 점을 인지하면, 결과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내가 지게 된다. 결과가 나빠도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153)

 

| 내 정체성에 이름 붙이기 155

 

| 회사도 동아리도 아닌 느슨한 커뮤니티에 터 잡기 160

 

| 옮겨 타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면 166

 

나오며 나의 일을 만들어 가는 것 172

 

그럼에도 나에게 맞는 일의 형태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이유는 일Works이 내게는 단순한 노동Labor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통해 돈만 버는 게 아니다. 이것으로 나를 찾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삶의 의미도 더듬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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