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함께 춤을>
들어가는 글_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 그 고유한 삶의 연결
더 이상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 질병은 우리 몸을 변화시켰고 고통을 주었고 삶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 길을 가길 권장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몸으로 어떻게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아픈 몸을 차별하는 사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탐색하고, 아픈 몸들도 배제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하면서 천천히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다. (20)
1장. 나는 내 질병이 부끄럽지 않다_다리아
아파도 돼, 네 탓이 아니야 : 내가 가진 질병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알면 병을 이해하는 걸까? 나는 ‘난소낭종’을 자주 검색하지만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얻어도 불안은 여전하다. 오히려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더 강해진다. 조한진희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질병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두려움은 질병 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상해봄으로써 상쇄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난소낭종에 관한 글을 아무리 읽어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질병 세계는 의학적 설명이 아니라 아픈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야 하는구나! 질병을 겪은 사람들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내 불안이 힘을 잃게 되겠구나! 같은 맥락일까. 신기하게도 내 질병 서사를 글로 쓰고 드러내면서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었다. 또다시 낭종 제거 수술을 받을 경우,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아파도 돼. 혹이 생긴 것은 오롯이 네 탓이 아니야. 병이 너를 완전히 뒤덮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지 마.’ 나는 지금 질병과 나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과정에 있다. 그렇다고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하루 종일 불안에 휩싸여 전정긍긍하지 않을 준비는 하고 있다. (37)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프면서 내 관심은 자연스레 내 몸으로 향했다. 나에게는 몸을 잘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몸 돌보기는 마음 돌보기와 다르지 않다. 나는 몸과 마음을 돌보며, 여유롭게 편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나라 생각일랑 하지 않는 이기적인 바람이라면, 차라리 나는 애국자가 되지 않겠다. 그러니 누구도 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 (47)
수치심을 느끼는 대신 아프다고 말하기 : 치질을 비롯해 질병으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은 사회 문화적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해로운 수치심이다. 수치심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병을 숨기다가 더 심각한 상태가 되기도 하니 얼마나 해로운가. 하지만 먼저 돌아보고 바꿔야 할 것은 질병에 대한 사회적 시선일 터다. 환자를 놀리거나 웃음거리로 소비하고, 낙인찍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말고 질병을 드러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질병을 앓더라도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77)
나의 경험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다 :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지난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동안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당연시한 것에 물음을 던지고, 의심하기도 한다. (82)
2장. 조현, 그 이상의 삶_박목우
상처입은 치유자가 된다는 것 : 증상은 신체의 작용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의 생애사와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희망의 심장박동>을 쓴 대니얼 피셔 박사는 “증상은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중요한 메시지로, 그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과 그 환경 사이에 놓인 문제의 본질을 말해주며” 회복은 “사회적 주요 역할에 복귀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삶의 목소리를 갖는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목소리를 되찾고 궁극적으로 타인과 연결되기 위해 나는 우선 일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며 꾸려나감으로써 불안과 긴장에 대처하고 싶었다. (134)
낮고 단단한 어깨를 내주다 : 이전까지 내게는 삶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늘 변두리를 떠돌며 증상과 더불어 겨우 살아갔을 뿐이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허공에 흩어졌다. 모든 환청과 망상을 묻어둔 채 침묵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무섭도록 차가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자주 미끄러진 이유는 내가 나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했으나 가난하지 않은 척, 조현병을 앓고 있으나 아닌 척했다. 항상 나 이외의 다른 척도에 맞추어 내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그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성의 규범에 맞추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부인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141)
3장. 정상이라 말하는 몸과 ‘다른 몸’_모르
4장. 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_이혜정
타인은 알 수 없는 나만의 지옥 : 불가능한 회복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질병이 있는 몸에 맞는 업무의 양과 속도를 의논하는 것이 더 상식에 부합하지 않을까. ‘건강한 몸’으로 회귀할 것을 강요하는 대신, 일하는 사람이 자기 몸의 상태와 변화를 자연스레 말할 수 있고, 그것이 반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애써야 한다. 질병을 앓는 이들이 몸 상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 ‘배려’나 ‘시혜’를 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 몸 상태에 걸맞는 노동을 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231)
스트레스는 왜 ‘원인’이 되지 못하는가 : 의사는 내 몸에 생긴 병을 진단하고 치료 과정을 통제한다. 하지만 매뉴얼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나의 경험이나 고통은 모두 무시되었다. 내가 매일 경험하는 것들임에도 그랬다. 이를테면, 질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처방받은 약을 복용한 뒤로 온 몸에 물을 뿌린 것처럼 땀이 맺히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의사는 약 복용하고는 무관한 증상들이라며 선을 그었다. 류머티즘과도 관계가 없다면서 다른 ‘과’를 안내해주었는데 그곳에서 온갖 검사를 하고도 진단명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나의 경험을 두고 의사가 ‘내 매뉴얼에는 없다’고 선언하자 그것은 원인 없는 증상이 되어버렸다. (240)
침묵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 질병은 직면하기 어려웠다기보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무엇이었다. 부인하고 싶었고, 모르는 척하고 싶었다. 10여년 동안 그렇게 나의 일부가 나에게 외면당한 채로 웅크리고 있었지만 모임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알지 못했던 형태의 질병과, 질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나보다 먼저 경험한 이들이 그런 과정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그런 나날을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혹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를 듣게 되었다. 나 자신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을 앓는 한 인간으로서 이러한 구조 속의 나의 위치를 깨달았다. 우리가 내는 목소리가 ‘질병은 단지 불운으로 인한 무엇’이라는 생각을 넘어 이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255)
나가는 글_아픈 몸들의 공동체, 질병과 함께 춤을
이를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을 사회정치적으로 해석해내는 서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제안해온 것이 ‘저항적 질병 서사’다. 이는 질병이 남긴 상처와 고통의 이유를 질문하고, 그 고통의 무늬를 개인화하지 않으며 사회적 요소와 유기적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학자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사회적 결과로서의 질병을 설명한다면, 저항적 질병 서사는 아픈 몸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질병의 사회적 맥락을 ‘증언’하는 것이다. 결국 저항적 질병 서사란, 질병이 사회적 결과라는 것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면서 아픈 몸과 삶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260)
부록_아픈 몸 선언문, 함께 만들어가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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