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용기>
(688쪽)
1부. 기억모으기와 자기배려
- 치유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것은 기존의 대처방식에 딴지를 걸고 깊이 숨어있던 고통과 두려움, 슬픔을 후벼판다. 그리고는 삶을 뿌리부터 변화시키라고 요구한다. 어린이 성폭력 피해가 치유되면서 따라오는 뼈아픈 고통을 겪을 즈음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린이 성폭력의 흔한 부작용은 자신의 욕구에 대해 무감각할 뿐 아니라 자기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치유 과정에서 처음에 부딪히는 어려움 중 하나는 새로운 생존 기술을 개발하는 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스스로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 종종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치유 과정에서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물어본다. 대답은 한결같다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스스로를 배려하기 위해 무엇을 하나요?” 이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은 치료를 받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친족 성폭력 피해를 말해왔는지에 대한 대답보다 훨씬 더 당신의 치유 정도를 잘 보여주는 지표이다.
- 스스로 물어보라. 실수를 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한가? 강도 높은 치유 과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쉬어가는가? 내가 즐기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충분히 잠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는가? 서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일원인가? 나는 내 삶에서 잘 진행되는 일들을 인정할 수 있는가? 내가 하는 일 가운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있는가? 대부분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그 방향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치유의 길을 잘 걷고 있다. 하지만 치유의 초기 과정에 있다면 단 하나의 질문에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많은 생존자들이 피하고 대처하고 그저 목숨을 부지하느라 바쁜 나머지 스스로를 얼마나 잘 돌보는지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 당신이 치유의 초기 단계이고 당신 삶이 고통스러운 감정과 기억과 위기로 가득 차 있다면, 속도를 늦추고 안정을 취하고 시간을 들여 치유한다는 것이 어이없는 헛발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너무 끔찍하므로 고통이 사라졌으면 싶다. 하지만 성폭력에서 치유된다는 것은 단기작업이 아니다. 점진적인 과정이며 그것도 작은 일상적인 단계에서 시작한다. 당신은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정착해야 한다. 치유하는 동안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2부. 치유 과정
치유 결심하기-위기 단계-기억하기-그것이 일어났음을 믿기-침묵 깨기-당신 탓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기-내면의 아이와 만나기-슬퍼하기-분노-드러내기와 진실 말하기-용서?-영성-결단 그리고 앞으로 나가기
-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당신 안에 상당히 긍정적인 의지가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 받든 당신은 이 사실을 굳게 신뢰하라. 치유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결코 포기하지 말라.
- 치유 결심하기 : 치유하겠다고 결심하는 것, 자신의 성장과 재발견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것은 치유의 힘을 작동시키는 시발점이 된다. 치유는 각 생존자의 배경에 따라 다른 단계와 시점에서 시작된다. 치유를 결심하기 이전 상태를 ‘폭발하기 직전’이나 ‘절망의 나락에 빠졌던 상태’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 위기 단계 :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안으로는 엉망진창이다. 일년 내내 진공상태에 있는 느낌이었고 내 앞의 모든 것들이 플래시백이고 울음으로 연결되었다.
- 기억하기 : 성적 피해를 입은 많은 어린이들이 그들의 경험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언어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공적으로 확인된 성폭력조차도 지진보다는 더 잘 잊혀진다. 그건 다른 요소, 즉 수치심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종종 자신의 외상 안으로 고립된다. 그들 편인 줄 알았던 사람이 그들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은 이런 비참한 현실에서 살아남게 하는 방편이며 가해자와 심지어 사랑까지 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즉, 그녀가 계속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그 무엇이다.
- 그것이 일어났음을 믿기 : “그게 정말 일어났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부인하고 싶다. 늘 플래시백에 시달리며 그 일의 장면들이 조각조각 조금씩 보이는 삶을 살았고 그것이 일어났다고 믿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어린이 성폭력을 치유하려면 자신이 희생자이고 그러한 피해가 정말로 일어났었다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안다. 당신이 그것을 살아내었다. 많은 생존자들에게 부정은 삶의 방식이다. 당신은 피해사실이 아니더라도 많은 것들을 감추면서 사는 가족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 혹은 감정을 무디게 하거나, 힘들고 혼란스러운 경험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리하거나, 골치 아픈 현실을 무시하는 것을 배웠을 수도 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참으면서 견디는 패턴은 설령 피해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있을 때조차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많은 생존자에게 어느 정도의 의심은 치유 과정의 정상적인 일부이기도 하다. 또한 폭력의 심각성이 남성의 성기라는 관점으로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어릴 때-당신의 몸, 감정, 영혼-당신의 경험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정확한 신체적 행위만이 가장 큰 손상을 입히는 폭력은 아니다. 폭력적인 강간이 신체적으로 어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신체적인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형태의 성폭력도 많이 있다.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 성폭력이 있는 것이다.
- 침묵 깨기 : 폭로로 가족의 안전이나 지위가 위협받을 경우 방어적인 반응이 더 일반적이며, 그 반응에는 엄청난 노여움이 묻어나온다.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행복한 가정”을 파멸시킨 장본인이라고 비난받았을 수도 있다. 말하는 것은 변화를 가져오고 상대방이 존중감과 진심 어린 배려로 그 말에 귀 기울인다면 당신은 이제 치유에 필요한 변화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다.
- 당신 탓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기 : 어린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싫다고 말하거나 한계를 분명히 긋는 능력이 훼손된다.
- 내면의 아이와 만나기
- 슬퍼하기
- 분노 : 강간당한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런 분노도 가지지 않을 테니까. 또 어떨 때는 총을 들고 가서 그의 머리통을 쏘아버리는 상상도 한다. 이런 상상이 찾아와서 다시 가버리게 하면 할수록 난 내가 사랑으로 더 옮아간다는 걸 느낀다. 분노를 차단하면 할수록 더 갇히게 된다. 분노가 존재하는 까닭은, 내가 삶을 명예롭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며 사랑하기 때문이다. 복수를 시각화할 수 있으면 분노가 적절하게 방출될 수 있다. 단, 폭력적인 환상 그대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중요한 지침이다.
- 드러내기와 진실 말하기 : 현실성 갖기-가해자와 가족들에게 어렵사리 피해를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 부모는 일어났던 일을 듣고 공포에 질리면서 지금이라도 당신의 편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결과를 가장 바라겠지만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반응에 부딪히기 쉽다. 당신을 이해는 하지만 동시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대화 상대가 당신을 가해한 가족인 경우도 있다. 그들이 가해를 감추려하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이 당신의 드러냄을 몹시 불편해한다는 뜻이다. 오래 잠재워 둔 감정을 끄집어내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일 수 있으며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가족이 힘을 합하여 피해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당신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드러내는 과정에 접근할 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당신 자신, 당신이 원하는 것 혹은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 상황을 다루고 싶어하는 방식이지 당신이 받고 싶은 반응이 아니다. 진실된 방식으로 말한다면 얼마든지 지지와 사랑을 받겠거니 하는 순진한 기대를 섣부르게 해서는 안 된다. 어렵사리 드러내기를 한 직후, 어머니가 미치거나 아버지가 그들을 공격하고 사제는 자살할 것이라는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반응이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가족 혹은 기관은 아무 말도 들은 바 없는 척한다. 또한 드러내는 과정 없이도 치유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 용서? : 어린이 성폭력으로부터 치유되기 위해서 가해자를 반드시 용서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용서 해야할 유일한 대상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많은 생존자들에게 용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린이 성폭력 생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생존자의 편에 서서 하는 조언이 결코 아니다. 이런 조언은 당신의 감정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부정한다. 당신에게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친절함과 연민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스스로의 치유를 위하여 주의력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이러한 용서가 진정한 용서이다.
- 영성 : 견딜 수 없는 후유증을 안고 걸어다니는 시체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단 한 가지 버티게 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나는 참으로 중요한 존재다’라고 말해주는 내 머릿속 목소리였다. 그것의 이름이 영(靈)일 것이다. 어떤 종교 교리나 영성 수행은 신에게 집중하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당신의 감정을 초월하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당신의 감정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될 수는 있겠으나 어린이 성폭력의 치유 과정에서는 현실성 없는 방법이다. 치유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하다.
- 결단 그리고 앞으로 나가기 :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은 생존자들에게 힘겨운 일이다. 등을 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외부의 압력이 있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처음 말을 끄집어 낸 순간부터 사람들은 당신에게 잊으라고 말하고 “과거는 과거로 묻어 두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전진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해자와 가족을 받아들이는 법 배우기-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어머니, 아버지, 언니, 동생이 변신할 것이라는 환상을 더 이상 품지 않는다. 그들이 줄 수도 없고, 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가령 인정이나 고백, 사과와 같은 것을 그들에게서 받아내려는 마음을 접는다. 그들의 모습, 그들의 한계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을 바꿀 힘이 당신에게 있다는 생각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3부. 변화는 이렇게 온다.
변화의 과정 :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고 나서 삶을 돌보기 시작했다.
자존감과 자기 신뢰 : 어린이가 피해를 입으면 자존감과 자기가치 인식에 가혹한 상처가 생긴다. 당신은 어쩌면 인생에서 그 어떤 좋은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러한 생각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을 거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 생각들은 항상 무언가에 의해 자극되어 나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감정을 일으킨 생각이나 사건이 무엇인지 밝혀내도록 노력하라.
감정과 만나기 : 당신이 아이였을 때 사랑과 믿음에 대한 당신의 감정들은 배반당했다. 온전히 경험하고 계속 기능하기에는 고통, 분노, 두려움이 너무 컸던 나머지 당신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그 감정들을 억눌러야 했다. 감정과 만나기 위해서는 당신의 몸 안에 있는 감각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고 그 감각들의 이름을 배운 적이 없었다면, 먼저 당신은 몸이 당신에게 말하려는 메시지의 독해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감정들을 덮어 버리는 식으로 대처해 온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면 이 대처 방식은 순식간에 자동으로 일어나는 일이어서 당신이 애초에 가졌던 정서를 느낄 기회조차도 없어진다. 아이였을 때 당신은 “나는 아빠가 싫어. 그를 죽이고 싶어”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당신이 나쁜 이유 그리고 성폭력의 책임을 당신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수백 가지 이유를 찾아내서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맨 처음의 분노를 누른 채 ‘내가 나빴어’라는 생각을 계속해 왔다면, 이제는 의도적으로 그 행로를 바꾸면서 습관 아래에 묻힌 감정을 밝혀내야 한다. 감정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길은 오히려 그것을 흠뻑 느끼는 것이다. 감정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출할 때 변형된다. 많은 생존자들이 긍정적인 감정을 두려워 한다. 평화롭게 자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당신을 강간하고,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삼촌이 당신을 불러들여 괴롭혔다면 당신은 행복이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또는 당신이 행복한 척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고통 받고 있다면 당신에게 행복은 여전히 거짓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외상(트라우마)과 뇌 : 해리는 지극히 효과적인 생존 기제로서 외상 사건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하지만 외상 자체는 진행되지도 치유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되거나 왜곡되는 보통의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비언어의 영역으로 들어가 몸의 기억으로 저장된다. 그러므로 생각이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하고 접근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이런 까닭에 그저 “생각”을 통해 이런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바꿀 수는 없다. PTSD를 가진 사람들은 절망을 연속적으로 겪으며 외상의 기억이 편도체와 시상하부에 남아있다. 이 부위는 반응만 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거나 계획하거나 비교하는 능력이 없다. 이 부위는 위험과 생존에 관련된 정보를 깊게 각인 시킨다. 외상 경험을 통합할 능력이 없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여전히 당신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처럼 계속 반응한다. 최초의 외상을 회고할 만한 뭔가를 경험할 때마다 편도체와 그것 주변의 구조들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스트레스 화학성분을 쏟아낸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위에 갇혀있는 외상을 언어를 관장하는 논리 영역, 즉 대뇌 피질 쪽으로 서서히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이미지 작업과 창의적 예술작업, 몸에서 출발하는 치료법을 통하여 좀 더 정교한 뇌의 부위로 통합시킨다면 생존자들은 피해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지금은 그게 끝난 일이라는 사실을 심오한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몸 안에서 사는 법 배우기 : 많은 생존자들이 몸과 분리된 채 머리로만 살았다. 다시 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의 내부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현재에 있으면서 몸을 고통의 장소로서가 아니라 지혜의 힘, 치유의 통합된 근원으로서 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의 몸은 든든한 동맹이 되어 당신을 더 큰 생명력과 총체성으로 충만된 곳에 도달하도록 이끌 것이다. 당신은 몸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가해자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당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치유의 주요한 요소이다.
건강한 친밀성 :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신뢰감을 갖는 데 문제가 있다. 어렸을 때 혼자서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자신을 돌보아야만 했다면 친밀과 신뢰가 오가는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할 수 있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갈 능력은 당신 내부에 살아 있다. 당신은 완전한 신뢰감과 친밀감에서 어린 시절을 시작했지만 누군가 그것을 빼앗아 갔다. 치유는 그것을 되찾는 과정이다. 많은 생존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끼며, 자신이 죽거나 없어져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것처럼 여긴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들이 당신을 소홀히 했거나 피해를 입혔다면 다시 사랑하기가 공포스러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을 믿어야 한다. 당신이 자기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게 되면, 누군가가 당신을 보살펴 줄 것이라는 희망을 안은 채 맹목적으로 아무나 신뢰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그런 식의 절대적인 애정은 성숙한 성인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하다. 친밀감을 증진시키는 열쇠는 공포를 숨기고 도망가는 대신 자신의 느낌 그대로를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성 되찾기 :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착취되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폭력이다. 그러나 성적 쾌감 그 자체는 사악한 것이 아니며 본질적으로는 당신의 피해와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성인이 된 지금 좋은 기분을 느껴도 괜찮다. 당신 자신을 만지기가 편안한 적이 없었다면 당신의 내면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다. 성적으로 치유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는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할 때도 있다. 충만한 성을 개발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겠다면, 먼저 당신이 현재 서 있는 지점을 인정하고 인내하라. 그리고 치유할 수 있는 당신의 잠재력을 신뢰하라.
자녀와 부모의 역할 : 아이들은 아주 명민해서 당신이 화가 나 있거나 정신이 산만하거나 위기 상태에 있을 때를 다 알아차린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가장하면 이들은 당황해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채로 아이들은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대개는 자기들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자녀에게 그들이 책임질 일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한다. 자녀를 막역한 친구인 양 대하거나 그들에게 동정이나 조언을 바라는 것은 부적절하다. 자녀와 정서적으로 친밀함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지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리고 오랫동안 가족과 관계 맺기 : 가족이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 그와 더불어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다르게 만들고 싶은 지에 대해서도 숙고하는 것은, 당신이 가족과 늘 연락을 하고 있든 아니면 치유를 위한 별거를 한 후 다시 만나고 있건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중요한 작업이다.
4부. 생존자 편에 선 사람들을 위하여
생존자가 어린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녀가 고통스럽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삶 일부를 털어놓을 만큼 당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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