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250쪽)
꿈많은 여성이 어떻게 가정주부로서 박제되어 가는가에 대한 가슴아픈 소설. 실제로 아니 에르노는 이 책을 남편에게 헌정하고 출판 후 이혼했다고 한다. 가부장제가 공고한 지금 결혼이라는 세계에 종속되면 어떻게 불평등이 시작되는 가에 대한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진짜 삶, 행복, 안정을 결혼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책이다. 그러한 형이상학적인 만족감을 위해 자신의 현실은 노예로 전락한다는 뼈아픈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동네의 ‘보바리 부인’ 같은 여자들이든, 허황한 몽상에 대해서는 담쌓고 사는 여자들이든, 모든 여자는 낭만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 사실이다. 어째서 남자들은 모두 그것에 대해 역정을 내는 것일까? 심지어 내 아버지, 시간이 흘러 내 남편조차 저녁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 뭐 하니, 쓸데없는 공상에 빠진 거야? 하면서 역정을 낸다. 채점해야 할 답안지들, 재워야 할 아이, 책 읽을 시간이라곤 잠자기 전에 겨우 5분 될까 말까 한데 어떻게 공상에 빠진단 말인가.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여자’가 아니었다면,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으리라는 생각에 수치심을 느낀다. (36)
반복되는 주제는 희생이다. 예를 들자면, 말하고 싶은데 말하는 것을 참는다거나, 디저트를 스스로 금한다거나, 엄마 대신 설거지를 한다거나, 뭔가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그것을 하는 것. 그렇게 희생 노트를 만들어 자신의 희생을 기록하기. 노트에 번호를 매겨가며 빼곡이 적는 아이들도 있다. 경쟁적인 자기부정. 아마 순수와 두려움이라는 체제에 그들을 복종하게 만들려는 남자아이들의 성물함에도 똑같은 기록이 들어 있으리라. 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우리만큼 숨막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서로 싸울 수도 있고, 지도자가 되라고 격려받기도 한다. (78)
선생님이 알려준 전형적인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의 특성과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과묵한 헌신, 한결같은 미소, 가장 앞에서의 겸손, 내 어머니에게서 그런 특징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주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놀랍긴 했고 의구심도 들었다. 내게 있어 이상적인 어머니는 내 삶의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과 결부돼 있었다. (84)
게다가 완전한 헌신에 대한 그녀의 열광, 한 남자를 사랑하면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의 똥도 먹을 수 있다는 그런 열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열정에 대한 다른 말들, 더 교양 있고 더 세련된 말들, 다른 사람 안에서 자신이 소멸된다는 식의 말을 듣게 되지만, 결국 그 바탕은 같은 것이다. (96)
남자가 요리를 한다고? 말도 안 돼. 그래서 두 분 모두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아버지의 친절함은 약점이 되고, 역동적인 어머니는 집안에서 남자를 부려먹는 여자가 된다. 아버지가 억지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었고, 어머니가 대놓고 악을 쓰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나 역시 분주하지만 사려 깊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늘 폭발하는 듯한 어머니 대신 작은 드레스덴 도자기 인형 같은 어머니를 원했지만, 그거야말로 꿈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모두 어떤 양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좋은 가정이거나 좋은 가정이 되려고 노력하는 집안, 품위 있는 집안에 존재하는 그런 양식을 따르지 않았다. (104)
나에게 세상의 반쪽은 정말 미스터리였지만, 그 반쪽은 축제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남자아이들과 나 사이의 불평등, 신체적인 것 외의 다른 차이에 관한 생각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재앙이었다. (115)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것은 유일하고 중대한 문제였고,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나의 형이상학의 전부였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당시 유행이던 목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포대 같은 코트를 입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122)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세계에 우리를 끌어들인다. 당구 한 게임 하러 와, 볼링 한판 하러 와, 달리기 경주가 있어, 오늘 경기가 있어, 응, 그래, 너 보러 갈게. 그들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의 이야기가 있고, 수업과 여자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길게 이야기를 늘어 놓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그들은 아, 네 학교 수녀님들은 모두 레즈비언이구나, 단호하게 끊어버린다. 아주 어려운 수학에 관해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에 관해서, 예를 들면 루소에 관해서 그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그들은 지루해한다. 우리 집에서나 학교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런 성공은 오히려 결점이 되어버린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제외하고, 어떤 남자아이도, 어떤 남자도, 내가 하는 일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선생님? 노처녀로 늙겠구나, 변호사? 그래 너 잘났다, 이런 소리를 잠자코 들어야 한다. 몇몇 남자애들이 보이는 혐오감. 너무나 다정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그 금발 머리 소년. 자기야, 네가 공부하다 지칠까 걱정된다, 비서 자리에 들어가는 게 어때. 어쩌면 똑똑하다는 것은, 그들에게 진짜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엉망진창의 상황, 나의 드라마는 이미 거기에 봉착해 있다. 나는 남자아이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정말 상냥하고 착해야 하고, 그들이 옳으며 ‘여성스러운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거기에 저항하는 것들, 성취욕,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려는 욕망은 죽여야 한다. 그것 아니면 고독. (126)
남자들은 선택하고 싶어 해, 이 친구야. 무슨 상관이야, 나도 선택하고 싶은데. 여전히 나는 그 차이를 모른다. 남녀의 역할을 바꿔버린 이 엄청난 실수 때문에 나에게는 곧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여자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쉬운 남자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127)
먼저 바칼로레아 1차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골치 아픈 철학 영역 문제들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몰두해야 한다. 책을 읽는다. 당연히 사르트르와 카뮈를. 원피스나 실패한 만남의 문제가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는지 모른다. 나를 연재소설과 여성 소설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한 해방과도 같은 독서. 이 책들의 작가가 남자고, 그 주인공들 또한 남자이지만 나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나와 로캉탱, 나와 뫼르소를 동일시한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성별이 없고, 정답도 없다. 바칼로레아를 치르는 해에 나는 순진하게 그렇게 믿는다. 나는 후회할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격언에 동감한다. 누가 이 원칙을 나에게 알려주었을까? 앙드레 지드는 아직 읽지 않았고, 그때는 이것이 여자아이에게는 실행 불가능한 원칙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못한다. (133)
남자아이는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어, 하지만 넌 안 돼, 이 아가씨야! 참아, 그게 관례야. 저항하기 위해서 습관적으로 방어 게임을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영역으로 구분해, 허락된 영역, 현재 작전이 진행 중인 모호한 영역, 금지된 영역으로 나눈다. 아주 조금씩 포기해 나가야 한다. 하나하나의 쾌락이 나에게는 실패고, 그에게는 승리다. (135)
입학하기 전에는 고등학교를 자유, 평등, 박애의 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철학반에는 [브리지트] 시리즈에 나올 법한, 고급 주택가 출신 소녀 스타일이 인기다. 나는 그들이 어디 출신인지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다.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여유로운 태도가 나를 주눅들게 한다. 이들은 절대 웃지도 않고 외설스럽지도 않게 성욕과 프로이트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지만, 남자아이들에 대해서도, 자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이들 옆에 있으면서 스스로 불결하고 천박하다고 느낀다. 이들은 절대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상상해봐, 밤 열 시에 겨우 책을 펼쳤는데, 20점 만점에 15점 받는 걸. 별 노력 없이 똑똑해지는 것은 근사한 일이지만 나는 깜짝 놀란다. 이들은 모두 정신과 의사, 파리정치대학, 고등사범학교 수험준비반 이포카뉴 진학 같은 믿기 힘든 야망을 갖고 있다. 이들의 단호함, 성공에 대한 확신 앞에서 나는 의구심이 들고, 현실적 열등감의 징후로 가능한 한 적게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 잔 다르크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같은 성(性)의 자매들이지만 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이들과 자매가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나는 이후로도 결코 할 수가 없다. 이들은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내 미래를 어둡게 한다. 어머니가 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했던 모든 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그것이 무너지고, 비오렐의 숙녀들이 나의 야망을 꺾는다. (140)
집안 사람들이 묻는다. 넌 아직도 약혼자가 없니? 부모님은 내가 마쳐야 할 공부가 남아 있으니 아직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때로는 내가 지금 상태로 더 행복하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명백한 설명이 아닌, 오히려 나의 이상한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핑계다. 항상 누군가 내게 거침없이 말한다. “너는 결혼 안 하고 늙을 작정이냐!” 은밀한 압력. 나는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불확실한 존재다. 사람들은 처녀와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뭐 좋은 일 하니? 휴가 때 어디 가니? 원피스가 참 예쁘다. 반면에 결혼한 여자들에게는 남편, 아이들, 아파트, 세탁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163)
우리가 함께 살게 되면, 그렇게 많은 자유와 한가한 시간을 더는 누리지 못할 거야, 장을 보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하여튼 뭔가 조금이라도 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너는 어린 망아지처럼 싫은 티를 내고 용기도 없구나, 그 많은 여자들이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모든 것을 ‘절충’하는 데 성공해, 너처럼 엄살을 떨지는 않아. 오히려 그녀들은 진짜 삶을 살아가. 결혼하면, 제자리를 맴돌고, 수많은 질문을 해대는 부질없는 나로부터 해방되리라 확신한다. 균형을 이루리라. 건장한 어깨, 현실적이고, 온갖 골치 아픈 생각을 없애주는 남자와 결혼하면 삶이 안정될 거야, 심지어 네 여드름도 사라질 거야, 나는 마지못해 웃으면서, 막연히 믿는다. 결혼, ‘완성’, 나는 동의한다. 때때로 그가 이기주의자고,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사회학 서적들을 읽지만, 그는 결코 앙드레 브르통이나 루이 아라공 같은 내 책들을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러면 여성의 지혜가 나를 구원한다. “남자는 전부 이기주의자다.” 도덕적 원칙들도 마찬가지다. “그와의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을 받아들여라.” 원한다면 모든 언어가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다. (173)
내 성과 이름, 천천히 쓰는 법을 배웠고, 아마 부모님이 제대로 철자를 쓰라고 강요했던 첫 번째 단어, 가는 곳마다 내가 나라고 의미해주던 단어, 벌을 받을 때 크게 울리고, 성적표 위에서,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들에서 반짝이던 단어, 이런 내 이름이 단번에 녹아 버렸다. 더 둔탁하고 더 짧은 남편의 이름을 들을 때, 나는 그 이름에 적응하기 위해 몇 초간 망설인다. 한 달 동안 나는 두 개의 이름 사이를 떠다닌다, 고통은 없고, 단지 낯선 느낌이 들뿐. (177)
결혼한 지 한 달, 그리고 석 달이 지나고, 우리는 학교로 돌아가고, 나는 라틴어 과외를 한다. 해가 더 짧아지고, 큰 방에서 함께 공부한다. 정말 우리는 진지하고 불안정한데, 겉으로 보여지는 건 현대적이고 지적인 젊은 커플이라는 감동적인 이미지다. 내가 그 상황에 안주하고, 우리가 어떻게 정체 상태에 서서히 빠지게 되었는지 알려고 들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이미지에 감동하고 있었으리라. 비겁하게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면서. 물론, 나는 한방에서 그와 2미터 떨어져서 라브뤼예르나 베를렌을 공부한다. 알다시피 아주 유용한 결혼 선물인 압력솥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칙칙거린다. 둘이 함께 있으면, 닮은꼴이 된다. 또 다른 선물인 주방용 조리 타이머의 날카로운 소리. 이제 닮은꼴은 끝. 둘 중 한 명이 일어나서, 압력솥 아래의 불을 끄고, 미친 듯 도는 압력추가 느려지길 기다리고, 압력솥을 열고, 수프를 체에 거르고, 다시 자신의 책 더미로 돌아온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생각하면서. 나다. 차이는 시작되었다. (181)
그런데 왜 ‘예스’를, 낳는 쪽을 택했을까? 모든 가능한 의미들 가운데, 우리 둘을 위해서는, 단절을 피하고 우연에 불과한 것을 운명으로 바꾸기 위해서, 라는 의미를 선택했다. 그를 위해서는, 최악의 경우, 생식 기능의 만족이라는 의미를 택했다. 그의 내부 어딘가에 생식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고, 최선의 경우,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라는 질문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욕망,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갈망으로 심장이 뛰던 예전의 조급함이었다고나 할까. 또한 ‘완벽’해지고 결과적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성의 모든 것을 경험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믿음. 어쩌면 옹졸한 방식의, 고백할 수 없는 복수일지도.... 그가 바흐를 들으며, 공부한다. 나도 공부하지만, 적게 한다, 설거지와 요리가 나의 공부와 바흐를 조금씩 갉아먹기 때문에, 그래서 그에게 책임감을, 불편함을 느끼게 하려는데, 아이보다 더 나은 건 없으리라. ‘예스’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190)
당연히 나는 중등교원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고, 다들 내게 한마디씩 했다, 뻔한 일이었어, 시도 자체가 미친 짓이지, 자업자득이야. 어쩔 수 없지, “그는 성공했잖아, 그가 말이야, 그게 중요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의지했고,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전의 내 자유에서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슬퍼할 가치도 없는 개인주의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함께 산 지 1년 반이 되는 때였다. (203)
우리는 기혼녀라는 굉장한 후광을 달고 각자 고립되어서, 남편의 그림자가 항상 우리 사이에 드리워져 있기라도 하듯, 감히 멋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이야기도 못하기에 안전한 주제인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219)
우리 집, 우리 아파트는, 분명 그의 마음속에 피난처의 이미지로 간직돼 있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리해야 할 상자, 준비해야 할 아이의 식사, 목욕 시키기, 이런 것들이 눈에 확 들어오는, 늘 정리 정돈해야 하는 그런 공간의 이미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았던 셈이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부드럽게 비치는 램프와 가구들의 반사광을 둘러보고, 반짝이는 변기에 오줌 싸러 가고, 매일 깨끗하게 청소된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복도의 깨끗한 타일을 가로질러, 거실에서 [르 몽드]를 읽었다. 그는 따스함이 곳곳에 스며 있는 집안을 느낄 수 있었고, 거기서 편안하게 긴장을 풀 수 있었고, 그러니 자기 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224)
내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나의 수련 기간은 끝났다. 그 후로는 익숙해진다. 집 안에서는, 커피 그라인더, 냄비 같은 것들이 내는 수많은 자잘한 소리, 집 밖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선생님, 카샤렐이나 로디에(3040 프랑스 중산층 여성들이 주로 즐겨 입는 브랜드) 브랜드 옷을 입은 중견 간부의 아내. 얼어붙은 여자.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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