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영화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비상하는 새 2022. 2. 1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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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의 또 다른 영화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84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으로 정신없이 흘러간 영화였다. 뉴욕소재 대학을 가면서 도시 생활을 시작하게 된 여주 트레이시가 의붓언니(가 될뻔한) 브룩(그레타 거윅)을 만나면서 겪는 일이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두 여자의 나이차가 거의 띠동갑(18살-30살)로 설정되어 있는데, 여주는 핫한 도시 뉴욕에서 밥벌이와 '힙'한 문화생활, 그리고 멋진 인맥들을 가진 브룩의 삶에 단번에 매료된다.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온 대학에서의 신입생 생활은 등록금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지루하고 외로우며 들어가고 싶은 문학 클럽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게만 보였던 브룩의 일상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트레이시는 그녀의 진실(?) 현실(?)을 알게 된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브룩은 정규직이라 할 만한 직업 없이 SAT 과외, 스피닝 강사 등등으로 통해 근근이 밥벌이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집 또한 허가된 거주지역이 아닌 상업시설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함께 레스토랑 동업을 계획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사업이 엎어지게 되고 투자자를 찾아나서게 된다. 사이가 틀어진 부자 친구 부부를 찾아가지만 사업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빚은 청산해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한 브룩. 그러다가 트레이시가 브룩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결말은 망하게 된다는...)을 보게 되고 브룩의 아버지와 트레이시의 어머니의 재혼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다. 

 

 둘의 사이는 결국 의붓 자매도 아닌 남이 되고, 모든 게 원점으로 회귀한다. 브룩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로 갈망하던 북클럽 가입 승인을 받지만 트레이시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 스스로 잡지 클럽을 만든다. 브룩은 모든 걸 정리하고 뉴욕의 삶을 청산한 뒤, LA로 떠날 이사 준비를 한다. 이젠 남이 되었지만 트레이시는 브룩에 대한 애정(?) 연민(?)을 거두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주인공(화자이자 시점의 주체)이 브룩이 아닌 트레이시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프란시스 하>와 구분이 된다. 프란시스 하에서는 좌충우돌하고 외로움, 자신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주체가 주인공이었다면, 여기서는 그러한 인생을 타자로 바라보는 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청춘의 삶을 타자화해서 보여주기 때문일까, 브룩을 보는 내내 나의 마음 속에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사람들과 주변의 소음으로 나의 외로운 삶을 덮으려고 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이랬다 저랬다 하는 브룩의 모습이 결국 내 모습이기에. 인정하기 싫은 나의 단점들을 더욱 집요하고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영화라고 느껴졌다. 프란시스 하에서는 그 단점들이 '포기하지 않는 꿈에 대한 열정' 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기보다는 위로를 받았었다. 하지만 브룩은 레스토랑 인테리어 장소에 가서 "내가 레스토랑을 하려고 이렇게 그릇을 모았나봐"라고 하는 둥, 현실 속에서 부유하며 자기합리화로 누추한 자기 자신을 이어나간다는 면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재밌게 그려내려고 노력한 장면들이 많이 있지만 보는 내내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실제 우리들은 프란시스보단 브룩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자기확신을 지켜내기 어려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아가는 우리니까. 결코 영화는 해피엔딩이라 할 순 ㅇ벗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새드엔딩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비록 남이 되었지만 트레이시는 브룩과의 인연을 놓지 않았고, 브룩은 좌절하지 않고 서부에서의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 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한껏 움츠려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브룩을 속으로는 '노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브룩을 한껏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깎아내렸지만 그녀는 적어도 순진하다라고 할 만큼 겁없는 용기와 기도들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써가고 있다. 브룩의 그런 점은 사실 내가 본받고 싶어하는 점이기도 하다. 넘어지더라도 그냥 해보기. 닥치는 대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보기. 올해는,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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