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기획

비상하는 새 2022. 1. 2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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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종이책, 334)

 

프롤로그. 말하기의 힘을 믿는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을 때 가족들이 피해자 편에 서기보다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례가 더 많다. 남편이나 아들이 딸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을 부정해서라도 가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어머니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소를 해서 피해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고 가해자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가족 안에서 자기의 피해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을 해체시킨 장본인이 돼 가족들에게서 장기간 배척당하기도 한다. 또 가해자가 처벌받는다고 해서 가족이라는 자원을 잃어버린 생존자가 이 망망대해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부재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끊임없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쉼터에 사는 동안은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활동가들과 다른 피해자들이 지지집단이 돼주지만, 쉽터를 퇴소한 뒤에는 그야말로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렇듯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일반적인 가해-피해의 구도로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한 현실이 있다. 가해자 처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으며, 가해자를 처벌한 뒤에도 가족이 부재한 삶의 조건은 끊임없이 피해자의 발목을 잡는다. (18p)

 

흔히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있거나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서 친족 성폭력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통해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기 땜누에 대신 딸에게서 성적 만족을 찾는다고 가해자의 행위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또는 가해자가 사이코패스나 알코올 의존증 환자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자 아버지는 어머니하고도 성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범죄 전력도 거의 없고, 바깥에서는 사람 좋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피해자들도 가해자에게 분노 감정만 갖지는 않는다. 평범한 사람인 가해자가 성폭력 가해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먹여주고 키워주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고마움이나 연민 같은 감정도 갖는다. 그러나 이런 양가감정을 드러내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의심받는 현실에서 피해자가 자기 경험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흔히 생각하듯 우울하고 힘없는 모습만 갖고 있지는 않았다. 때로는 당차게 때로는 유머 있게 일상을 살아가며, 자기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 자기만의 전략 아래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20p)

 

1. 열림터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곳

 

2. 아버지를 고소하는 딸 법에도 마음의 자리가 있어야 하는 이유

 

다행스럽게도 2012년부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각급 법원에 별도의 증인지원실을 마련해 피해자들이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증인지원관이 법원 정문에서 법정까지 피해자하고 동행하게 돼 피해자들은 피고인 가족들의 합의 강요나 협박, 비난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증언할 수 있게 됐다. (91p)

 

성폭력 피해 때 몸으로 느낀 쾌감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고통스러워한다. 성폭력을 당했다면 당연히 그 순간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피해자가 자기 몸이 보인 반응에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각본이다. 성적인 접촉은 물리적 반응이기도 해서 자극을 하면 당연히 쾌감이나 불쾌감이 따라온다. 일곱 살 때부터 성년이 될 때까지 사랑인지 폭력인지 분간하기도 어렵게 교묘히 진행된 아버지의 성폭력. 자신의 성적 욕망을 미처 마주하기도 전에 왜곡된 방식의 성적 자극에 노출돼 길들여진 몸의 반응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성적 쾌감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을 더는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안 된다. (97p)

 

친족 성폭력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일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진행되는 관계의 문제. 피해자의 삶 속에는 성폭력과 일상이 구분될 수 없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피해자들은 이런 여건 속에서 일상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생존의 전략을 모색하게 된다. .... 피해자들의 경험에 의심의 칼날을 들이대기 전에, 가해자에게 애정을 드러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살펴보는 게 먼저 아닐까.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왜 성폭력에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는지, 왜 가해자를 일관되게 증오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은 우문이 될 수밖에 없다. (109p)

 

아버지가 자고 있는 소라의 몸에 성기를 삽입할 때에도 자는 척하며 몸을 뒤척이는 것이 소라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이었다. “아빠가 나를 좋아하고 다정한 부녀 사이로 지내고 가족들이랑 같이 하하 호호는 아니지만 트러블 없이 잘 지내는, 이걸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19p)

 

소라의 진술에서 일관되지 못한 것은 가해자의 행동이나 피해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피해 일자였다. 피해 일자는 법률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건일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해온 소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당한 것 자체가 중요했다. 따라서 가해자의 행동이나 말은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피해 일자는 기억에 담아두지 않았다. 피해가 오랜 기간 반복된 데다 잊고 싶은 기억이라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뒤섞어버리기도 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잊으려고 노력한 결과 자연스레 기억이 흐릿해진 것이다. (122p)

 

아빠에게 그런 일을 당했는데 왜 아무런 대응을 안 했어요?” 반대 신문 도중 피고인 쪽 변호인이 소라에게 던진 질문이다. 아버지의 성폭력이 싫었다면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거부하는 것이 피해자로서 상식적인 대응이라는 주장이었다. .... 아버지의 성폭력이 있을 때마다 소라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자는 척하며 몸을 뒤척이는 것이었다. 집안 식구들이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상하게 쳐다볼까봐 두려웠고, ‘엄마도 안 계신데 아빠까지 감옥에 가면 나를 누가 보살펴주나하는 걱정도 들었다. 가뜩이나 무서운 아버지한테 괜히 저항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지울 수 없었다. 집안 어른들에게 이야기해도 별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소라는 어릴 때 고모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는데,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도리어 행실이 얌전하지 못하다며 야단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라는 성폭력이 있을 때마다 마치 잠자고 있는 듯,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124p)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소라는 가해자를 향한 분노에 더해 연민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소라가 가해자를 안쓰럽다고 생각한다니까 수사 기관 담당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아무리 아버지라지만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한 가해자에게 어떻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 있냐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소라의 말이 무슨 의미이고, 소라의 눈물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해자는 지금껏 가족이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돌봄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어쩔 수 없이 기대야 하는 존재였다. 가끔은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했다. 온 가족이 나를 보호해준다고 믿던 행복한 어린 시절도 있다. 아버지와 딸,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살아온 많은 삶의 맥락은 분노라는 한 감정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형사 사법 절차 속에서 가해자에게 갖게 되는 복합적인 감정은 피해자를 끊임없이 끌어당긴다. 가해자를 향한 양가감정은 많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감당하고 있는 몫이다. (126p)

 

열림터 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사례 중 피해 사실을 가족이 알고 있던 경우는 절반에 이르지만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경우는 드물다. 가족들은 피해 사실을 알게 돼도 가족이 깨질까 두려워 침묵하거나, 집안의 수치라고 말하며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피해자의 행동을 문제 삼으며 성폭력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127p)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마지막 보루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울타리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이 울타리 안에서 성폭력을 경험하고 침묵을 강요받는다.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가족 구성원들은 이 울타리를 지키려고 약자인 피해자를 외면한다. 그리고 강자에 의지해 겉으로라도 정상 가족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렇게나 절박하게 지키려고 한 가족은 과연 누구를 위한 보루일까. 대체 누구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울타리인 걸까. (129p)

 

법적 절차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가해자의 유무죄를 넘어 생존자들은 이제 다시 치유의 길을 걷고 있다. 소송을 마치고 난 뒤 일상에서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세상에 말 걸기, 소통하기는 어디에도 정답이 없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다. 그 사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하다가도 어느 날 불쑥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동안 쏟은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일상이 온통 흔들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 상태에서 또다시 일어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성폭력 생존자들을 둘러싼 현실이다. (135p)

 

3. 내비 없이도 내비두기 가족 없이 나 홀로 흔들리는 자립

 

이런 자신의 조건을 민아는 실패할 권리가 없다고 표현한다. 내가 만약에 여기서 실패를 한다, 내가 만약에 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잘렸어요. 그럼 나를 먹여줄 사람이 없는 거야. 보통 가정집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학비를 대주든가 생활비를 대주든가 아니면 집으로 들어와, 이렇게 하겠죠. 나는 그게 전혀 없다. 나는 나 혼자 살아야 되는데, 난 여기서 잘리면 안 된다. (147p)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가족은 안락하고 따뜻한 보살핌의 공간으로 떠오른다. 민아도 그런 가족을 원했다. 가족을 향한 목마름 때문에 민아는 관계의 불평등이나 불리함도 감수하고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아끼고 모으던 민아가 동생과 전 남자 친구를 건사하느라 여윳돈 한 푼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웠다. 민아에게는 가족이 주는 온기가 절실했다. (150p)

 

친족 성폭력 생존자이고 혈연 가족이 해체됐다는 사실은 결혼이라는 장 속에서 자기 위치를 불리하게 만든다. 친정이 없어서 명절 내내 시댁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아이 맡겨놓고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없고, 급전이 필요할 때 손 내밀 곳도 없다. 가족이 그런 이유로 해체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결함이기 때문에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 그 사실이 언제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모른다는 의심과 불안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65p)

 

의식주, 돌봄, 교육, 애정, 소속감까지 한 사람의 자립에 필요한 모든 요소는 가족의 기능으로 수렴된다. 모든 자원을 가족으로 수렴할 때, 우리는 가족이 모든 것을 충족해주기를 바란다. .... ‘정상 가족이라는 환상은 친족 성폭력 생존자뿐 아니라 우리를 모두 힘들게 한다. (182p)

 

4. 후유증 피해 이후를 살아내기

 

친족 성폭력은 특정할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피해자의 성격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계속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앞과 뒤를 딱 잘라 나눌 수 없다. 가족은 개인이 애정과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의 가치와 행동 방식을 익히는 곳이다. 친족 성폭력이 가족 안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피해자의 가치관, 성격, 생활 습관 등이 피해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특성 탓에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 경험만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고, 무엇이 후유증인지 콕 집어 말하기도 곤란하다. 후유증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으면서도 피해 경험은 삶의 방식, 생활 습관으로 남아 피해자를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피해자에게 체화된 삶의 방식은 피해 이후’, 피해자가 새로 접하는 환경과 낯선 관계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187p)

 

유림이에게 스스로 선택하기는 위험을 가져다줄지도 모르고, 지름길이 아니라 멀리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 때로는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의 말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승자박이 되더라도 자기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유림이에게는 중요해 보였다. 가해자를 벗어나 자기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게 된 유림이에게 삶은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은 깜깜했다. 미래가 없었다. 선택하는 삶은 힘들지만, 그래도 색깔이 있다. 삶을 지속될 어떤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긴 안목으로 해야 하는 선택은 특히 두렵다. 그래도 깜깜한 게 아니라 알록달록 빛이나 색이 있는삶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 (196p)

 

유림이에게 관계 맺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 친밀함은 아버지가 원하는 때 아버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됐다. 거부하면 물질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이 끊어졌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가까워지면 피해 사실을 말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친구들을 먼저 밀쳐냈다. (196p)

 

유림이가 피해자면서 피해자가 아닐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 주저앉고 싶은 자기를 일으켜세워 일상을 살기를, 제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세끼 잘 챙겨 먹고, 자기 몸을 돌보기를 바란다.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나약한 피해자는 어찌보면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한없이 약해지고 무기력해지는 피해자상은 이 사회가 만든 덫이 아닐까. (201p)

 

수희는 지지고 볶으며 믿음을 쌓아가는 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나타나면 지나치게 이상화해서 대하다가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바로 신뢰를 거둬버리는 것이 수희가 자기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 관계 맺기는 치유의 기회가 아니었다. 아버지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수희에게 관계는 늘 위협으로 다가왔다. (212p)

 

공부 욕심이 많던 수희가 명문대에 간 친구의 대학 생활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짠했다. 개판인 내 삶의 원흉이 가해자이기 때문에 수희는 여전히 복수를 꿈꾼다. 피해 경험에 갇혀서 삶이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힘들겠지만 자기가 겪는 고통을 절대화하기보다 지금-여기에서 잘 사는 방법에 좀 더 집중하면 어떨까.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다고 해서 당장 피해 경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 삶을 들었다 놨다 하는 문제로 작동하는 현실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217p)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에서 강간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 침해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다른 폭력하고 다르게 성폭력 피해는 단순한 침해가 아니라 더럽혀졌다는 도덕적 의미가 덧씌워진다. 이런 관점은 성폭력을 성별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더럽고 수치스러운 성 문제나 난폭한 성관계로 보는 사회 통념에 맞닿아 있다. 때로는 피해 자체보다 더러운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225p)

 

수다를 떨 때도 자기는 오픈할수록 가관, 어두침침한 것만 나오니까, 할 얘깃거리가 없었다보통 자신을 열어 보이면서 허물없이 친해지기 마련인데, 현주의 어린 시절은 공감을 얻기에는 너무 특별했다. (228p)

 

현주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이 어떤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또는 장기간 심리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현장에서 자기 방식과 환경이 충돌하는 시간을 온전히 겪고, 때로는 적응하고 때로는 부적응하며 어쨌든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233p)

 

시간이 지나고 피해자에게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면서 피해 경험의 의미도 달라진다. 더는 내 인생의 발목을 붙잡지 않는 일, 다른 사람의 고통에 접속하고 연대할 수 있는 힘을 확인하게 해준 경험, 살아가면서 또 다시 겪는다고 해도 이제는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일이 된다. 피해 경험은 없어지지 않는다. 피해자의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재해석된다. (235p)

 

5. 그때... 엄마 어디 있었어? -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어머니도 무슨 상황에 있었다 하더라도 어머니라면 마땅히 자식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 어머니라면 딸이 입은 피해를 모를 리 없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바로 피해 상황을 끝내고 가해자를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어머니 구실이다. 그렇지만 열림터 활동을 하면서 만난 어머니들은 마치 지뢰를 밟고 서 있는 사람처럼 자기에게 닥친 일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했다. 어머니들은 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했다. 또 친족 성폭력 가정의 어머니라는 낙인이 주는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다른 자녀들을 걱정하는 마음에다 자기가 겪는 고통과 딸의 고통이 한데 엉켜 어머니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238p)

 

딸이 한 고소 때문에 아버지가 구속되면 어머니는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된다. 특별한 기술도, 모아둔 돈도 없는 어머니의 벌이는 그야말로 부업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남은 아이들을 보살피며 살아가야 할 어머니의 일상이 얼마나 고단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 모든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딸의 희생이다. 딸만 참아주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듯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어머니들이 고소를 결심한 딸에게 가족을 생각하라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274p)

 

 

6. 체념과 화해 사이 - ‘괴물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또 다른 선택

 

피해자와 가해자가 맺고 있는 가족이라는 사회적 관계는 삶의 여러 장면에서 부딪힌다. 얼굴을 마주치는 직접적인 대면이기도 하고, 죽음, 결혼, 이혼 같은 제도적 마주침이기도 하며, 보살핌, 외로움, 인정 같은 정서적인 목마름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마주침에 혼란을 겪으면서도 성폭력 피해 경험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자기를 추스르며 일상을 살고 있었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도 가해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경제적 필요 때문에 가해자 곁에 머물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가해자에게 아버지 구실을 요구하고 보살핌을 바라는 이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애초에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알려주는 정보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삶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감정과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변화하게 만드는 사회적 영향들을 생각해 볼수도 있다. (330p)

 

에필로그. 살아남아 말하는 우리가 치유자

 

이 책은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이 책의 피해자들은 모두 열림터에 산 사람들이고, 열림터에 오는 피해자들의 대부분 빈곤층이다. 그렇다고 해서 빈곤층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빈곤층 피해자들은 그만큼 고립되거나 방치돼 있는 데다 다른 인적 자원이나 경제적 자원이 없기 때문에 쉼터로 많이 온다. 쉼터로 연계되지 않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까지 포괄하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주제가 친족 성폭력 피해이기 때문에 피해를 중심으로 삶의 서사를 엮을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이 피해자의 일상에는 피해와 고통만 가득하다고 받아들이거나 피해자를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여기게 될까봐 염려스럽다. 피해자들에게는 상처와 결핍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유머와 웃음이 묻어나는 일상이 있다. ...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고통을 있는 힘껏 통과하면서 그 고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려고 애쓰는 이들은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 생존자. 그리고 자기 경험을 세상에 이야기함으로써 또 다른 생존자의 아픔에 손을 내민 치유자기도 하다. 살아줘서, 이야기해줘서 참 고맙다. (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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