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비상하는 새 2022. 1. 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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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종이책, 291p)

 

ㅎㅎ여성주의 책인데도 '핑꾸' 최근 개정판은 핑꾸는 아니더라만...

 


1.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젠더(gender, 성별) 문제는 사적인 문제거나 하찮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모순이다. 그래서 젠더 문제는 당연히 이해 관계, 권력 관계의 충돌이다. 남성 권력은 분명, 여성을 억압하는 이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운동은 여성도 세상으로 나오겠다는(‘출세하겠다는), 남성과 함께 사회를 책임지겠다는(‘권력을 잡겠다), 여성도 먹고 살겠다는(‘파이를 빼앗겠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장애인이나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때와는 다르게, 자기 권리를 외치는 여성을 사회가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여성에게는 언제나 권리보다 도리(의무)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여성들은 항상 자기주장을 할 때,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접두어를 붙인다. (47p) 어떤 면에서 부르주아 지식인 남성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옹호하는 좌파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상대화해야하는, 자신을 후원하는 아버지를 버려야 하는,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가사)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야말로 존재의 전이인 것이다. (49p)

-> 페미니즘이 남페미라 주장하는 남성과 같이 갈 수 없는 이유!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

 

-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 사이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으로서 여성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한 여성의 실수나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59p)

 

- 극심한 성별 직종 분리, 성차별적인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여성은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 공식적 직업 영역에서 거의 사라진다. 때문에 한국 남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만나는 여성들을 동료로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도 자신이 사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의 연장으로 본다. (62p)

 

- 가부장제는, 가족은, 국가는, 민족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활용, 매개, 동원함으로써만 유지된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65p)

 

- 오늘날에도 여전히 막강한 정신 질환에 대한 발달 이론들은 주로 프로이트 학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를 대할 때 어머니와의 관계부터 묻는다. 만일 어머니가 인간 발달에 그토록 대단한 영향을 끼친다면, 그리고 그 영향이 그토록 부정적인 것-치맛바람, 과보호, 입시비리 ...-이라면, 이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어머니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머니가 문제라면 아버지가 육아를 담당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합리적인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 어머니는 전지전능하다며 권력(책임)’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것을 사용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69p)

 

여성주의, ‘가장 현실적인세계관

 

- 나혜석과 동시대에 삶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은 말년에 가족과 헤어져 정신분열로 자해를 거듭하다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의 비참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진다. 나혜석의 삶은 죽음으로 환원되었지만, 이중섭의 죽음은 삶으로 환원된다. .... 자기 시대의 지배 규범에 삶을 일치시키기를 거부한 여성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는다는 신화 나혜석 콤플렉스, 잘못은 사회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에게 있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협박일 뿐이다. 여성들을 겁먹게 하는 것은 나혜석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남성 사회의 해석이다. (79p)

 

-> 나 또한 나혜석의 삶을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의 비참한 말로라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고를 뒤엎는 해석이었다. 나 또한 여전히 남성의 시각에서 많은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소름이 끼쳤다.

 

사랑과 섹스

 

- 여성은 아무리 공적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어도 사적인 존재로 간주되기 쉽다. 성희록,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은 남성이 여성을 사적인 존재로 환원할 때 발생한다. 남성 문화는 여성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는 가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개별 남성들은 집 밖으로 나와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훼손된 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애인이거나 어머니이지, 남성의 동료일 수 없다는 것이다. (107p)

 

- 남성들에게 성과 폭력은 분리되지 않는다. 남성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건 저항을 자극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가정폭력인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생각한다. (109p)

 

- 남성 문화는 여성과의 섹스(혹은 강간)따 먹는다’, ‘맛있겠다등 먹는 행위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 인류학자에 따르면, 서양 문화에서 남성이 섹스할 수 있는 여성은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순서로 비유된다고 한다. 동물은 집에서 기르는 순서대로 인간으로부터 멀어지는데, -고양이-돼지-호랑이는 각각 누이-사촌-친족 제도 밖의 여성-이민족 여성을 상징한다. 너무 가까워도(누이), 너무 멀어도(이민족 여성) ‘못 먹는섹스 금지 대상인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이 먹는 것이다. (112p)

 

- ‘화학적 거세대상을 전체 성범죄자로 확대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문제는 성범죄의 원인이 성별 권력 관계의 불균형 때문이지, 남성 호르몬 과다로 인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화학적 거세는 문제를 왜곡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는, 매우 질 나쁜 맥거핀(속임수나 미끼)이다.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125p)

 

-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성범죄도 사회적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완전한 근절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러니까 우선 화학적 거세라도 하고 보자? 진실은 그 반대다. 해결 방법 중 하나라는 화학적 거세의 사고방식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127p)

 


 

 

 

 

2.

 

가정폭력의 정치학

 

- 성차별 사회에서 인식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은 늘 내가 본 것을 믿을 것인가, ()이 말한 것을 믿을 것인가의 문제로 고통받는다. (131p)

 

- 자신만이 인식 주체라고 믿는 남성의 생각 속에서 가장 중요한 억압은 자기가 경험한 억압이다. 그 외의 사회 문제는 부차적이고 특수하고 주변적인 것이 된다. 여성이 당하는 억압과 고통이 (자기가 모르므로) “없다고 주장한다. (133p)

-> 이준석, 이대남들의 논리

 

- 자신을 진보인사로 정의하면서 남성 중심적 계급 정치의 이름으로 여성이 경험하는 억압은 시시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운동가를 역겹다고 하는 것은 무식을 넘어 지극히 우파적이다. , 이러한 사고는 기층 계급의 여성운동을 무시하고 성역할 모델을 중산층에 한정한, 그야말로 부르주아적, 몰계급적 발상이다. (133p)

 

-> 운동권 내 성폭력 공론화 움직임에 대해 유시민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자는 건가라고 한 발언, 최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정의당 전 당대표 김종철 의원의 성추행을 미투한 사건 등 진보인사라고 여성주의적인 것은 아님. 더 이상 속지 말것! 남페미는 없다.

 

-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베티 프리단도 매 맞는 아내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도 남편에게 10~20여 년 동안 구타당했다는 사실도 밝혀진 적 있다. 가정폭력은 계급 문제로 인한 억압이 아니라 성별 권력 관계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여성이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134p)

 

- 사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폭력 상황에서도 가해 남편의 권력(=‘버릇’)을 고치고 가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전쟁, 조직폭력, 학교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감동시켜 폭력을 멈추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맞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아내일 때는 예외이다. 그 인간이 여성이라면, 여성이 아내가 되면, 맞지 않을 인간의 권리보다 여성으로서 참아야 할 도리가 더 강조된다. 여성은 너무도 쉽게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140p)

 

- 남성과 남성의 갈등은 당연히 정치이고 역사라고 여겨진다.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폭력, 미국의 이라크 침략 등 남성이 남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억압이고 이에 대한 저항은 투쟁이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개인적 문제이거나 집안일, 혹은 기껏해야 격렬한 로맨스로 간주된다. 여성은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 피해자가 여성일 때, 피해는 언제나 사소화된다. 여성폭력은 남편이 총을 쏘면 신고하라는 말처럼, 피해의 심각성이 가시화되어야만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된다. 가정폭력은 해결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면 할수록 사건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여성운동이 활발할수록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가정폭력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익숙한 렌즈, 즉 남서으이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142p)

 

-> 최근 스토킹 살인, 전 부인 살인 등 맞거나 다치거나 심지어 죽어야만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경찰 공권력이 개입하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글이 처음 쓰여진 1995년과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여성운동은 반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갔다는 점에서 한탄스럽기도 하지만 최근 활발한 여성운동으로 인해 관련 법개정이 조금씩이나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의미하진 않구나 하는 안도감도 생겨난다.

 

- 폭력을 당한 아내의 고통은 한국 사회 구조에서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매 맞은아내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들의 고통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가부장제 가족 제도의 효율적 작동을 위협한다. 그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안식처 가족의 신화, ‘보호자 남성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고통 경험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존경받지만, 어떤 고통의 경험자들은 더럽다고 추방되고 낙인 찍힌다. (143p)

 

-> 성매매 생존자 여성들의 경험 또한 마찬가지지...

 

 

피해자다움이라는 성역할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 인간을 남성,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일이 아니라 이성애 제도의 산물인 것이다. (155)

-> 저자의 쓰까논리가 집중적으로 서술되어 있던 부분. 과학적 (생물학적) 사실(fact)를 사회적 명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역시나 이해 불가. 또한 동성애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그들이 동성을 사랑하든 뭐든 노관심) 그들의 행태가 여성혐오적이기 때문에 반페미니즘적인 것이다!

 

-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해 남성과 가부장제 사회가 실질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이라기보다는 남성 생물학의 자연스런 결과로 성폭력의 불가피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개념과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법 운용이나 일상생활에서 모두 피해 여성의 입장이 아니라 남성의 경험과 이해에 의해 구성된다. 때문에 남녀 모두에게, 여성의 주장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남성의 주장은 자연스럽고 객관적인 것으로 수용된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인권, 성폭력 가해 용의자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지, 피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의 권력은 아니다. 이처럼 인권 개념의 보편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될 때만 인권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포르노그래피 또한 좋은 예다. 원래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국민국가가 탄생한 뒤, 거대한 국가 권력에 비해 취약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역시 같은 맥락의 권리들이다. ,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 (160p)

 

- 공적 영역의 정치적, 갈등적 성격에 비해 사적인 것은 동의가 전제되는 영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적인 영역

에서는 폭력과 강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왜 떠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국가폭력이나 학교폭력, 전쟁의 피해자에게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여성의 삶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163p)

 

- 이슬람 사회 여성들이 겪는 여성 할례의 고통에 대한 서구 여성주의자들의 문제 제기는, ‘비서구사회에 대한 타자화와 제3세계 여성에 대한 피해자화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음핵 절개를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성주의는 여성들 간의 차이를 존중하지만, 어떤 차이까지 수용하고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쟁적이다. (170p)

 

-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를 추구하는 것이다.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179p)

 

나의 듦, 늙음 그리고 성별

 


 

3.

 

성판매 여성의 인권

 

- 섹슈얼리티 자체가 성매매화된 오늘날, 어떤 의미에서는 성판매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차이보다, 성판매 여성 내부의 차이가 큰 경우가 더 많다. (206p)

 

- 탈 성매매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여성주의자인 나의 주장이 객관적인 것으로 간주되거나, ‘당사자’, ‘민중 여성의 목소리가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 것은,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약자의 큰소리(tyranny of minority)’는 불행과 고통이 심각할수록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착각을 주기 쉽다. (212p)

 

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

 

- 국가가 성매매 방지법을 제정한 이유는, 여성을 보호하거나 고삐 풀린 남성 섹슈얼리티를 규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비대화된 성산업이 정상적인국가 경제를 위협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인신매매 3등급 국가’, ‘여자 장사 왕국이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20p)

 

-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의 사랑과 노동, 성매매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여성의 노동은 성애화(sexualized)되었고, 여성의 성은 매춘화되었다. 한국 사회는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뿐 아니라 교사, 스튜어디스, 간호사, 음식업소 종사자, 사무직 여성 등 성산업과 관련 없는 일에 종사하는 여성에게도 일상적으로 여성으로서의 규범을 노동 조건으로 요구한다. (222p)

 

-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성매매를 반대하는 것은 성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성매매는 성 보수주의나 윤리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관계의 문제이다. 성매매와 포르노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 시스템의 핵심이다. ... 성매매는 강간할 권리를 사는 것에 다름 아니다. (227p)

 

 

군사주의와 남성성

 

-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는 있어도, 이행했다고 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군 가산제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처음부터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사람들에게 그 면제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격이다. 면제의 기준을 문제삼아 여성과 장애인의 징병을 주장할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면제된 의무를 안 했다고 해서 개인의 권리와 생존권(취업권)을 박탈하거나 감수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 여성과 장애인은 특권층이어서 병역의 의무가 면제된 것이 아니라, ‘2등 시민이므로 군 가산제라는 권리도, 병역이라는 의무도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 군 가산제 논란의 본질은, 남성들 간의 계급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치환, 전가된 것이다. 군 가산제 논란은 이른바 이회창 가족과 같이 군대를 가지 않는 남성 혹은 남성을 군대에 동원할 수 있는 남성 지배 세력과 군대에 가야 하는 남성 간의 갈등이, 군대를 가는 남성과 군대도 못 가는여성들 간의 갈등으로 이동한 것이다. (248p)

 

 

글로벌 자본주의와 남성성, 폭력의 시장화

 

- 사랑과 폭력은 원래 같은 의미지만, 특히 상대방의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사랑이나 폭력은 모두 자기 확신 행위이지 상대방의 매력이나 잘못과는 무관하다. .... 폭력의 시비(是非)와 정의를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고찰하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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