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철학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이충녕

비상하는 새 2023. 6. 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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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들어가는 말내 삶의 기준을 만드는 철학의 쓸모

철학이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 누구나 다 철학 이론가가 될 수 있으며, 누구나 다 이미 철학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 분야로서의 철학은 역사라는 특별한 무기를 갖기에 따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철학은 무작위적 사고의 나열이 아니라 사고의 역사적 체계를 담고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어떤 사회적 조건이 어떤 분석적 관점으로 이어졌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철학자들은 체계적으로 추적하려 한다. 그러한 역사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지금 우리가 처한 조건 속에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유사한 생각이 과거의 어떤 조건 속에서 무슨 논리를 갖고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떤 문제점이 있었으며 어떻게 비판되거나 극복되었는지 등을 우리는 철학자들의 분석에서 배울 수 있다. 또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을 접해봄으로써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적의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1부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싶을 때: 내면의 성장을 위한 철학

1장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야 하는 이유

정신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명이 죽음의 충동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람들이 죽음의 충동을 마음껏 발휘해서 서로를 공격하고 자신을 해친다면 사회는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명은 죽음의 충동을 마음껏 표출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제동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그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는 도덕이다.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선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악하다는 도덕적 사고방식에 익숙하다. 사회는 우리가 그런 사고방식을 갖도록 온갖 방편을 통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사회의 존속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교육, 문화, 법적 통제 등으로 인해 도덕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신이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의 충동을 가졌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죽음의 충동은 그렇게 눌러 놓는다고 해서 억압당한 채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무리 억압하려 해도 죽음의 충동은 항상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도덕은 공격성의 제거가 아니라 또 다른 공격성의 탄생으로 작용한다. 모든 사람의 평화적인 공존을 추구하는 것 같은 사실은 사실 비도덕적인 적을 세워두고 그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파괴의 사건들은 항상 도덕의 이름 아래서 이뤄졌다. 또한 도덕 등의 수단을 통해 사람들의 공격성을 통제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사실은 죽음의 충동 중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렇게 사람들을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상의 생명력을 빼앗아 무생물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려는 파괴적인 충동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 역시 상반되는 방향의 에너지들이 공존해야만 제대로 된 평형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중 한 방향의 힘을 긍정적이라고 하며, 반대 방향의 것을 부정적이라 하지만, 사실 그 둘은 모두 인간의 존재에 나름의 역할에 따라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행복을 흘러넘치는 긍정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각이다. 정신의 행복은 긍정성이라는 물을 안정적으로 담고 있는 부정성의 견고한 그릇을 전제로 한다.

 

2장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때 얻어지는 자유

자유가 증대된 사회의 피로함 : 너무 많은 자유가 심적인 부담으로 이어진다면, 그 부담을 제거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무한한 자유 안에서 인간의 행복이 실현되기 어렵다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대인의 모습(종교/공동체/특정한 인간관계)은 단순히 권위주의 사회의 잔재 또는 억압받는 상태로의 퇴보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유의 제한은 시대와 무관하게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자신이 세운 규칙이기에 자유롭다 : 규칙과 자유를 연결시키는 칸트의 생각은 이해하기가 약간 까다롭다. 왜냐하면 규칙과 자유는 반대의 개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칸트가 규칙과 자유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는 규칙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부과된 규칙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세운 규칙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플 때는 언제나 밥을 먹겠다는 규칙을 세운 후 그것을 잘 지키는 사람은 자유로운 게 아니라 욕망에 충실한 것이다. 배가 고파도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 필요할 때는 참고 굶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만약 아침 9시에 일어난다는 규칙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근거가 있다면 그 규칙을 따르는 것도 자유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 규칙이 그저 사적인 욕망과 편의를 위해 세워진 것이라면, 아무리 그 규칙을 충실히 따라도 거기에는 결코 칸트가 말한 진정한 자유가 없다.

선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자유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는 다른 사람이 부과한 규칙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세운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적인 욕망에 봉사하는 규칙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성의 요구에 부합하는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3장 성격은 내 행동을 얼마나 규정할까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똑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이유와 원인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설명을 제시한다. 이유는 내 욕망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입장에서 내려진 결정의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 원인은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조건을 강조한다. 김재권은 이 둘 중 삼인칭적인 원인이 아니라 일인칭적인 이유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어야 자신을 한 명의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4SNS가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

분열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다 : 지난 20년은 통제를 통해 만들어진 품위와 이미지가 유례없이 파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기간이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서서히 의심, 음모, 조롱, 희화화 등의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겪었다. 우리는 지금 그 내재적이었던 변화가 표면 위로 폭발해 분출되는 여러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분열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기도 하다. 한 방향으로 통제된 정보는 무작위한 정보만큼이나 큰 해악, 혹은 그 이상으로 거대한 해악을 만들어냈다.

 

5장 소소함의 의미를 되찾는 것에 관하여

일상의 노동과 휴식도 특별해질 수 있다 : 우리는 여러 사회적인 장치로 인해 가려진 소소한 일상 속의 가능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소재보다 표현의 능력에 집중해 일상적인 소재 안에서도 훌륭한 서사와 문장을 이끌어 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쩌면 그 연습은 일상으로부터 의미를 빼앗아가는 사회구조를 변혁하는 일이 수반되지 않는 한 이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소소함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하나는 불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도 개인적 차원에서 소소한 일상의 매 순간마다 통합적인 의미를 조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하나의 경험이 실현될 가능성을 빼앗아가는 사회적 조건을 뒤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6장 삶이라는 전체로부터 지금의 순간을 바라보는 것

에피소드와 에픽의 차이 : 우리가 순수한 에피소드보다 에픽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인간의 의미 형성 과정이 해석학적 순환의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 작업은 짧은 호흡 안에 한 번 일어나버리고 끝나야 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보다 인간의 해석은 부분과 전체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적으로 오가며 무한히 발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의미는 해석을 통해 생겨난다 : 모든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의미는 객관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의미라는 것이 실체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의미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삶의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의미는 해석을 통해 생겨난다. 어떤 사건을 겪거나, 인간관계 안에 놓여 있거나, 무언가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생겨나지 않는다. 의미는 우리가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에서 그런 삶의 요소들을 해석해낼 때 생겨난다.

 

7장 논리적인 지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찾아오는 깨달음

8장 인간이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하여

 

2부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해하고 싶을 때: 인류애를 되찾기 위한 철학

1장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람을 규정할 수 있을까 :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딱 집어서 규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수학의 공리도 아니고 손에 잡히는 물체도 아니다. 사랑은 우리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변화무쌍하게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유효한 정의를 세우는 건 무의미한 짓일 수 있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다.

건강하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는 법 : 프롬은 사랑의 근원을 분리로부터 찾았다.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존재다. 자의식을 가졌다는 것은 나와 주변의 사물을 구별할 줄 안다는 이야기다. 나와 주변을 구별하면서 우리는 나 자신으로서 살아가게 되지만, 그만큼 외로운 존재가 된다. 프롬은 사랑이 이 근원적인 외로움을 이성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2장 누군가를 가족처럼 위하는 마음

3장 너의 존재는.

4장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

무시하는 마음이 만든 대화의 장애 : 진정으로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다. 나와 정반대되는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나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 그러는 순간 대화의 목적은 하나로 정해진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 이 순간부터 더 이상 대화는 없다. 강의와 설교만이 있을 뿐이다.

생각보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 생각보다 사람들 사이에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사실 비슷한 면이 더 많고 차이는 비교적 적다. 상대방과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차이가 압도적으로 커서가 아니다. 그 차이를 바탕으로 상대와 나를 나누고 그 안에서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려는 우리의 경향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차이와 우월감이 주는 즐거움은 인간 심리를 지탱해주는 주요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태를 정확히 보는 것을 방해한다. 상대의 생각을 더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은 차이를 부풀려서 강조하기보다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 놓은 수많은 공통점을 인정하면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사태를 더 정확하게 보는 길이고, 서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5장 행복이 무엇인지 혼자서는 알아낼 수 없는 이유

인간의 언어를 명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가 :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애초에 말의 진정한 의미와 올바른 사용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어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면서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의미들이 덧붙여지고 기존의 의미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발전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6장 증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깊은 싫어함과 얕은 싫어함의 구별 : 헝가리 출신 철학자 아우렐 콜나이는 증오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깊이 증오하는 일이 드문 까닭은 증오가 상대방에 대한 깊은 관심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애정이 없으면 싫어하지도 않는다. 보통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꺼버리는 경우가 많다. 콜나이는 인간의 심리가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차단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잘 커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7장 공감은 반드시 좋은 것일까

 

3부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해보고 싶을 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철학

1장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과연 진실일까

2장 나는 존재할까

3장 경험은 그리 단순히 진실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4장 일상에서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

5장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가

6장 도덕이라는 이름의 족쇄

강자의 논리가 선함을 결정한다는 오해 : 강자의 도덕이라고 해서 꼭 항상 폭력적이고 무자비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강자는 약자에게 평화를 선사할 수도 있고, 패배자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약자들이 평화를 추구하고 패배자를 보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자들은 스스로 힘이 없기 때문에 평화를 사랑한다. 또한 자신이 언제든 패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패배자는 보호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강자는 넓은 마음, 호탕함, 여유 등에 바탕을 두고 평화를 실현하고 패배자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준다. 강자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그 일이 자비롭고 명예롭고 고귀하기 때문이지,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 얽매여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고대의 도덕 코드가 거의 사라지고 아주 다른 도덕관념이 자리 잡게 된 걸까? 니체가 제시한 가장 충격적인 주장은 바로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그는 약자들의 복수심으로 인해 지금의 도덕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다수의 약자가 강자들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에 강자의 특성들을 악한 것으로, 약자의 특성들을 선한 것으로 프레임을 씌워 왔다는 것이다.

 

7장 왜 열심히 살아야 할까

 

4부 살아갈 날들을 고민해보고 싶을 때: 인생의 진실을 깨닫기 위한 철학

1장 모든 좋은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

2장 행복의 양과 질,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행복에 정답은 없다 : 밀은 인간은 동물적 욕구보다 훨씬 고상한 기능들을 가졌다. 인간은 일단 그런 기능들을 인식하게 되면, 그런 기능들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 상태를 결코 행복이라 여기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밀은 육체적 쾌락을 일부러 피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인간은 육체적인 즐거움만으로는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더 복잡하고 더 넓은 그릇을 가졌으며, 그 그릇을 채우며 진정으로 행ㅂ고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이 높은 즐거움 역시 추구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질의 즐거움으로는 대표적으로 사회적인 활동과 기여 속에서 느끼는 사회적 즐거움과 지적인 성취를 통해 얻는 지적 즐거움이 있다.

 

3장 사람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기

4장 본래적인 나를 찾아서

5장 철학은 어떻게 삶의 위로가 되는가

6장 감정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것

7장 한 시대를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것

8장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부조리함 :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계속해서 삶이라는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카뮈는 이런 사람을 부조리한 인간이라고 불렀다. 부조리한 인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절대적인 자유를 얻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 자체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흔히 자유라는 개념은 나의 행동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삶 쪽을 선택해 계속해서 삶이라는 이야기를 지속시키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 전체를 자유의 무대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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