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_내려놓기>
Ⅰ. 기도의 힘
01 소원 성취를 비는 기도
02 윤회와 전생을 넘어
부처님은 고락(苦樂)을 모두 고라고 하셨습니다. 고와 낙이 돌고 도는 데서는 괴로움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비록 지금 낙이라 해도 그것은 곧 고로 전환될 수밖에 없기에 인생은 결국 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고락의 사슬, 즉 윤회의 고리로부터 벗어나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해탈(解脫)이라 하고 열반(涅槃)이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고락의 사슬, 윤회의 고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고락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고락의 근원이 되는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져야 행복하다’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라는 바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바라는 바는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일도 아니고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치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실천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과법(因果法)의 원리입니다. (17)
03 욕심 없는 간절한 발원
04 치유와 행복의 길을 찾아서
05 마음 다스리는 법
06 화 다스리는 법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고 정작 나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좀 알아줘.’ 이렇게 상대에게 자기 마음 알아달라는 요구만 하는 겁니다. ‘도대체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는 너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 이 말입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의 상태는 어떤가요?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말소리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됩니다. 얼굴이 굳어집니다. 잠도 안 옵니다. 이런 것을 괴로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괴로움은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될까요?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서, 아이는 공부 잘하고,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내는 집을 안 비우고, 부모님은 잔소리를 안 하고, 친구는 빌려간 돈을 갚고, 이러면 해결이 되는 걸까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상대방이 쥐고 있는 겁니다. 상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내가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체적인 삶일까요? 그러한 인생은 이미 나의 인생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딸린 종속적인 삶일 뿐입니다.
생각을 한번 뒤집어보세요.
오늘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어서 집에 와서는 텔레비전만 보고 있구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술을 마셨구나, 그래서 집을 비웠구나, 그런 이유가 있어서 돈을 못 갚았구나, 이렇게 ‘~구나’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찡그렸던 인상이 펴지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집니다. 내가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가 웃어도 ‘아, 그래서 웃었구나.’ 하고, 그가 인상을 써도 ‘아, 그래서 인상을 썼구나’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되면 상대가 웃든 인상을 쓰든 거기에 꺼들려서 괴롭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그걸 몰랐구나!’ ‘내가 그걸 잘못 생각했구나!’ 하고 뉘우칠 때 내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집니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는 것, 이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32)
07 몸을 낮추고 마음을 숙이고
08 매일매일 기도해야 하는 이유
참회기도를 하면서 마음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을 ‘업장 소멸’이라고 합니다. 단지 절을 한다고, 일어나고 엎드리고 일어나고 엎드리는 것을 반복한다고 업장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업장이고, 그것을 뉘우쳐 마음이 풀어지는 것이 업장 소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더라도 내가 또 내 생각에 사로잡혀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말아야겠구나.’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것이 앞으로 올 허물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매일 참회기도를 하면, 어제 같았으면 화냈을 일을 오늘은 화내지 않게 되고, 슬피 울었을 일을 울지 않게 됩니다. 혹시 화를 냈다 하더라도 어제처럼 하루 종일 그 생각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내가 또 내 생각에 사로잡혔구나.’ 하고 금방 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만큼 괴로움과 속박은 사라지고 자유와 행복은 더 커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37)
09 자기 업을 분명히 알아야
10 기도를 방해하는 달콤한 유혹 - 마장
11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Ⅱ. 수행자의기도
즉문즉설 법회에서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괴로움을 내어놓고 그 문제를 풀 기도문을 구합니다. 그러나 내 문제를 풀 수 있는 무슨 신비한 주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밖으로 향해 있는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그것이 유일한 기도문입니다. 그 기도문으로 매일매일 기도하면 어느새 자신의 괴로움과 얽매임이 사라지는 걸 알게 됩니다.
12 기도를 해도 원하는 대로 안 될 때
이 세상에는 기도를 해도 온갖 일이 일어나고 기도를 안 해도 일어납니다. 세상일은 기도와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또 아무리 기도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이미 일어난 일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일이 왜 내게 일어났을까?’ 하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수행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큰일이고 괴로움이지만, 기도하는 수행자는 이것을 도리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일어나는 사건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일어나는 사건일 뿐입니다. 교통사고가 일어났다고, 회사에서 잘렸다고,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습니다. 그건 지금의 내 생각이고, 그런 일은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그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수행을 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좋다, 나쁘다’에 항상 끌려다니면서 괴로워합니다. 수행을 하면 보통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것에서도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56)
13 가족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싶을 때
14 참회가 안 될 때
15 간절한 마음이 안 될 때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건 큰 고통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상태가 행복한 줄 알면 됩니다. (70)
16 명상과 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명상을 할 때는 소리가 들리든지 말든지, 몸에서 감각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머리에서 어떤 생각이 들어오든지 말든지, 거기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호흡을 자꾸 놓치게 되는데, 놓치면 또 다시 돌아오고 놓치면 또 다시 돌아오고 하다 보면 온갖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그것이 결국 내 집중을 방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도 내 관찰을 방해하지 않고 몸에 통증이 있어도 통증은 있을 뿐이고 나는 집중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고요해지고 점점 맑아집니다.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왜 일어날까?’ ‘나는 왜 앉으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날까?’ 하는 것은 번뇌에다 번뇌를 더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떠오르더라도 흐르는 물처럼 가만히 내버려두고 주어진 수행 과제에만 집중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번뇌 망상은 저절로 잠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절을 할 때에도 과제가 있는데, 무엇을 과제로 삼아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령 ‘나를 낮추겠습니다.’가 과제라면 절을 하면서 나를 낮추는 게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나를 낮추겠습니다.’ 라는 말에 집중하라는 게 아니고 ‘나를 낮추겠습니다.’라는 과제를 들고 어제 하루 생활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제 낮추지 못했구나. 나를 숙이겠다고 하고는 또 안 숙였구나. 내가 잘났다고 고개 쳐들고 소리 쳤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과제를 지키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뉘우치는 거지요. 만약 이 과제가 없다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과제가 있으면, ‘내가 이걸 놓쳤구나. 죄송합니다.’ 하게 되니까 찹회할 때 간절해지는 겁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알아차린 뒤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마음, ‘다음에는 안 놓쳐야지.’ 하는 게 원(願)입니다. ‘아, 놓쳤구나. 다음엔 안 놓쳐야지’ ‘또 넘어졌구나. 일어나야지.’ 이렇게 알아차리고 뉘우치고 다시 도전하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절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마음이 일어나면 고개를 쳐들고 어깨를 쫙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잘못 했음을 알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게 되지요. 나를 내려놓고 완전히 엎드리는 동작을 할 때 번뇌가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81)
17 게을러져서 기도하기 싫을 때
18 몸이 아파 절을 못 할 때
19 새벽에 하는 기도, 밤에 하는 기도
20 사경을 해서 얻는 공덕
21 집안이 잘되는 기도
Ⅲ. 한 시간의 행복
22 정토행자 참회수행법
23 삼귀의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인 사람입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인 사람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비록 삶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고 하는 일마다 넘어지더라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시작합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달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이 어린 마음이 어리석은 마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곧 중생입니다.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집니다. ‘이건 내 탓이 아니야!’라고 변명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수행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괴로움은 다 내 마음이 짓는다는 전제에 털끝만큼이라도 예외를 둔다면 그것은 벌써 수행에서 어긋난 것입니다. (118)
24 수행문
완전한 행복, 완전한 자유
괴로움과 속박, 이 둘을 합해서 고(苦)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를 열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를 행복, 속박이 사라진 상태를 자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늘 자유와 행복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한 행복이 열반이고, 완전한 자유가 해탈입니다. (123)
25 참회문
용서할 게 없는 이치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내 뺨을 때렸다고 합시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내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난 이 사건은 제1의 화살입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집에 와서 계속 그 사람을 미워하며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패줄까? 사람을 시켜서 복수할까?’ 이런 생각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입니다. 그러다가 화난다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가족이 뭐라고 하면 가족에게 화를 벌컥 내고 싸웁니다. 이건 모두 제2의 화살에 속하는 것입니다. 뺨을 때린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화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제1의 화살을 맞은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때린 사람을 미워하는 게 결국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고, 자신의 고통을 계속 확대 재생산하게 되는 겁니다.
아내가 다른 남자하고 바람을 피우면 굉장히 화가 나겠지요. 이 말은, 아내는 다른 남자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나는 나를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하루쯤 꽁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한 달이고 일 년이고 꽁해서 자기 인생을 낭비해 버리면 자신은 언제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소중한 에너지를 남 미워하는 데 쓰느라 정작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면, 이게 현명한 삶일까요? 남의 행위에 구애받지 않는 게 자기를 위하는 길입니다. 이런 이치를 확실히 깨쳐 알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이혼을 해도, 시험에 떨어져도, 병이 나도, 사업이 망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136)
수행의 궁극 목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면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마다 괴로워지기 때문에 삶이 괴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으뜸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려면 상처를 입으면 안 됩니다.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도리를 알아버리면 됩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어떤 상황에 부딪혀도 인생을 잘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른 참회 수행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36)
Ⅳ. 내려놓기
26 현재에 깨어서 다만 알아차리기
27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부지런히 정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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