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버지가 가장 잘 안다 : 전통적인 심리 상담의 실패
1장. 전통 이론에 대한 소개
1. 무엇이 문제인가?
- 심리 상담을 몇 년씩 받아도 여전히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수백만 여성들이 있다. 자신의 문제가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등 자신의 문제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문제는 바로 자신이라는 확신감을 갖게 된다. 가시적인 어떤 치료책도 없이 ‘남성 전문가’의 덫에 걸린 ‘여성 환자’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통적 심리 상담은 환자의 개인사를 탐구한다. 그러나 문제의 진정한 근원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성장 과정뿐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의 역사와 전통적 심리 상담 자체의 역사까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2. 문제에 대한 전통적 접근 방식
3. 전통 이론의 시조인 프로이트
4. 전통 치료 체제가 갖은 세 가지 신화
신화1. 문제는 모두 자신에서 비롯된다
신화2. 정신 병리학의 의학적 모델
- 빈곤 계층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삶에서의 선택권을 극도로 제한하는 사회 구조나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절대 통제 불가능한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억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상 성격이나 정신 질환이라는 진단 그 자체만으로도 종종 그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낙인을 만들어 낸다. 고용주나 집주인 등은 정신 질환 전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상당한 차별 대우를 한다.
신화3. 전문가
- ‘전문가’ 신화는 다시금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냉정하고 초연하며 합리적이고 박학 다식하며 힘있는 ‘전문가’ 이미지는 남성다움이라는 문화적 고정 관념에 잘 들어맞는 한편, 무지하고 무력하며 감정적인 환자라는 이미지는 여성다움이라는 문화적 고정 관념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전문가’ 신화와 ‘아버지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체계는 여성에게는 ‘자아 동조적’이고 남성에게는 ‘자아 상충적’이 된다. 이것은 여성은 자기 자신을 권위 있고 능력 있는 남성상에 비해 의존하는 열등한 존재로 스스로 받아들여 그러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여겨지도록 이미 사회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 심리 상담에서의 ‘아버지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불평등한 유형에 적응함으로써 여성들은 삶의 나머지 부분에서의 사회 지배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것이 강화된다. 요컨대, 여성들은 심리 상담을 통해서 그 동안 지속되어 온 사회적 종속을 수용하도록 교육받는다.
5.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 심리 상담에서 여성을 돕는 최선의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이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외부적’인 것이 여성의 내부로 들어가 ‘내면적’인 것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으로, 사회 구조가 어떻게 여성 심리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형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 여성적 증상에 대한 진정으로 심리 상담다운 접근 방식은 병리학적인 측면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건강함과 강인함의 씨앗을 찾는 것이다. 이 중 가장 본질적인 씨앗은 사회적으로 마땅한 배출구를 찾지 못했던 억압된 분노이다.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피해자’로서의 여성적 증상은 바뀔 수 있다. 우울증, 불안감, 심신증, 성적 억압, 자율성에 대한 두려움 등과 같은 전형적인 여성 질환에 내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우리에게 해롭게 사용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이롭게 이용할 수 있다.
2장. 내부에서 본 전통 심리 상담의 실제, 알고 싶었지만 묻기 두려웠던 정신 병원의 모든 것
1. 어떻게 전문가가 되는가 : 나의 심리학 수련 과정의 시작
2. 어떻게 환자를 진단하는가
3. 어떻게 심리 검사를 하는가
4.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가
- 약물 치료의 논리는 가히 감탄할 만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약에 중독되어 계속 사용하려는 사람은 병자로 보지만,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싫어하지만 점차 중독되는 사람은 병세가 좋아지는 사람이 된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약을 처방해 주는 사람이 그 사람의 병을 낫게 만드는 사람이다.
3장. 전통 심리 상담과 여성
- 프로이트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을 ‘과학적으로’ 소중히 간직함으로써 심리학 법칙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성성을 여성의 본성으로 보는 프로이트의 여성 심리는 여성성에 대한 어떠한 반항도 사실상 꺾어 버린다. 프로이트적인 맥락에서 정상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 여성의 사회화라는 최면적으로 끌려들어 가는 힘에 저항하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성취하기 위해 투쟁할 만큼 강한 여성은 비정상으로 여겨진다. 여성다움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여성의 모델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파생되고 널리 보급된 전통 심리 상담 모델에서 심리 상담가는 건강치 못한 여성성을 치료하는 존재이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사회에서 정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남성을 심리적으로 추종하는 길뿐이었다. 자신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권력을 가지려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여성답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자신의 흔적을 모두 없애야만 했다. 남자한테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봉사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다운’ 여성으로서 알맞은 욕구만 나타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존의 정도가 신경증적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 너무 많은 욕구를 나타내지 않는가 항상 조심해야만 했다.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은 곧 한 인격체로서의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었다.
- 다른 여성들로부터 분리되고 고립된 채 한 남자의 지배를 받을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또 왜 화가 나는지 인정하기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여성일 수도 있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바로 이러한 ‘정상적인’ 여성들이었다. 여성적인 무능력함이라는 사회 조건이 곧 ‘여성다움’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여성이라면 힘이 없는 것이 정상이라는 생각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체계적으로 속는 줄도 모르고 믿어 버림으로써 여성들은 지배를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왔다.
4장. 폴리라는 환자 : 소개글
5장. 전통주의 모델 : 폴리와 의사 선생님
2부. 성장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 인본주의 심리 상담의 실패
6장. 성장 심리 상담의 성장
- 미국에서 행동주의 학자들과 정신 분석 개업의들이 지배해 왔던 영역에서 하나의 이단 분파로 발달하기 시작한 인본주의 심리학은 1950년대에 심리학 부문에서 ‘제3의 세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확한 진단과 해석이라고 강조하는 전통 시각과는 달리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심리 상담에서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자체가 가장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병리와 그 치료를 의학적인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로저스는 심리 상담에서 추구하는 개인적 성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소개.
- 인본주의적 관점 역시 전통 체제에서와 똑같이 ‘문제는 모두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신화1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신화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못하는 내담자 자신을 비난하게 만든다. 그뿐 아니라 있지도 않은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함으로써 계속 오류를 범하게 된다.
- 인본주의 심리 상담의 내담자는 자기가 병들었다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전지 전능한 존재라는 걸 배우게 된다. 새로운 성장 심리 상담이 팔고 있는 개인의 자유라는 신화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물론, 경제적으로 또는 인종적으로 억압받는 남녀에게 가해지는 또 하나의 배신 행위가 된다. 서로의 괴로움을 나누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어 고통에 대해 여하한 형태의 집합적인 책임을 부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대신,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책임이 있다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자기 스스로 고통스러운 삶을 완전히 바꾸기에는 너무나 무력한 존재라는 측면이 무시되고 또 그 무력한 상태를 영원히 지속시키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본주의가 지향하는 바는 궁극적으로 억압 계층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다만 피해자를 비난하게 되는 또 하나의 과장된 선전 구호일 뿐이다.
7장. 인본주의 심리 상담과 여성주의의 실패로 끝난 결합
- 엘리자베스 프라이어 윌리암스는 [한 여성주의 심리 상담가의 비망록]에서 여성 억압의 해결 방안은 남성 유형의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성은 단지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강요했던 한계를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여성들 중 상당수는 윌리암스가 제시하고자 했던 것을 얻으려는 시도를 했고, 전에 비해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서적, 재정적 독립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보수가 있는 공적 영역의 일을 함으로써 얻는 장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성들의 삶이 크게 향상될 것도 틀림없다. 여성들에게 전문직을 가지라는 그녀의 제안이 갖고 있는 첫 번째 문제는 이 시대, 이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여성의 정신 건강을 이렇게 비현실적인 목표 여하에 따라 결정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만족스럽고 흥미롭고 도전할 만한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남성들에게도 제도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하려면 개인 상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삶 전체를 다시 구성해야만 한다.
- 진정한 여성주의 심리 상담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권력이 전체 여성의 총체적인 권력과 어떻게 뒤얽혀 있을 수 밖에 없는가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8장. 인본주의 모델 : 폴리와 성장 심리 상담가의 만남
3부. 여성과 심리 상담에 대한 새로운 접근
9장. 여성에 대한 새로운 사고 방식
1) 육체로서의 여성
-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육체란 그녀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남성에 의해서 그리고 남성을 위해서 전유되고 있다. 여성의 육체는 남성이 사용하기 위한 대상물로 정의 내려진다. 남성을 위해 계승자를 낳든지 아니면 성적 서비스를 하든지 간에 여성의 육체적 힘은 궁극적으로 남성의 필요와 이익에 따르게 되어 있다. 여성의 동의 여부를 불문하고 그 육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남성의 특권이다. 이 특권은 어디에나 해당한다. 국가가 가진 법적 힘에서부터, 또 여성의 성과 출산을 통제하는 의학에서부터,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남편의 합법적인 권력까지, 또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대규모의 강간과 아내 구타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특권이 존재한다.
2) 피해자 심리와 여성다움에서 비롯되는 증상들
3) 관계라는 성질을 가진 노동과 여성
- 여성주의 심리 상담의 과제는 여성들로 하여금 공격적이고 경쟁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유형의 남성적 자아를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까지 늘 따라다녔던 비굴한 태도가 제거된 여성적 자아 유형을 개발하도록 돕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성들이 자신을 우선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여기게끔 도와, 다른 사람에게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상실하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남성 위주의 심리 구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 관계에 서서 여성의 정체성이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10장. 여성의 이야기 바꾸기 / 여성주의 심리 상담의 실제
1. 머리말
- 공감적 이해를 기술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심리 상담가는 반드시 자신과 내담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거리감은 감정을 억제하는 전통적 태도와는 다른 것이다. 정서적인 메마름과 적절한 거리감은 같은 것이 아니다. ‘환자’와 ‘심리 상담가’를 가르는 신성 불가침의 구분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심리 상담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심리 상담가가 정서적인 면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상호 존중하고 신뢰하는 관계라는 맥락에서라야만, 심리 상담 과정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으며 필수 불가결한 면이 될 수도 있다. 자기의 감정을 인식하고 똑똑히 표현하는 능력의 표본을 보여 줌으로써 환자도 같은 행동을 할 용기가 나게 해 준다. 그리고 성공적인 심리 상담에 필요한 요소인 자연스러운 정서를 유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 결국, 여성을 위한 심리 상담에서는 여성과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기술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완전할 수 없다. 심리 상담을 받는 여성들에게는 그들이 겪는 정서적 고통의 사회적 뿌리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의식화 작업 없이는 여성 내담자가 개인적으로나 집합적으로 자기 자신만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요컨대, 여성과 심리 상담에의 새로운 접근 방법에서는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변화의 수단을 여성에게 제공해야만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개인적인 힘이 여성의 집합적 힘과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보도록 돕는 것이다.
2. 캐롤의 이야기 : 환자로서의 정체감 벗기기
3. 움츠러들기에서 의식화로 : 여성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기
- 나는 종종 나와 함께 심리 상담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증상들을 자신의 병으로 보지 않을 때 그 증상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병이 아니라고 깨달을 때 치유될 수 있다. 병의 증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대개는 어떤 해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합당한 이유에서 유발되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자신의 한 측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증상 속에 그 증상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씨앗이 잠복해 있다. 이 씨앗은 적절한 조건만 주어지면 성장하고 뻗어 나갈 수 있다.
- 강간 이전에 안드리아가 가졌던 자신의 자유에 대한 감각은 많은 심리 상담가들이 심리 상담의 최종 목표로 고려하는 감각이다. 자유 또는 해방에 대한 엄격한 심리학적 정의가 여성에게 얼마나 부적합한가는 안드리아 또는 강간당한 모든 여성들의 경우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안드리아를 가장 배반한 것은 자신이 가졌던 자유에 대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자유)은 여성 억압의 실제를 인식하기 거부한다. 예를 들어 한밤에 낯선 남자의 자동차에 편승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부인하게 만든다. 가부장적인 규범에서 보면 여자가 그 시간에 자동차 편승을 한다는 것은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며 폭행을 자초하는 것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다. 흔히 쓰이는 표현은 (일상 용어로 말하자면) ‘그 여자가 원했다’이다. 이러한 가부장제적인 ‘정의’ 규범은 여성에게 내면화되어 강간당한 후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당해 싸다는 느낌, 즉 ‘원했던 일을 당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수치심이 바로 강간이 여성들에게 가하는 정신적 손상의 측면이다. 심리 상담에서의 가장 어려운 작업 중 하나는 여성 억압이라는 현실에서 볼 때 남성에 대한 순진한 신뢰는 잘못이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그렇다고 자신이 강간을 유발했거나 당할 만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강간당한 후 안드리아가 가장 애통해 한 것은 자유에 대한 감각을 갑자기 잃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다시는 길거리를 편안하게 즐기면서 걸을 수 없을 것같이 느꼈으며 자신의 몸에 대해 본래의 느낌을 가질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남자만큼 유능하거나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워했다. 남자는 강간자이고 여자는 피해자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4. 의존/독립 : ‘새로운 여성’의 딜레마
- 남성에게 의지하고픈 욕구를 갖고 있다고 고통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보다 독립적인 생활 방식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여성다움이 위협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통적 사고 방식을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음을 반영해 준다.
5. 모든 여성의 이야기 : 내면화된 분노
- 내가 겪었던 우울증과 자기 혐오라는 수렁에 비추어 볼 때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최소한 관례적으로 규정된 의미에서의 심리 상담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도움이 된 것은 노여움, 힘, 그리고 다른 여성들이었다.
- 우울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한 여성으로서의 나 자신을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을 향해 겨누었던 독화살의 목표를 올바른 표적으로 바꾸어 다시 겨냥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나 자신의 최악의 의미로 언제까지나 보게 만들었던 사회를 향해 마음대로 화를 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한다.
- 여성의 우울증에서 배워야 하는 근본 교훈은 분노가 있으면 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우울증의 간접적인 분노가 간접적인 형태의 힘을 발산하는 것처럼 여성의 직접적인 분노를 통해 보다 진정한 형태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 많은 여성의 우울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힘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와 궁극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아무리 ‘해방되려고’ 노력하는 여성일지라도 완전히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두려움이다. 실제로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길지도 모르고 근본적으로는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그래서 남자 없이도 상당히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의 해방이었다.
- 우리의 분노가 건강하고 깨끗하며 정당한 것이라 해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 혼자 노여워하는 것은 아직은 위험한 일이다. 해방의 과정은 단순히 분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우리 삶의 실제 조건들 간에 연관성을 맺는 작업이다. 그 분노를 어떻게 그리고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알아야 여성의 이해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완전히 타버리거나 폭발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격분하거나 정신과에 입원하거나 두드려 맞거나 강간당하거나 혹은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분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겪을 수 있는 기타 다른 결과들을 피할 수 있게 된다.
- 화를 내는 가운데 스스로 강해질 수 있으므로 분노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보는 심리 상담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잘해야 절반만 맞는 이야기이며 나쁘게 말하면 매우 위험한 거짓말일 뿐이다.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몸, 출산, 가족, 성, 임금, 노동, 심리 정서적 생활을 통제하는 것과 싸우기 위해 집합적으로 우리의 분노를 움직이고 조직하는 방법이다.
11장. 여성주의 모델 : 폴리라는 환자의 인간화
끝맺는 말. 심리 상담가와 내담자에게 주는 마지막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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