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의학

<한의원의 인류학>, 김태우

비상하는 새 2023. 1. 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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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의 인류학>

 

 

1장 몸에 관한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01 인류학자, 병원과 한의원에 가다

 

병원, 지시의 나라 · 인류학, 어떤 여행의 기록 · 한의원으로의 여행이 시작될 때

 

02 동아시아의 몸, 서양의 몸

 

의학서의 두 그림으로부터 · 호모 메디쿠스와 의료에 관한 인류학 · 다차원의 몸, 하나가 아닌 의료

 

 

 

2장 진단, 몸을 알다

 

01 첫 대면, 진료실

 

왜 진단을 이야기하는가 · 진료실 풍경

 

02 대상 고정하기와 흐름 읽기

 

서양의학의 확실한 대상들

 근현대 서양의학의 역사에서, 특히 이 책의 논의를 위해 강조해야 할 부분은, 19세기부터 지금의 유전자의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의학의 눈부신 변화의 와중에서도 변함없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테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확실한 의학적 대상의 확보라는 근본적인 방향성이다. 이를 위해 대상의 고정이 강조된다. 고정되어야 확실할 수 있다. 이러한 일관된 방향성을 통해, 해부학적 장기 및 병원균에서부터 생체물질(콜레스테롤 등), 신경전달물질(세로토닌 등), 그리고 DNA에 이르기까지 의료적 진단과 치료의 대상을 확보해나간 것이 근현대 서양의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학이 주목하는 확실한 대상들을 살펴보면 그 의학이 몸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관점이 드러난다. 근현대 서양의학사에 관한 영향력 있는 학자인 찰스 로젠버그는 서양의학은 존재론적으로 실재하고 확실하게 구체적인 질병독립체(disease entities)를 상정한 것이 (진료를) 조직하는 원칙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대상들은 독립체이다. 그것과 그것 이외의 것들 사이에 분리가 가능하다. 질병 독립체는 우리 몸의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 현상과 질병 현상에서 분리할 수 있는 무엇이다. 특히 물질적으로 확인하고 분절할 수 있는 대상이다. 탈출된 디스크처럼 맨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콜레스테롤, 글루코스, 아밀로이드-베타 등은 우리 몸에서 발견되며 확인과 분리와 측정이 가능한 물질들이다. 정신질환의 경우에도 서양의학에서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특정 가능한 물질에 관심을 갖는다. (48)

 

· 흐름을 읽는 동아시아의학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질병독립체를 특정하고 측정하기보다는, 흐름을 읽고자 한다. 여기서 흐름을 읽는다는 것은 동아시아의학의 진단을 말하기 위해 특히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흐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흐름이 순조롭지 못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 즉 읽어내는 것이 동아시아의학의 진단이다. 야구감독이 경기의 흐름을 읽어 투수를 교체하듯, 혹은 대타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듯, 한의학에서는 몸에서 일어나는 흐름을 읽는다’. 흐름을 잘 읽어 대타가 성공하면 경기의 흐름이 바뀌듯, 한의학에서도 몸의 흐름을 읽어 그 흐름을 바꾸려 한다. 그것이 한의학 진단과 연결된 한의학의 치료다. (50)

 

· ‘기란 무엇인가

 기란 무엇인가? 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적얻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라는 말이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기(理氣),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같이, 기는 동아시아철학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기의 다의성이 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둘째, 우리가 기의 인식론 및 존재론과 거리가 있는 근대 이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라는 시대는 고정하고 규정하고 분석하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 기는 이러한 경향과 거리가 있다. 셋째, 기 자체가 말이라는 기표(記標)에 저항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재현 그릇에 기는 잘 담기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와 깊이 연관되는 이 세 번째 이유가 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여기서는 의학, 특히 진단과 관련해 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의학 진단에서 쓰이는 기를 이야기하다 보면, 광의의 기로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이다. 먼저 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를 알기 위해서 묻는 당연한 질문 같지만, 여기에는 기가 무엇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무엇이라고 정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기에 접근하려 하면 허방을 짚기 쉽다. 기는 대상이 되는 무엇이 아니다. 무엇으로서의 기를 찾으려 하면 패착이 된다. ‘기는 에너지다’, ‘기는 ATP와 같은 표현들은 무엇으로서의 기를 찾으려 한 데서 나온 답들이다. ‘기란 무엇인가보다는 어떻게 기를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이 기에 대한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기는 양상에 관한 것이다. 기는 양상이지만 물질적 기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 번씩 강의실에서 주먹을 휘두를 때가 있다.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를 표현해보기 위해서다. 주먹질을 허공에 두 번 한다. 한 번은 천천히, 힘없이 주먹을 허공에 던진다. 학생들이 잘 모이도록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던진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아주 빠르고 힘차게 주먹으로 좌우 허공을 가른다. 그 두 번의 주먹질로 기를 표현해보려 한다. 앞의 주먹질을 기가 허하다라고 할 수 있다. 뒤의 주먹질은 기가 왕성하다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기는 양상이다. 드러남이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무형은 아니다. 주먹이라는, 나아가서는 몸 전체라는 토대 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54)

 

03 다시, 진료실에서

 

혈당이 올라갔어요” · “오늘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기의 흐름을 읽는다는 것

 

 

 

3장 의학 용어, 몸을 말하다

 

01 병의 이름

 

말에 내재한 관점 · 고지혈증과 기울 사이

 병원은 그 공간의 형식에서도, 또한 그 공간 속 의료의 내용에서도 지시가 두드러진다. 가리켜 보이는 지시가 어디에나 있는 장소다. 병명은 몸이라는 공간에서 화살표 역할을 한다. 문제가 된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주를 이룬다. ‘이것이 그것이다’(This is it)가 서양의학 병명의 주제다.

 서양의학과 달리, 한의학에서 말하는 질병인 기울, 소갈, 식적, 건망, 중풍, 상한 등은 그러한 공간적 고정이 분명하지 않다. 고정이 없으니, 지시도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2장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흐름을 강조하는 한의학의 방향성과 관계된다. 한의학의 병명은 순조로운 흐름이 흐트러져 다른 표현이 필요할 정도의 양상에 붙여진 이름이.

 중풍과 상한은 돌출된 기운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증상도 다르다. 병명이 일탈적 흐름의 양셍에 관한 이름이라면, 증상은 일탈적 흐름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77)

 

02 기하학적 상상력과 맥상의 상상력

 

공간화와 기하학적 상상력 · 맥상의 상상력과 사이의 상황

 동아시아의학서에서 맥상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맥들의 현상을 표현했다.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드러나듯, 맥상 표현은 의학서의 언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비유적이고 묘사적이다. 동아시아의서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이러한 표현 방식을 이해하려면, 동아시아의학 언어의 두 가지 전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첫째, 동아시아의학의 표현에는, 질병 현상이 드러나는 몸뿐만 아니라 그 현상을 아는 사람, 혹은 알고자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앞의 표현에는 맥 잡는 사람이 등장한다. 맥진처에서 의사의 손과 환자의 손이 만났을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 맥상이다. 맥상은, 맥진이 상호작용에 관한 것임을 그 명칭 자체가 드러낸다. 맥상은 말 그대로 맥을 짚었을 때 드러나는 상이다. 이것은 당뇨와 추간판탈출증에 관한 표현 방식처럼, 진단하는 자와 진단 대상을 분리하고 그 대상만을 강조하여 지시하는 것과 다르다. 서양의학에서 대상을 강조하는 것은, 또한 주체(진단하는 자)의 존재감을 투명하게 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주체가 투명하게 된다고 표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서양의학의 인식에서 주체는 빠져 있다. 그래야만 주관적일 수 있는 주체의 문제를 멀리하면서 글루코스나 추간판 같은 대상을 제대로 지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체의 목소리를 최대한 음소거하려 한다. 계몽주의 이후 강력하게 대두된 이러한 인식 방식은, 근현대 서양의학의 중심적인 인식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것만이 대상과 세계를 파악하는 유일한 앎의 방식은 아니며, 동아시아의학의 인식 방식은 이와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의학에서는 주체가 여전히 존재한다. <동의보감>의 맥상 표현은 주체(맥 잡는 이)에게 드러난 객체(환자)의 기혈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환자의 맥이 뛰면 맥을 잡고 있는 의사의 손도 흔들린다. 모두 맥 잡는 주체의 존재를 상정하고, 주체와 객체가 연결되어 드러난 상황에 관한 표현이다.

 둘째, 동아시아의학은 흐름의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동의보감>의 맥상 표현이 묘사적인 이유는 기혈의 흐름과 정황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삽맥은 말 그대로 껄끄럽고 부드럽게 흐르지 않는 기혈의 상황을 말한다. 삽은 떫다, 껄끄럽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다. 한자도 물 수 변에 그칠 지가 세 개나 있는 형상이다. 삽한 기혈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흐름이 껄끄럽고 막혀서 비가(물방울이) 모래에 떨어진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가벼운 칼로 대나무를 긁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흐름을 표현하려면 계량화될 수 있는 수치보다 이러한 묘사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86)

· 수동적인 주체와 그 언어

 

03 의학과 미술, 표현의 문제

 

고흐와 동아시아의학 · 기하학과 원근법 없이 보기

 

04 선행하는 틀과 후행하는 잣대

 

선행하는 틀을 가지고 말하기 · 틀 없이 말하기 또는 후행하는 잣대

 서양의학의 틀은 지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분명하다.오늘 270이에요는 지시할 수 있는 이것(글루코스)이 지난번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것이 많다는 표현에서, 또한 이것이 수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내용을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혈당이 정상이면 상담이 종료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동아시아의학의 잣대는 이것과 저것으로, 직접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대상과 일정 정도 거리가 있다. 한의사가 환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드러난 것을 읽어낸 것의 이름이 음식상이고, ’, 처럼 돌출된 육기다. 읽는다는 것은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상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과 같은 여지없는 지시와는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동서의학의 언어에 선명함과 그렇지 않음을 부여한다. (104)

 

· 객관에 대하여

 이 책은 객관적이지 않은 의학을 변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객관은 어떤 바라봄인가를 먼저 객관적으로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거기에 연결된 인식과 언어 표현의 방식을 궁구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객관 없는 앎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객관은 역사적 현상이다. 그것은 계몽주의 이후 근대적 자연 개념이 대두되고, 그 자연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사회적 활동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당연한 앎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객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객관에, 바라보고 아는 하나의 방식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때 우리는 객관에 갇힌다. 객관 아닌 앎에 눈감게 된다. ‘객관적이지 않다라는 말을 남발하게 된다. 세계에 대한 앎의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객관 아닌 앎을 이해해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의료이 들려주는 하나가 아닌 세계에 대한 앎, 그 방식 밖의 앎에 눈뜰 때 열리는 또 다른 세계, 그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이 갖게 될 또 다른 존재론적 가능성. 이 책의 관심사는 그러한 것들을 향해 있다. (107)

 

 

 

4장 침, 몸의 가능성을 돕다

 

01 ‘치료가 아닌

 

라는 한자 · 몸 안팎의 치

 

02 스스로 운행하는 몸

 

흐름을 돕는 혈자리 · 맥락과 경락 · 우리 몸은 연결되어 있다

 

03 빽빽한 아날로지의 연결망

 

내추럴리즘과 아날로지즘

 침을 통한 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가 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함게 말해야 한다.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의 논리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세포, DNA, 단백질의 조합으로 몸을 보지 않는다면, 그 치료의 논리 또한 서양의학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의학이 몸을 이해하는 방식은 의학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의학 외부의 존재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몸에 대한 근현대 서양의학의 접근법을 논할 때 곧잘 데카르트 철학이 소환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학은 어떠한가? 동아시아의학은 몸과 존재에 대한 어떤 이해를 바탕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가? 침을 통한 치를 말하기 위해서 이것은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때 서양의학 외 여러 의학에 대한 오해가 생겨난다. 동아시아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학이 서구 철학의 방식으로 몸을 이해하리라고 여긴다. 이러한 오해를 넘어 다양한 의료을 직시하기 위해, 몸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꼭 살혀보아야 한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는 방대한 인류학 연구 자료를 통해 몸-존재에 대한 이해가 하나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존재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내추럴리즘(naturalism), 애니미즘(animism), 토테미즘(totemism), 그리고 아날로지즘(analogism)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지금 인류가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을 주도하는 것이 내추럴리즘이다. 근대 서구에서 발원한 내추럴리즘은 근대화와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주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내추럴리즘은 세계를 자연과 문화, 자영ㄴ과 인간으로 분절해 이해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3장 서두의 자연(nature)과 자연(自然) 논의에서 드러나듯, 자연과 인간을 나누는 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내추럴리즘의 전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에시한다. 데스콜라는 다양한 인류학 현지조사 자료들을 통해 복수의 존재론을 제시하면서, 지금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내추럴리즘도 존재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이다.

 내추럴리즘은 몸-존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복수의 의료들은 복수의 존재론 위에서 진단하고 치료한다. 데스콜라의 네 가지 존재론 중에서 아날로지즘은 동아시아 의학의 존재론에 대한 명명이다. 아날로지즘은 존재들의 기저를 흐르는 이치에 주목한다. 그 이치가 근간을 이루면서, 또한 변주하면서 세계를 구성한다. 이때 아날로지(analogy)는 그 근간의 이치를 이르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아날로지유비라고 번역하지 않았다. 데스콜라의 아날로지즘또한 유비주의라고 번역하지 않고 영어 발음대로 두었다. ‘유비라고 하면 존재들 간의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그 기저에 흐르는 이치를 놓칠 수 있다.) 음양, 사시, 오행, 주역 괘가 동아시아 아날로지의 예시들이다. 특히, 음양(陰陽)은 동아시아의 아날로지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음양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천지, 밤낮, 암수, 더위와 추위, 머무름과 움직임 등으로 변화한다. 예를 들어, 천지, 밤낮, 암수는 공간, 시간 그리고 생물을 배경으로 표현된 음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이라는 이치는 각각의 배경에 조응하며 다르게 나타난다. 세계는 이치의 변주곡이다. 하지만 근간이 되는 이치는 여전히 내재해 있다. 이렇게 근간의 이치를 바탕으로, 데스콜라의 표현으로 하면 빽빽한 아날로지의 연결망”, 즉 이치가 변주하면서 이루는 존재의 연결망이 아날로지즘의 세계다. 아날로지즘은 동아시아 존재론과 그에 연결된 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128)

· 음양과 사시 · 양상을 가진 중층의 흐름

 

04 연결망을 흔드는 침

 

침 치료의 논리

 혈자리의 층위에는 각각 생, , , , 장의 기운이 강조된 혈자리가 있다. 경락, , 장도 마찬가지이다. 각 층위 뿐만 아니라 다른 층위의 같은 사시 기운끼리도 흐름이 존재한다. ()하는 기운인 혈자리와 경락, , 간이 같은 경향성을 공유하며 연결되어 있다. ()하는 기운인 혈자리와 경락, 대장, 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가로와 세로의 연결이 얽혀 빽빽한 아날로지의 연결망을 이룬다.

 이처럼 양상을 공유하는 중층의 흐름을 알고 있으면, 그 관계성을 통해 흐름을 순조롭게 되돌릴 수 있다. 침을 통한 치는 이 아날로지즘의 특징을 충분히 활용해 목적의식적으로 그 연결망을 흔든다. 그 흐름에 고무적으로 영향을 주어 기운의 변화를 유도한다. 아날로지즘의 연결망이 작동하는 원리를 바탕으로, 혈자리와 경락 층위의 기운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뇌수술 후 소변을 자주 본다는 환자의 경우를 살펴보며, 이러한 침 치료의 논리를 구체화해보자. 약해진 방광경을 돕기 위해 먼저 경맥 사이의 관계를 본다. 장하는 겨울 기운에 대해 수하는 가을 기운이 부모의 역할을 하듯, 방광경맥의 장하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대장경맥의 수하는 기운에 힘을 보태주는 침 치료를 한다. 방광경맥 내에서도 혈자리들의 경향성을 살펴서 방광경의 장하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수하는 기운의 혈자리에 침을 놓는다.

 아날로지즘의 연결망이 작동하는 원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운의 흐름을 도울 수 있다. 다양한 침법이 가능하다. 혈자리의 강조된 기운을 통해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침 치료도 가능하. 구체적으로, 감기 치료의 예를 들어볼 수 있다. 감기에 걸리면 처음엔 바람, 열기, 건조, 한기 중 한기가 돌출된다. 돌출된 한기에 의해 기가 제대로 흐르지 못한다. 이런 경우 몸의 열기를 고양해서 한기를 누그러뜨리는 행위도 가능하다. 열기의 성향을 가진 혈자리의 경향성을 강화해서 돌출된 한기를 상쇄시키는 것이다. (138)

· 칠정과 마음병의 치

 

 

 

5장 약, 몸 밖 존재들이 함께 하다

 

01 두 사람, 두 처방

 

두 명의 불면 환자 · 왜 사람마다 처방이 다른가

 

02 제약과 처방

 

약을 어떻게 만드는가 · 가감의 처방 · 유동하는 세계, 하나가 아닌 자연

 진단의 질병독립체와 제약의 성분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몸의 안과 밖이라는 위치의 차이는 있지만, 고정된 지시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질병독립체와 성분은 지시하는 자와 지시받는 대상의 구도 속에서 존재한다. 데스콜라의 분류로 하면, 이것은 내추럴리즘의 구도다. 지시 대상으로 이루어진 세계가, 내추럴리즘이 전제하는 물질이고 자연이다. 내추럴리즘에서 지시받는 것들의 범위는 인간의 몸을 포함한다. 지시하는 정신/의식(주체)과 그 나머지 대상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는 내추럴리즘의 구도에서, 몸은 대상 쪽에 속해 있다. 대상을 찾고 확인하고 지시하는 정신의 능동성에 비해, 몸은 수동적이다. 데카르트의 시대부터 정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상, 물질, 자연의 영토로 편입된 몸은 계속해서 거기에 남아 있다. 고정된 지시 대상을 통해 작동하는 근현대 서양의학에 의해, 이젠 그 땅의 확실한 정주자가 되어 있다. 고정성을 통해 지시받는 몸은 확실한 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지시하는 자도 확실한 주체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감과 작방을 바라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몸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내추럴리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존재들, 즉 세계의 대상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 대상들이 구성하는 세계는 다른 세계가 될 것이다. 그 존재들의 세계는 출렁일 것이다. 이 유동의 세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 세계를 알고(의학적으로는, 진단하고,), 문제에 대처할(치료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위해서는 전혀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동아시아의학의 처방은 이 유동하는 흐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내추럴리즘과 다른 존재 이해 위에서의 의료 행위이다. 내추럴리즘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이 지시 대상으로 구성된 고정성의 자연을 말한다면, 동아시아의학이 강조하는 흐름의 세계는 다른 자연을 예시한다. 단 하나의 자연이라는 신화를 벗어나면 동아시아의 처방이 다른 자연위에서 전개되는 의료 행위에 대한 논의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162)

 

03 성분과 약성

 

약에 대한 지식 · 본초와 약성 · 인삼을 안다는 것

 둘은 관심 영역이 다르다. 성분의 방식에서는 인삼 내부의 물질에 천착한다. 내부의 고정된 물질을 세세히 구분하여 그 물질의 특성을 분석한다. 약성의 방식은 인삼 내부로만 향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인삼이라는 존재만 등장하지 않는다. 인삼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이 인삼과 함께 한다. 그리하여 인삼과 사람이 만났을 때 드러나는 현상을 약성으로 표현한다. , 여기서 인삼의 약성은 인간과 본초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관계성 속에 있으며, 그 속에서 일어난 크게 원기를 보하는 것같은 사건에 관한 것이다. 약성의 방식은, 성분을 통해 약재의 본질을 규정하려는 앎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172)

 

04 인간 너머의 존재와 세계

비상징 기호 점수하기

 캐나다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는 성분과 약성의 차이를 다른 방식으로 확인시켜준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 너머의 인류학을 위하여이다. 콘이 비판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인간상징기호에 매몰되어 있는 인간이다. 기호에는 언어와 같은 상징(symbol)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콘(icon)과 인덱스(index)도 있다. 콘은 미국의 철학자 찰스 퍼스로부터 이 분류들을 인용한다. 아이콘은 유사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드러내며, 인덱스는 연결된 메시지를 통해 대상을 표현한다. 하지만 인간은 기표로 재현되는 언어 상징 기호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강력하다. ‘’, ‘’, ‘water’와 같은 약속된 매개를 통해 우리가 매일 마시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된 방식인 것이다. 상징 기호에 경도된 인간은 아이콘과 인덱스 기호들을 접수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콘은 지적한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상징 기호에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아마존에서 4년 동안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콘이 인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은, 숲속 존재들의 비상징 기호를 적극적으로 접수하는 에쿠아도르 아빌라 사람들과, 그 소통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이다. 이를 통해 콘은 생명이 기호임을, 그리고 존재들의 상호작욕을 통해 아마존 숲 전체가 기호들을 보내고 받는 생각의 장임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하여 숲은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인삼 성분 표현에 등장하는 진세노사이드는 화학식이 C42H72O14이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인삼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C, H, O는 각각 인간 상징 기호인 carbon, hydrogen, oxygen의 약자이다. 콘의 논의를 따르면, 이것은 인삼이 상징 기호화되는 방식이다. 이와 같이 상징이 강조되면 나머지 비상징 기호는 힘을 잃는다. 약성은 이와 다르다. 약성은 나(인간)에게 주어진 타자의 양상이다. 콘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약성을 통한 앎에서는 본초 식물이 보내는 비상징 기호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약성 또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상징 기호를 내세우기보다는 본초식물과 인간이 만났을 때 드러난 상황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것, 저것을 지시하지 않고 정황을 말한다. 그래서 맥에 대한 표현이 묘사적이고 비유적인 것과 같이, 약성에 대한 표현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가늘고 더디며 그 흐름은 좋지 않고 흩어진다”(삽맥)라고 환자의 손목을 잡았을 때 드러나는 현상을 표현하듯이, “크게 원기를 보한다”, “갈증을 그치게 한다처럼 본초를 접했을 때 드러나는 현상을 말한다.

 성분과 약성은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달리 설정하는 두 방식을 예시한다. 성분의 방식은 인간의 언어로 인삼을 규정하며, 이는 인간과 식물 사이의 위계관계를 정립한다. 인삼이 사포닌으로 기표되면 인삼의 존재감은 약화되며, 고정성이 강한 대상이 된다. 인간의 상징 기호 영역으로 인삼이 들어온 것이다. 사포닌은 CHO로 구성된 것으로, 성질과 구조와 예상 반응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대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실험과 연구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포닌은 인삼이 아니다. 인간이 선호하는, 상징 기호로 재현된 인삼의 일부가 사포닌이다.

 약성을 알기 위해서는 지시하는 자의 위치에서 대상을 규정하기보다는, 본초식물이 인간에게 어떤 기호를 발신하는지 순순히 접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특권적인 주체가 따로 없는 관계를 통한 앎이 가능해진다. 성분의 방식이 추출을 통해 인삼을 인식한다면, 약성의 방식은 관계를 통해 인삼을 인정한다. 여기서 인식은 상징 기호를 통해 인간중심적으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면, 인정에는 수동의 언사가 있다. 인간은 상호작용을 통해 타자를 충분히 받아들인다. 약성의 앎에서 인삼을 안다는 것은 인삼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가능하다.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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