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페미니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비상하는 새 2022. 9. 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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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1장 아픈 몸이 된다는 것

- 나도 내 몸이 낯설다 :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은 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는 일이다. 누군가 질병에 걸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온 적이 있다. 나는 어항 속에 돌 하나 더 얹어지는 것이 아니라 핏물 한 컵이 부어지면서 그 물의 밀도가 변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저 질병 하나가 내 삶에 쏙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이는 일상이 완전히 재구성된다는 뜻이며, 동시에 내가 기획한 미래가 무효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30)

- 왜 시간이 없을까 : 시계부를 오랫동안 적고, 각 일상의 의미를 써내려가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재량 시간discretionary time’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재량 시간이 시간 배분과 사용에 대한 통제권, 선택권, 자기결정권을 통해 재량 시간이 결정된다고 할 때, 나는 활용 가능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시간 사용에 대한 통제력과 자기결정권이 부족하다. 결국 아픈 사람은 세 가지 빈곤을 겪는다. 첫 번째가 앞서 말한 시간 빈곤이다. 시간 빈곤은 삶의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감소시킨다. 두 번째는 누구나 알고 있듯 경제 빈곤이다. 아파서 일할 수 없는데, 아프기 때문에 의료비는 물론 생활 관리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질병은 빈곤층으로 내려가는 가장 가파른 미끄럼틀이다. 세 번째는 관계 빈곤이다. 체력의 한계 때문에 다양한 이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을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아픈 몸에 대한 무지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피로감, 그리고 설명할 언어의 부재 때문에 만남을 회피하게 된다. (41)

- 잔소리는 사양합니다 : 어떤 면에서 이 사회가 아픈 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약간 닮았다. 우선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전제 아래 시도 때도 없이 가르치려 드는 맨스플레인과 비슷하다. 두 번째는 부적절한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면 성찰하거나 사과로 답하는 게 아니라 네가 예민한 거라고 충고하거나 근엄하게 공격하는 모습이다. (성희롱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과도하게 예민한 것!) 세 번째는 만날 때마다 살이 쪘다거나 빠졌다, 혹은 예뻐졌다거나 안 예뻐졌다는 말로 평가하며 사회가 외모를 공동 관리하려는 태도. 명절에 오가는 질문이나 조언이 대개는 간섭과 통제, 우월감을 확인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건강이 관리해야 할 스펙이기도 한 이 사회에서 몸이 아프다는 사실은 관리의 실패를 의미한다. 아픈 몸을 향한 간섭과 통제의 말은 또한 내 몸이 사회적 시선에 감금되는 몸, 사회로부터 언제든 간섭받고 평가될 수 있는 몸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47)

- 잘못 살아온 탓? : 질병 발생의 원인이 바뀌면 예방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주체도 바뀐다. 질병의 원인이 개인의 성격이고, 질병을 방지하려면 개인이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와 질병의 원인은 사회구조와 문화에 있고, 따라서 변화해야 할 주체도 사회가 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질병이 잘못 살아온 결과라는 일방적 낙인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아픈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낙인을 피하고자 좋은 습관을 유지한다고 해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질병의 개인화만 부추긴다. (55)

- 질병에 대한 낙인

- 차별의 말들

질병을 둘러싼 차별적 말과 태도는 아픈 몸들이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하며 존중받을 권리를 제약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질병을 개인의 불행, 수치, 책임으로 귀속시켜 열등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질병을 숨기기 위한 긴장을 유발시킨다. 혹은 반대로, 몸은 아프지만 쓸모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정투쟁을 하게 만든다. , 질병을 극복했거나, 질병으로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거나, 질병이 있어도 뛰어난 삶을 살았음을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나를 포함해 질병과 함께 사는 이들이 양쪽 모두를 그만둘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72)

- 병명의 의미 : 의학은 환자 앞에서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해당 증세에 대한 진단명을 아직 찾지 못했다거나, 증세에 대한 연구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진단명을 부여하지 못하는 증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지우는 것 같다. 그렇기에 심인성이라고 진단함으로써 의학이 아니라 환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병명을 알아내지 못한 것이 곧 환자의 마음이 병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닐 텐데 말이다. (80)

- 질병의 개인화 : 질병의 개인화 논리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질병을 자기관리의 실패로 여기게 된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질병을 예방하라거나, 의료 공공성을 확대해 시민 건강을 증진하라는 요구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 그 시간에 더 좋은 음식과 더 효율적인 운동에 대한 정보를 찾고 실천하게 된다. 심지어 중증 질환으로 경제적 위험이 닥쳤을 때도 화살의 방향은 엉뚱한 곳을 향한다. 보장성이 적은 국민의료보험을 비판하기보다는 암보험이나 실손보험 같은 민간보험을 하나라도 더 들지 않은 것을 개탄하는 식이다. 개인의 습관은 발병 요소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절대적 요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 질병의 개인화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효과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을 우리가 함께 던질 수 있을 때, 아픈 몸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88)

 

2장 같은 질병, 다른 아픔

- 나약함이 여성적이라니

- 갇혀버린 통증

- 폐암은 여성스럽지 않잖아요

- ‘다른 삶을 탓하기 : 자기 관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일반화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아픈 사람을 루저로 평가받게 하는 최적의 조건이다. , 아픈 사람이 지닌 삶의 방식, 신념, 태도를 의학적 근거도 없이 질병의 원인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고 변화를 종용하는 더 구체적인 배경의 한 자락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사이에 이분법적 선을 긋고, 위계를 형성하며, 낙인을 찍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회피하려는 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며 산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의 여러 의미 중 하나는 낯선 것에서 오는 어색함이나 불편한 느낌을 섣불리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다. 낯설고 불편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 실체를 조물락거려보는 일이다. (121)

- 아파도 돌보는 여성들 :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은 의료적 치료 외에도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치료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 질병과 생활 관리에 대한 정보, 다양한 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관점, 정서적, 육체적 돌봄을 제공할 사람에 이르기까지 질병 경험은 복합적인 필요가 펼쳐지는 장이다. 특히 일상적 돌봄은 질병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의료적 치료와 맞먹을 만큼 절대적이다. 의료 기술이나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해 질병이 완화될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128)

- 보호자가 될 수 없는 보호자

- 혼자 살다가 아플 때 : 누군가는 돌봄이 가족 밖으로 사회화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인가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이루어 돌봄을 나누며 산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돌봄을 가족의 역할이자 의무로 묶어놓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 심지어 가족 내 돌봄노동은 성별화되어 수행도 수혜도 공평하지 않았다. 더욱이 1인 가구는 가족들과 주거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에 돌봄에서 더욱 소외된다. 이런 현실에서는 돌봄의 사회화가 매우 중요하다. 돌봄이 가족을 떠나 곳곳에서 일상화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 공동체의 재구성과도 깊이 연결된다. (145)

- 아프면 떼버리라고요?

- 성폭력과 건강권

- 해고된 여성들

 

3장 건강에 대하여

- 건강이라는 강박

- ‘정상은 없다 : 인간의 몸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명백히 있다. 통제되지 않는 몸을 한탄하는 것은 신기루를 찾을 수 없다며 좌절하는 것만큼 어리석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으며 통제되지 않는 자연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 의사들이 노화가 결합된 죽음조차 치료의 실패로 인식하는 것과도 약간 닮았다. 생명체가 유지되기 위한 자정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질병, 그리고 소멸의 순리인 죽음을 인간 몸에서 분리하려 들고 적대시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188)

- 질병과 장애 사이 : 과거에 장애인 관련 담론이나 정책은 의료인이나 사회복지 정책가들이 주도해왔는데, 이들은 주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의료적 치료를 통해 장애인의 몸을 비장애인의 몸에 가깝게 만들어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설명해왔다. 이를테면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보다는 장애가 있는 몸이 계단을 걸을 수 있도록 치료하는 것을 더 중시해왔다. 반면 장애인 인권운동은 장애가 있는 몸을 교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계단이 있는 곳 어디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평등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와 문화를 교정함으로써 장애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질병과 장애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무엇이 질병이고 장애인지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르게 형성되거나 개발된다. 흔히 질병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의학적 기준으로만 결정되는 것 같지만, 알다시피 그런 건 없다. 장애 또한 유동적인 개념이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장애에 대한 규정은 달라졌다. (197)

- 원인불명의 통증 : 우리 삶이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듯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면 안 되는 것처럼, 질병을 경험하는 자의 고통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 질병의 경중은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에 있지만, 삶의 질에도 존재한다. 질병 때문에 삶의 질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면, 의학적으로 경증이더라도 본인에게는 중증일 수 있다. 고통받는 이는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싶어 한다. 사회가 아픈 이의 고통을 함부로 재단하지만 않아도, 그 고통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픈 이가 겪는 삶의 통증은 줄어든다. (209)

- 환자는 통조림이 아니라 인격체예요

- 양방과 한방 이야기

- 치료를 선택할 권리

- 의료에 흡수된 이별

- 하얀 가운을 입은 신

 

4장 아픈 몸의 사회

- 더 위태로운 사람들

- 직장에서 죽지 않는 법

- 아파도 일합니다 : 우리에게는 계속 광장이 필요하다. 광장에서 촛불의 파도를 만들며 느낀 조증, 일상으로 돌아와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 느낀 울증을 통합해내자. 이를 위해서는 일상에 광장이 필요하다. 일상 곳곳의 광장을 재발견하자. 직장에서 노조, 여직원 모임, 직원 협의회 등의 다양한 광장에 참여하자. 그 속에서 서로의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하며 설치고 떠들고 연대하자. 헬조선에서는 살아남는 게 복수라고 한다. 아프지 말고, 함께 살아남자!

- 금연광고, 어디까지 갈 거니 : 질병을 정의하고, 발생 맥락을 규정하며, 치료 과정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다. 질병을 어떻게 규정하고 질병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몸을 만나게 된다. (292)

- 1인 가구에게 필요한 것 : 첫째, 가구별 영향평가 제도의 도입이다. 둘째, 가족 안에 묶어둔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적극적으로 사회화해야 한다. (301)

-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청년

- 동네 주치의가 있다면

- 잘 아플 권리

 

5장 잘 아프기 위해 필요한 것들

- 다른 감각 깨우기

- 안부에 답하는 법

- 아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 건강두레가 있다면

- 내가 꿈꾸는 죽음

- 질병은 삶에 대한 배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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