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마음공부: 부모 편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 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워밍업_사례에 들어가기 전 먼저 꺼내보는 질문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말하기,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일
‘사랑’ 대신 ‘지성’을 받은 아이들
감정과 감각을 새로 배워야 하는 이유
우리는 ‘나’ 이상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
치유의 3단계 매뉴얼
1단계. 대면과 이해 2단계. 위로와 긍정 3단계. 퉁치기와 경계설정 |
먼저 1단계 ‘대면과 이해’
대면은, 글쓴이가 정말로 자신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바위에 대해 썼는가를 보는 거야. 예를 들어 ‘내내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었다’는 참가자가 막상 상처를 들여다보려니 겁이 나서 진로나 육아문제에 대해 써오는 경우가 있어. 그래선 안 돼.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담대히 맞서기, 이것은 치유의 필수적인 시작이야. 엉뚱한 부위에 약을 바를 수는 없겠지?
나는 이 단계를 ‘지구 위에서 보기’라고 부르곤 해. 우주인이 지구를 내려다보듯 멀찍이서 상처를 받았던 당시를 내려다보는 거야. 그러려면 상처에서 빠져나와야 해. 새롭게 확보된 너른 시야로 자신이 상처를 받았던 시절의 사회적 특징을, 그것이 가족에게 준 영향을, 그 영향 안에서 각 개인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했는가를 살펴보는 거야. 특히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중요해.
1단계를 잘해낸 참가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특정한 배경, 또 특정한 인물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벌어졌는가를 이해하고, 무엇보다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음을 이해하게 돼. 그리고 어느새 2단계로 가 있게 되지.
2단계 ‘위로와 긍정’
위로는, 말 그대로 상처받았던 어린 나, 내면아이를 위로하는 거야.
1단계에서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그래, 그런 일이 벌어졌구나’,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었구나’, ‘고생 참 많았다’라고 내게 말해주는 거야. 가여워하면서 꼭 안아주는 거야. 서러운만큼 실컷 울어주는 거야. 충분히 울어서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긍정은, 눈물이 멈춘 말간 눈으로 다시 그 일을 들여다보는 걸 말해.
내가 고통 속에서도, 어쩌면 고통 때문에 더 노력해서 일궈낸 것들이 있음을 알아봐주는 거지. 나의 고통에도 긍정의 지점은 있었음을, 또 내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상처를 주었던 상대방 역시 노력한 부분이 있었기에 그 정도에 머물렀다는 것을 발견하는 거야.
3단계 ‘퉁치기와 경계설정’
퉁치기는 그냥 퉁치는 거야.
상처받았지만 긍정의 지점도 있었으니 ‘밑진 건 없다’하며 마무리 짓는 거야. 마당을 비질하듯 마음을 비질하면서 상처는 미련 없이 쓸어버리고 긍정의 토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지.
경계설정은, 새 토대에 세우는 새 울타리야.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전처럼 내 영역에 함부로 쳐들어와 상처줄 수 없도록 그의 난입을 적정히 차단하고, 경계 안에서 나를 안전하게 돌보는 거야. (42)
첫 번째, 지혜의 이야기_부모가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키운 경우
여아들의 서바이벌 시대
뉴스에서는 교실에 남자아이가 훨씬 많은 현상을 일말의 죄의식 없이 보도했고 어른들은 진심을 담아 말하곤 했지. ‘네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 만약 네가 공부를 잘했다면 더 자주 들었을 거야. 나도 아들딸이 다 있는 상태에서 태어났기에 아빠 비위를 못 맞출 때마다 수없이 듣곤 했어. ‘태어났을 때 너를 엎어놨어야 했는데’, ‘쟤는 뭐 하러 낳아가지고’, ‘계집애가 애교라곤 없고’
그럴 때면 엄마는 옆에서 깔깔 웃고 계셨기에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물론 이것에 ‘맞는 감정’도 한참 찾아 헤매다 뒤에 꿰어 맞춰 알게 된 것이지만, 뭐라 항변하고 싶은데 일개 ‘어린 개인’으로서는 항변할 수 없는 무력감? 왜냐하면 온 사회가 아빠의 말을 지지했으니까. 정말로 이 사회는 나의 (성) 정체성을 군더더기로 치부하는 게 명확했으니까. 그 무력감은 내게로 와서 글자 그대로의 무력함이 되기도 했고, 정반대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하려는 처절한 적극성이 되기도 했어. 이 방에 있는 너희들 모두 가슴에 비슷한 상처를 안고 비슷한 ‘서바이벌’을 했을 거야. (48)
그럼에도 찾아야 할 긍정의 지점
서러운 질문을 하던 힘은 생각하는 힘으로
부모와의 관계도 실패할 수 있다
내 세계의 통행증은 내가 관리한다
지금 눈앞에 놓인 사랑
두 번째, 수진의 이야기_맏이에게 어릴 때부터 어른 역할을 지운 경우
장녀들, 번아웃되다
엄마를 위해 노력, 노력, 또 노오력하던 나
지친 장녀들의 할 일, No.1 덜어내기
지친 장녀들의 할 일, No.2 등신짓하기
지친 장녀들의 할 일, No.3 운동하기
착한 딸에서 쌍년까지
세 번째, 민주의 이야기_부모의 꿈을 아이가 대리 성취해주길 바란 경우
엄마의 세계 속에서 살던 나
질문하는 당나귀, 르네상스의 시작
카르마 끊는 법
방법 1. 선언하기
세면대 거울에 써 붙여. ‘나는 당나귀가 아니다!’ 더 이상 당나귀를 정체성으로 삼지 않겠다는 매일의 선언이야. 당나귀를 움직이게 했던 건 제3세계에서 먹혔던 외적 동기들. 그 시절을 성공적으로 벗어난 자신을 치하해주고 이젠 새 시절에 맞게 대접해줄 차례야. 선진국이 됐는데 왜 자꾸 후진국 때했던 ‘남의 돈 벌기가 쉽니?’ ‘밥 먹고 사니 고마워해야지’ 이런 얘기하면 요즘 애들 안 움직이지? 마찬가지야. 너도 이제 선진국에서 하는 것들을 해줘야 새롭게 동기부여가 될 거야. 그게 뭘까? 배부른 뒤에 하는 것들이지. 바로, 교감하기
2. 교감하기
그 누구보다 너 자신과 교감해야 해. 엄마와의 교감을 끊고 너 자신과
그걸 못 하겠어요
그래, 힘들 거야. 네 글을 보면 감정의 어휘가 극도로 적어.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왔으니까. 감정과 감각의 어휘가 적은 사람치고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드물어. 지금부터 물고기를 강물에 풀어놓듯 감정을 풀어주는 훈련을 해보자.
하루에도 몇 번 씩 <스톱 앤 필stop and feel> 시간을 가져. 말 그대로 멈추고 느끼는 시간. 이를테면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밥을 한 술 떴을 때, 잠시 창문을 닫으러 베란다에 나가 섰을 때, 블라우스를 걸쳤을 때, 현관문을 닫고 집을 나설 때... 30초면 돼. 하던 걸 멈추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몸을 이완시켜. 네 감각과 감정을 헤아려주는 거야.
‘아,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지금 들떴구나’
‘명치가 저릿하구나’
‘어깨가 뭉쳐 뻣뻣하구나’
묶여 있던 감정과 감각들이 존재감을 알리도록 허락해줘. 그들이 너를 노크하면 문을 열어주고 잠시 머물게 하는 거지. 그리고 반응해줘.
‘아, 내가 지금 불안하네. 그럼 뭘 해줘야 할까?’
‘차분한 음악을 들어야겠다’
이게 나 자신과 소통하는 법이야. 말을 하게 하고, 말을 하면 들어주는 것. 아이 키울 때도 마찬가지지? 아이가 말을 했는데 엄마가 들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에게 입을 꾹 닫고 점점 멀어지지? 너도 그런 식으로 자신과 멀어진 거야. 지금부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의식적으로 내게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말을 들어주는 거야.
대충하고 넘어가지 말고 감노트에 꼼꼼하게 기입하고 관찰하기 시작하면 훨씬 효과적일 거야.
‘오늘 내가 우울을 느꼈는데, 그때 뭘 해줬지?’
‘밥이 없어서 밥을 했구나. 그렇게 대충 덮어버렸네!’
‘다음엔 이럴 때 뭘 해줄까?’
‘친구에게 전화해서 커피 마시자고 해야겠다.’
실제로 이런 내용을 적다 보면 다음엔 같은 상황에서 곧장 친구에게 전화할 수 있어. 친구를 만나서는? 당나귀에겐 놀이가 필요해. 놀이를 통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해.
3. 1일 1정의하기
행복에 대해서도, 성공에 대해서도 계속 정의를 생각하고 적어봐야 해. 철학하는 거지. 명료해질 때까지 질문하는 것.
4. 놀기 (137)
우리는 놀이계의 신생아다
빛과 어둠, 둘 다를 사랑하게 된다면
네 번째, 은경의 이야기_아이가 보는 데서 부모가 수시로 싸운 경우
불명확한 바위의 정체
‘나는 무능하고 무기력해’
쉽게 포기하는 태도는 어디에서 왔을까?
동서남북에서 나를 바라보기
반드시 아이 앞에서 화해할 것
혼자 불행을 감지하는 외로운 감정노동
정서적 소녀가장이 난처한 부분은 만약 경제적 소녀가장이었다면 어디 가서 만 원을 벌어오면 다른 가족들 눈에 그 만원이 또렷이 보였을 거야. 근데 정서적 소녀가장이 한 일은 아무도 눈치를 못 채. 그 오랜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노동을 혼자 하면서 낑낑댔어. 무심하고 둔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민감한 주파수로 불행을 시시각각 감지한다는 것, 몹시 피곤한 일이야. 어린 깜냥으로 대책을 강구했다는 것, 무력한 일이야.
성과 없는 노동을 유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중간에 ‘아, 진짜 그만둔다!’ 이런 말이 나오지. 글을 보면 네가 무의식중에 그 말을 여러 번 해. ‘난 그쯤에서 그만뒀다’ 같은 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노동을 이어가. 아무도 안 하니까. 너라도 안 하면 온 집안이 무너질 것 같으니까. (191)
재능을 펼치기 위해 해야 할 일들
변화의 시작,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다섯 번째, 미영의 이야기_아빠가 엄마와 아이를 때리고 강압한 경우
‘가부장’이라는 야만의 왕좌
엄마는 아빠의 감정펀칭백, 나는 아빠의 대리성취감
아직도 부모들이 자기 인생이 꼬이고 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일 때 자식에게서 대리성취감을 찾곤 해. 대리성취감은 아이를 나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지 못할 때 갖는 거야. 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거지. 그래서 대리성취감과 감정펀칭백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어. 인생에 대한 불만이 쌓일 때마다 나아갈 힘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자꾸 수족에게서 찾아. ‘나는 어차피 이 모양이지만 너라도 어떻게 좀 잘해봐’하는 거지.
그러고는 자식이 성취감을 주지 않을 때마다 성적이든 품행이든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에 불만과 분노를 터뜨려. ‘내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자신이 주었던 것은 희생이 아니라 요구였다는 걸 알지 못하고 말야. 희생이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법이지. (212)
이게 단지 전화를 덜하기 위해서 그냥 편지를 쓰는 것 같지? 아니야. 여기에 숨겨진 의미가 커. 하나는 불편함을 표현한다는 것. 왕 룰로 돌아가던 가정에서 ‘당신의 방식이 싫다’고 네가 최초로 ‘저항’하는 거야.
아빠와 너의 관계를 네 손으로 재편성한다는 것. 끌려가는 것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수동적인 관계에서 능동적인 관계로 다시 맺는 거야. 그래서 편지를 쓰는 행위가 중요해. (221)
생각하는 힘!
네가 원가정 안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어. 그럼에도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이 그 집에 없을 뿐이야. 아무도 이 상처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거든.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일 정도로 여기는 거지.
꺼내어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 법이야. 네가 표현한 ‘정신적 불구’ 상태는 여기서 오는 거야. 결코 온전해질 수 없는 거지. 상처 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상처를 입혔을 뿐 아니라 여전히 관계의 룰을 정해버리는 아빠의 기분에 맞춰 연기를 계속하고 있으니. 모두가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어’하고 쉬쉬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을 굳이 꺼내 분란을 만드는 게 필요할까? 그때에 과연 이해받을 수 있을까? 넌 자신이 없어.
용기를 내야만 해. 너라도 드러내야만 해. 지금은 바보 흉내를 내기엔 네가 너무 대단해졌어. 이 발달단계를 자꾸 무시하고 덮으면 남은 건 퇴행일 거야. 다시 눈 가리고 아웅 하기. (224)
경계설정은 곧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
편지에 대한 아빠의 반응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 더 이상 중요해서도 안 돼. 편지의 핵심은 그만 끌려다니겠다는 거고, 아빠의 반응과 무관하게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거니까. 부모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제대로 된 성인으로서의 진짜 삶. 그때에야 너는 아빠의 집을 떠난 거야. 더는 과거에 자신이 붙들려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 이미 아까운 시간을 많이 붙들려서 보냈잖아. 행복할 수 있었는데. 이제 맘껏 행복해야지. (223)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 부분, 그 두려움이 여전히 아빠의 폭력 속에 놓여 있음을 증명하는 거야. (237)
부당함과 상처를 고백하기
또 이 부분. ‘모욕감을 주어 경제적 독립을 도운 것’. 이런 독립은 아주 부정적인 독립이지. 아이가 ‘내가 더러워서 돈 벌고 만다’ 이렇게 되는 독립. 부모가 힘을 줘 내보내는 독립이 아니라 아이가 악에 받쳐 떠나는 독립. 물론 이것도 독립인 건 사실이야. 그런데 이런 독립은 이룬 사람은 자연스럽게 원가정 근처엔 잘 얼씬거리지 않아. 최소한만 얼씬거리지. (246)
아빠에게 쓰는 편지
자기 생의 운전대를 잡다
여섯 번째, 희진의 이야기_엄마가 아이에게 신세한탄을 하고 때린 경우
최하위에 놓인 딸들
‘내가 문제야’라는 오래된 세뇌에서 벗어나기
이렇게 자란 엄마가 딸의 정서적 결핍을 이해하기란 힘들 거란 것. 엄마는 후진국에서 ‘밥’ 한 공기를 위해 집에서 내쪽기기도 했는데, 딸은 선진국 사람들이나 관심 가질 ‘정서’ 타령을 하고 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기껏 배부르고 등 따시게 해줬더니 헛소리 하는 격이지. 이 딸이 엄마에게 가서 공감받으려고 얼쩡거린다면 좌절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라는 걸 지구 위에서 볼 수 있을 거야. (267)
잘못 굳어진 가족 내 갑을관계
또 다른 ‘유사 엄마’가 등장할 때
더 이상 엄마의 감정펀칭백으로 살지 않기로 했다
“엄마,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산을 넘는 것이 힘겨워 또다시 ‘남 탓’을 하는 것도 엄마의 선택. 용감하게 산을 넘어 ᄄᆞᆯ을 안으러 오는 것도 엄마의 선택. 우리는 나이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내 삶 속에 어떤 것을 들이고 뺄 것인가를 선택하고 책임져야만 한다. (310)
마지막, 정희의 이야기_정서적 허기가 채워진 아이의 경우
좋은 부모의 자격은?
거대한 정서적 자산을 물려받은 아이
재벌 안 부러운 삶의 자세
너의 품은 ‘XXXL 사이즈’
이미 잘 살고 있는데 알아보지 못할 때
가모장으로의 대이동
나는 내가 일으켜 세운다, ‘그 힘’으로
셀프치유,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보기
소중한 것을 누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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