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
(173)
첫 번째,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독립
일 바깥에서 지내면서 놀랍게도, 나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조금만 쉬면 금세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길 줄 알았는데, 전혀! 긴 여행에서 딱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스스로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대단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32)
두 번째, 월급 말고 돈 좀 벌어보려다가
세 번째,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기
필명을 하나 만들어 새로운 계정을 개설했다. 이 정도 크기면 금방 채울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작은 종이에 그림을 매일 하나씩 그려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붙들고 있기보다 그냥 시작해보기. 그리고 계속하고 싶은지 지켜보기로 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따지지 말고 꾸준히 하는 힘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거다. (79)
노력과 운이 반복되면 감이 생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것 같은데, 조그마한 감이 생긴다. 얼마나 확실하게 생기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건 그저... 그냥 감이 생겼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조회수’나 ‘좋아요’가 늘어나고 유지되는 만큼 나에 대한 신뢰감도 올라간다. 어쩌면 그것이 다음 단계로 튀어오르는 데 필요한 하나의 과정인 것 같다. 그림 실력도, 감도, 구독자 수도 모두 이런 식으로 자란다. 어쨌든 꾸준히 해야 느는데, 내가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방식, 그래서 매일 계속 할 수 있는 방식. 어쩌면 이게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방법은 내가 sns에서 어떤 사람을 팔로우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94)
네 번째,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소신껏 길을 걷는 법
바닥을 딛고 일어나는 법에는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하지만 중력에도 지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걸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뭐라도 해봐.’ 이때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세 가지에 대해 소개해보겠다.
1단계, 모닝페이지 (<아티스트 웨이> 책의 도움을 받음)를 쓴다.
바닥에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모닝페이지는 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대로 노트 세 장 정도의 분량을 적는 것이다. 두서없이 쓰는 것이 핵심이다. 일기도 아니고, 작품도 아니고, 그냥 눈 뜨자마자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쓰는 낙서 같은 것. 앞뒤 문맥 상관없이 그저 손을 움직여서 쓰면 된다. 모닝페이지를 알게 된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기분은 어떤지, 어제는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뭔지 떠오르는 대로 썼다. 20분 정도 적고 나면, 비록 엉망진창이지만 매일의 기분과 생각이 쌓였다. 그러다 한 달째가 되던 날 열어봤다. 내용이 아주 흥미롭다. 내가 썼지만 가물가물한 일상들, 이미 잊어버린 그날의 상념이 되살아났다. 엉망진창의 기록 사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나중에 일러스트레이션 전시도 하고 싶고, 마음이 힘든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
무심코 적은 문장이 바닥에 누워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끊어졌던 몸과 마음의 퓨즈가 다시 연결되는 것 같았다. 모닝페이지는 부담 없이 시작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대로 적어보자. 규칙도 없고 제약도 없다. 그냥 아침에 쓰기만 하는데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효과가 나타난다.
2단계, 무언가 해보기로 했다면 일단 망치는 연습부터 해보자.
바닥을 딛고 일어날 힘이 생겼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딱 한 걸음만 떼보는 거다. 에너지가 조금 생겼다고 달릴 생각부터 하지 말자. 뭘 더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말고, 바닥에서 일어서서 딱 한 걸음부터 떼야 한다. 자기 역량의 기대치를 확 낮추고, 적극적으로 망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한 장씩만 그려서 스케치 노트 한 권을 채우자고 다짐했다. 완벽한 그림 한 장을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거다. 휴대폰의 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고, ‘망치면 좀 어때’ 하는 심정으로 슥슥 그렸다. 처음에는 보잘것없어 보였던 그림도 몇 달간 쌍히고 나니 꽤 근사하게 보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sns에 그림을 올리니, 내 꾸준함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뭔가 괜찮은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평소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그러니 일단 열심히 망쳐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된다. 엉망진창의 결과물이라도 계속 쌓다 보면 실력도 늘고 자신감도 회복된다. 이제 달릴 준비가 된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 ‘긴장 풀어요.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요.’ 전 그런 얘기에 절대 동의 못 해요. 더 연습해서 실력을 쌓아야죠. 운동선수도 음악가도 매일 연습하잖아요.”
<앱스트릭트 : 디자인의 미학>, 2019 (138)
호불호는 생길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누구의 입맛에 맞출까 고민하는 것보다 내 입맛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내 입맛과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게 해야 한다. 빵과 수프를 파는 가게에 뜨끈한 국밥을 원하는 손님이 오지 않는 것처럼, 내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국밥 손님은 국밥집에 가게 해드려야 한다. (153)
내가 좋은 피드백과 나쁜 피드백을 구분하는 기준은 딱 하나다. 무례한가, 그렇지 않은가. 무례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상대가 아닌 자기 편의에 따라 조언한다. ‘문맥에 상관없이 자기 목적과 일에 유리한 방식으로 유도한다. 내 일의 ’의도‘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는 자신의 취향을 은연중에 주입하려고 하거나, 요즘 트렌드는 이런 거라는 둥 대충 한마디 던지고 가버린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대체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사실이다. 어떤 피드백을 줘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좋은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들의 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런 방향으로 수정하는 게 왜 좋은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나의 처음 의도 역시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 그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제안한다. 자기가 미처 몰랐던 다른 방법이 나타났을 때 바뀔 여지를 남겨두고 새로운 의견을 수용하는 말랑말랑한 여유도 갖고 있다.
사실 알맹이 없는 피드백을 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좋은 피드백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디테일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꾸준한 관심과 애정도 뒤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좋은 피드백을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9)
소신껏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명심해야 할 건 두 가지다.
첫째, 힘을 쫙 빼고 할 수 있는 걸 하기.
둘째, 좋아 보이는 것 말고 나에게 맞는 걸 하기. (167)
마음이 심란할 때 종종 에세이를 읽는다
저자의 생각과 고민들이 나와 많이 겹치는 것 위주로 읽다보면
나 혼자 생각했을 때는 모호하게 넘어갔던 부분을 활자로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명쾌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나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소속감도 느껴진다
누구는 너무 쉬운 글은 종이낭비라고 비난하거나 독자들의 수준을 깔보기도 하는데,
나는 쉬운 글이든 어려운 글이든 모든 글은 독자에게는 그 유용성이 있다는 입장이라 읽고 싶은 대로 읽는 편
오히려, 출판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세상의 변방의 소리도 접할 수 있는 요즘 시대가 럭키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도 회사에서 나와 독립 디자이너로 생활하면서
자기만의 돈벌이를 만들어가는 저자의 단단해져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나 또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조금의 용기를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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