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202)
Prologue
차를 만드는 사람은 차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어요. 10년 넘게 차를 덖고, 더 잘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는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차의 물성을 닮는 것일지도요.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봄이 오면 잎을 내는 차나무에서 ‘하루하루 정진하는 삶’을 떠올립니다. 어느 해, 지독한 냉해가 몰아치던 하동의 봄에도 딱 오늘 하루만큼 자라나는 새잎을 보며 ‘정성껏 지금을 사는 삶’을 느낍니다. 찻잎을 따고, 말리고, 덖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맛있는 차가 탄생하는 걸 보고는 ‘과정이 탄탄한 삶’을,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맛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다원 선생님을 보면서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삶’을 봅니다. 차를 만들다가도 좋아하는 향이 올라오면 바쁜 손을 잠시 멈추고 꼭 한번 향을 맡는다는 이야기에서 ‘과정에서 나를 홀대하지 않는 삶’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는 약간의 ‘유쾌함’까지. 우리는 차에서 이런 삶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13)
#1 차의 시간이 필요한 날들
차를 좋아하세요?
탄탄한 일상을 만드는 도구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다고 해요. 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이 무슨 재미냐며 반문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매일 똑같은 차를 내려도 매 순간 다름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아침마다 마시는 차 한 잔에도 햇살이 떨어지는 각도가 다르고, 코 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새롭습니다. 작은 순간들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차에서 배우고 있어요. (27)
저에게 차는 ‘탄탄한 일상을 만드는 도구’입니다. 느긋한 주말 아침에는 여유롭게 물을 끓이고 머그컵에 티백을 우리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차를 주말의 나른함을 은근하게 깨워주는 도구로 사용하는 거예요. 잠이 덜 깨 다기를 사용하기에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태임을 인식하고, 티백 같은 간편한 방법을 택하곤 해요. 노곤한 오후에는 진하게 우린 차를 얼음에 떨어트려 만든 시원한 냉차를 마시기도 합니다. 시원하게 우린 홍차자 잭살차는 정신을 깨워주거든요. 자기 전에는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카페인이 없는 차나 발효도가 높은 차를 고를 때도 있습니다. 이렇듯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감정에 따라, 마음의 여유에 따라 마시는 차의 종류도, 사용하는 도구도 달라집니다. 차를 도구로 삼아 나를 살피고 조금 더 탄탄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30)
혼자 오롯이 즐기는 차
저는 제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의 여유도 주지 않았고, 스스로를 돌보지도 않았던 거예요.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도, 나를 가장 홀대하고 있는 건 저였어요. 지금까지 지나온 일상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을 나의 하루에 반복적으로 넣어주자고 다짐했어요. 차분히 책상에 앉아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그때마다 차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차를 준비하고 우리고 마시는 모든 과정이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했어요. 제게 ‘차를 마신다’라는 것은 제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인 동시에,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시는 순간까지 매 순간이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던 거예요. (34)
함께 깊이 마시는 차
하루의 어디에나, 차를
#2 일단 차 한잔해볼까요?
#3 차를 고르는 시간
차는 차나무의 찻잎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크게 녹차, 백차, 황차, 우롱차, 홍차, 흑차로 나뉩니다. 여섯 가지 차의 종류라고 해서 ‘6대 다류’라고도 불리고요. 하지만 같은 종류에 속한다고 해서 모든 차들이 같은 맛과 향을 내지는 않습니다. 차나무가 자라난 지역, 환경, 찻잎의 등급, 가공 방식에 따라서 그 안에서도 다양한 향미가 표현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67)
느글느글한 기분에 권하고 싶은 차 : 녹차
저는 70~80도 정도의 낮은 온도 물에서 1분 전후로 오래 우려내는 방법에서 100도 가까운 뜨거운 물로 짧게 우려내는 방법으로 취향이 바뀌었습니다. 저온에서 오래 우려내는 방법을 쓰면 녹차가 가진 다양한 맛(특히 감칠맛)을 조금 더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반면에, 높은 온도에서 짧게 우려내면 찻잎이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강렬한 맛을 뿜어내는 느낌이에요. 여름날에는 진하게 우려낸 녹차를 얼음 위에 천천히 떨어뜨려 차갑게 마시는 방법을 선호하고요. (73)
TIP) 한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녹차 우림법 무더운 여름날에는 거름망이나 티 스트레이너에 찻잎을 깔아두고, 그 위에 얼음을 한가득 올려보세요. 얼음이 천천히 녹으면서 찻잎에 스며들고, 그렇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녹차를 모아서 마시는 방법도 있답니다. |
하루를 길게 가져가고 싶다면 : 백차
백 가지 감정과 기분을 모두 끌어안아주는 : 홍차
수많은 홍차들을 보며 이게 전부 ‘홍차’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하고 의문을 가졌던 때가 있어요. 군고구마같이 달콤함이 강한 차, 스모키한 향이 두드러지는 차, 새콤달콤하다가도 부드러운 질감을 주는 차까지 이 모든 것이 홍차라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엔 이런 막연함에 다양한 홍차들을 마셔보는 데 집중했어요. 지금은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차 한 잔이 어떤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오늘 날씨에 잘 어울리는지 약간의 즐거움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이해하고 분석하고 파악하는 것 말고,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기꺼이 뛰어드는 태도로요. 삶도 이런 자세로 대하고 싶어요. 어린아이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서요. (91)
삶을 여행하듯 살고 싶을 때 : 우롱차
가라앉은 기분에는 생차를, 날아다니는 감정에는 숙차를 : 보이차
TIP) 밀크티 보이숙차 보이숙차는 밀크티로 즐기기도 좋아요. 보이숙차 4g을 뜨거운 물 80ml에 진하게 우려주세요. 여기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 150ml를 넣으면 완성. 달콤한 밀크티를 원하신다면 설탕이나 시럽을 넣어도 좋아요 |
TIP) 냉침 보이생차 저온에서 보이생차를 오래 우리면 부드럽고 향기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전에 1.5L 용량의 물병에 보이생차 5~7g을 넣고, 냉장고에 둡니다. 아침에 일어나 찻잎을 건져내고 드셔보세요. |
보면 무척 범위가 넓은 : 허브차
TIP) 냉침 쑥밀크티 쑥차 5g을 우유 500ml에 넣어 냉장고에 밤새 재워두세요. 여기에 설탕, 비정제 원당, 스테비아 등 취향에 맞는 재료로 당도를 조절합니다. 저는 비정제 원당 기준으로 15g을 넣곤 해요. 다음 날 은은한 쑥향이 퍼지는 냉침 쑥밀크티를 마실 수 있을 거예요. |
#4 도구가 주는 즐거움
커피 도구로 내리는 차
머그컵에 티 필터만 있어도 괜찮아요
담백하게 차려보는 기본 찻자리 세팅
도구가 내어주는 여유 다관
비스듬한 틈새로 흘러나오는 개완
차의 시간을 더욱 촘촘하게 만드는 물건들
#5 차의 시간 감상법
차의 시간을 채우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다기의 질감과 온기, 그리고 무게를 느껴보세요
찻잎의 솜털을 찾아보세요
찻잎을 펼쳐놓고 바라보면 알게 되는 것들
세 단계로 나누어 차를 마셔보세요
세 가지 포인트로 향을 맡아보세요
Do it 차,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나에게 맞는 단계별 차 시작법
날씨에 따라 즐겨요
건조하고 맑은 날 ; 건조하고 맑은 날에는 어떤 차라도 맛있게 우러나와요. 하지만 저는 이런 날 꼭 녹차, 혹은 백차를 고릅니다. 이런 날씨에 은은하게 고소하고 부드러운 녹차를 마시면, 섬세한 맛까지 하나하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백차는 이런 날씨에 향미가 날카롭고 예리하게 표현돼서 좋습니다.
흐릿하고 묵직한 날 ; 홍차, 보이숙차처럼 산화 혹은 발효도가 높은 차들이 잘 어울립니다. 산화도가 높은 차는 목소리가 큰 사람 같아요. 웬만한 날씨에도 눌리지 않고 스스로를 잘 표현하거든요.
비 오는 날 ; 짙은 향기를 지닌 개성 있는 차를 마셔보세요. 홍차나 우롱차 중에서도 스모키한 향이 나는 차가 있는데요. 이런 날시에 정말 잘 어울립니다. 자욱하게 향이 깔리는 느낌이 들거든요. 빗소리를 곁들여서 천천히 차를 마셔보세요.
눈 오는 날 ; 팔팔 끓인 물에 내린 백차나 보이숙차를 추천해요. 뜨거운 물에 찻잎이 춤추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덤이고요. 뜨거운 잔 너머로 전해지는 차의 온기가 좋습니다.
간소한 도구로 즐겨요
시간이 필요한 차도구로 즐겨요
'책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차피 내 마음 입니다>, 서늘한 여름밤 (0) | 2022.09.01 |
---|---|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서늘한여름밤 (0) | 2022.08.29 |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정지우 (2) | 2022.08.19 |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0) | 2022.06.24 |
<집 나간 의욕을 찾습니다>, 김파카 (0) | 2022.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