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감정>
3rd PATH. 불안에서 오는 검은 감정
번아웃
나의 한계만큼 온 힘을 다하는 게 최선, 그 한계를 넘어서서 스스로 과부하를 일으킨 상태가 집착. 번아웃은 최선이 집착이 됐음을 모른 채 지낸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한계를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스스로 명확하게 집어내기란 쉽지 않음. 게다가 최선과 집착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밀접한 거리에 있음. 이를 구분하기 위해선 감수성, 즉 자기 감정을 읽어내는 힘을 키우는 게 큰 도움이 됨.
일을 위해 쉬는 것도 아니고 쉼을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아님.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둘 다 삶에 무척 중요한 요소. 어느 하나에만 치우쳐 다른 부분이 심하게 부족해지면 마음과 몸에 이상 신호가 온다. 그런 신호를 감지할 때마다 일상 어딘가에 잠시 정차해보자. 그리고 지금 내가 어느 쪽으로 치우쳐 이런 불균형이 생겼는지, 그로 인한 불편함을 줄이고자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자. ‘열심히’만 살지 말고 ‘나를 아껴주는 방식으로’ (214)
/ 걱정
걱정에 허우적대던 순간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걱정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막상 마음을 통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불현듯, 걱정을 키운 일등공신이 무엇인지 알게 됨. 걱정하는 제 모습을 합리화할 수 있도록 ‘걱정의 타당성’을 증명해줄 이유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임을 보여주는 요소들은 무시하고 걱정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들만 되뇌고 있었음. 이처럼 나의 믿음에 맞는 정보만을 수용하는 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혹은 ‘불완전 증거의 오류’라고 함. 확증편향이 활성화되면 걱정하던 일들이 마치 사실로 증명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함.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정도의 걱정은 괜찮으나 일정 수준을 넘어 걱정 때문에 다른 일에 지장 받고 나아가 머리가 아프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 반응까지 생기면 곤란. 걱정이 마구 날뛸 때 저는 ‘내가 지금 걱정 때문에 힘들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속으로 말할 뿐. 그리고 이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라며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함. 물론 잘 안 됨. 그래도 그냥 노력하는 것. 마음과 근육의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적당히 이완됨을 느낄 때까지 반복. (218)
걱정은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할수록 제 몸집을 키운다. 그래서 걱정을 일으키는 지점을 파악하는 동시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통째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예시) A를 선택할 수도 없고, B를 선택할 수도 없다. →A를 선택할 수도 있고, B를 선택할 수도 있다. 적용)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할 수도 없다. →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계속할 수도 있다. |
/ 회피
/ 막막함
/ 예민함
/ 의존
사실, 겉으로 보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인 것 같은 관계이지만, 그럼에도 유지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도 그렇게 행동했을 때 얻는 게 있음. 먼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 또한, 책임에서 벗어나 있으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음. 결과에 이를 때까지 짊어져야 할 부담감 역시 덜 수 있음. 상대는 나의 도움으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는 그 과정에서 편안함이나 안전함을 취할 수 있음. (241)
/ 의심
의심은 좌절 이후 정서적 지지의 부재, 지나친 비난, 방치 등 그 경험의 ‘크기’보다 ‘횟수’에 영향을 받음. 오랜 시간 퇴적되면 아주 단단한 틀을 형성. 무언가를 시도하고 연이어 실패하곤 했던 도전 초기의 단계에서 위로와 수용이 아닌 실패에 따른 부정적 경험을 훨씬 많이 겪었을 수 있음.
의심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듯, 스스로를 믿기까지도 시간이 필요. 일상에서의 작은 성공들이 있어야 하고. ‘일상에서 나를 기분 좋게 할 성취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성취의 빈도를 높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등을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작은 성공은 나를 내 편으로 만들어줌. 나라는 아군이 생기는 것. 아주 사소한 성공들이 나에 대한 믿음이 될 것. ‘신뢰’는 행동을 통해 ‘목격’ 될 때 탄생. 믿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은 무엇도 보여주지 않음. 그러므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작은 성공들을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길 바람. (247)
/ 초조함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초조함과 ‘잘 해내야 해!’라는 조급함. 둘의 차이는? 초조함은 가능성을 의심하며 생기는 불안. 일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만들어내는 불안. 조급함은 참을성 없이 급하게 일을 진행하려는 마음. 무리하게 이루고 싶은 욕심이 발동할 때 생김. 불안이 크다면 초조함이, 욕심이 크다면 조급함이 도드라짐.
미래와 지금의 경계가 뭉개지면 초조함이 생김.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 분명하게 구분해야함. 일어나지 않은 일이 아닌,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뚜렷하게 직시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기. 이렇게 우리 마음이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초조함과 조급함을 다스리는 방법의 시작. (252)
/ 측은함
/ 감정 기복
PATH GUIDE. 불안 - 검은 감정
4th PATH. 우울에서 오는 검은 감정
슬픔
슬픔은 여러 감정 중 하나일 뿐인데 그 앞에서 제가 그렇게나 쩔쩔맨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슬픈 게 왜 이렇게나 싫은 건지 궁금해짐. 그리고 이 궁금증은 ‘슬픔’과 ‘슬픈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첫걸음이 됨.
슬픔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갖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김. 슬픔이 느껴지는 순간(감정)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행동) 사이에 ‘내가 슬퍼하고 있구나’(생각)라는 사실이 반짝, 보일 것. 자신의 슬픔으로부터 빠져나와 감정을 목격하는 그 순간! 그때가 중요. 그 순간의 폭이 넓어질수록 슬픔을 충분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음.
신기하게도, 슬픔을 흘려보내면 우리 내면의 우울과 괴로움 같은 감정들도 조금씩 해소됨.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 있던 힘이 집중할 수 있는 힘으로 치환됨. 이 순간, 우리는 부정감정으로부터 해방됨. 즉 ‘카타르시스’를 느낌. 그래서 슬픔을 ‘치유감정healing feeling’이라고 부르기도 함. (282)
/ 쓸쓸함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응원의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될 때, 다음처럼 해석해보는 건 어떨까?
너의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잘 될 거야. 너와 같은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 어려움을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기운 내면 좋겠어.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함께 견뎌보자. |
/ 공허
공허는 자기 고갈을 통해 외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내적 성취가 부재할 때 느끼는 감정. 오직 성과만을 위해 매진한 힘의 크기와 공허감의 크기가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 그래서일까. 목표했던 일의 정점에 다다라 공허를 마주할 때, 우리 마음은 더욱 아뜩한 것인지도.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이란 자기 인생의 주체자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뜻함. 어떤 일을 할 때 자기 결정을 통해 설정한 목표가 있다면 일을 하는 과정에 의미를 둘 가능성도 높아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심지어 엉망이 되더라도 일을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 될 수 있음. 그런데 타인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경우라면 완전히 달라짐. 내가 일을 채워하는 게 아니라 일이 나를 정의하고, 당연히 과정보다 성과가 중요해짐. “난 지금까지 뭘 위해 노력한 거지?”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되묻게 됨.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나의 가치가 한순간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에 휩싸이기도 함. (290)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삶.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얻는 가치감은 우리에게 주용. 다만 외부의 인정에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위험. 그런 위험을 견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조건 없이 스스로를 지지하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함. 나를 지지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에 대해 좀 알아야함. ‘나의 생각을 생각한다’라는 태도가 필요. 어떤 ‘나의 생각’을 생각해보면 좋을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게 가장 쉬울 것 같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걸까?’라고 자신에게 질문해보는 것.
여기서 ‘좋아하는 것’이란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꿈이나 소망, 희망 같은 것을 말함.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새로운 자세로 바라보는 것. ‘이 일을 할 때 나는,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적절히 배분했는가?’라고 물어보자. 일의 결과를 바꿀 순 없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294)
/ 외로움
/ 자기혐오
자기혐오에 동반되는 기묘한 감정이 있음. 스스로를 미워하면서도 그 강도를 높여갈수록 은연중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 여기서 뿌듯함은 스스로의 고칠 점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데에서 비롯.
이때 두 가지 상반되는 내면의 ‘나’를 찾을 수 있음. 자신을 증오하는 나와 이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나.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자기상을 그리는 데서 오는 우월감은 자기혐오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같은 맥을 공유.
자기혐오는 내가 나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모습, 머릿속에서 그려낸 완벽한 모습을 선망하게 만듦. 사실, 이상적인 나와 본래의 나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건 당연. 그 차이는 지금 내가 모르거나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익혀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함. 하지만 자기혐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하고 죄책감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 함.
때에 따라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감정에 대해 ‘조금씩 단계를 밟아가며’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득, 갑자기, 확’ 바꿔보는 것도 필요. 인지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기법 중 ‘사고 중지 thoght stopping’라는 것이 있음. 비논리적인 사고, 즉 부정적이고 자기 패배적인 생각이 계속 반복될 때 자신에게 ‘그만!’이라고 외쳐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 이는 단순히 생각만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비논리적,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행동이기도 함. 오작동 중인 생각과 우리를 잠시 떼어놓아 자기혐오의 악순환을 멈추는 것. (306)
/ 애도
애도의 과정
대상의 상실을 인지→대상과 동일시된 자아에 대한 집착→상실이라는 상황을 수용→대상과 나의 정서적 분리→상실에 따르는 감정의 갈무리→정서적 회복→일상 복귀 |
/ 무감함
PATH GUIDE. 우울 - 검은 감정
2nd Station.
포기
/ 공포
/ 우울
우울은 자기 자신의 ‘부재’를 확인하는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정. 그러므로 나의 우울엔 내가 없다. 그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우리는 먹고, 자고, 움직이며 삶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적 본능을 회복해야 함.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이 단순한 행위가, 자기 존재가 실종되었다는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함과 동시에 나의 실재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332)
/ 아득함
/ 너그러움
/ 시름
/ 고립감
/ 자기파괴
/ 내적 절망
/ 무관심
/ 냉정
감정 억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 마치 그 감정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짐. 그러나 그것은 자유로워진 게 아님. 억눌린 감정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납작해져 마음의 밑바닥에 그대로 박제된 것. 이렇게 감정을 멸종시키면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시기,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성의 빙하기를 맞게 됨. (349)
/ 비관
/ 부정
/ 연민
/ 페르소나
/ 직면
Index. 한눈에 보는 검은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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