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prologue_ 왜 고통을 말하는 데 설득이 필요한가요?
1. 결혼하다
왜 사과 못 깎는 걸 걱정했을까?
착한 남자
사랑하니까 결혼하자?
걱정은 있었지만
어쩌다, 결혼
내게 결혼이란 수행하면 인정받는 과제였다. 투두리스트 항목 앞의 빈 네모 칸에 자신 있게 체크 표시를 하고픈 것이었다. 모두가 수행하는 과제를 빠집없이 체크하며 넘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나지지 않는 부담이었다.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은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어쩌다 보니’ 따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다 보니 우리도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26)
신부 입장
2. 시가를 만나다
시부의 보험 증서, 시모의 레시피
며느리가 그러라고 하디?
고부 사이 어색해질라
직설적으로 불편을 말하는 건 당신들에 대한 도전이고 비난이고 공격이라 여긴다. 아들조차 그럴진대 며느리가, 아들보다 더 당신들에게 복종하고 순응해야 할 존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분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하극상일 뿐이다. 단순히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을 무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받고 싶지 않은 대우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겉으로라도 불편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부모의 생각까지 바꿀 수는 없더라도 내가 어떤 말에 불편해할지 알고 조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행동은 조심해도 모든 행동을 조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며늘애가 그러라도 하디?”라는 말은 “아들, 너 자꾸 그러면 고부 사이만 어색해진다”는 말로 대체될 뿐이다. (43)
며느리가 미웠다 예뻤다
며느리를 오라 가라 할 권리
나는 시부모에게 나오라면 나와야 하는 사람, 언제든지 나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아들과 상관없이 당신들을 대접해야 하는 사람, 시부모가 넓은 마음으로 아량을 베풀어야 시부모의 요구에 대한 거절이 용인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며느리를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에 대해 간섭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다는 인식, 며느리의 신체에 대한 권리 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머리를 짧게 자른 내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긴 게 예쁘니 앞으로는 머리를 자르지 말라고. (48)
아들집 놔두고 카페를 왜 가냐
전통적인 부모 자식 관계가 무례로 점철되었다면 그 전통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통을 따른다면 누군가가 고통받지만 전통을 따르지 않으면 누군가가 아쉬운 상황일 때 고통을 참으라는 요구와 아쉬움을 참으라는 요구 중 어느 것이 더 폭력적일까. 마음을 편히 먹고 억압을 고통으로 여기지 말라고 한다면, 좋게 좋게 생각하라는 말은 왜 항상 약자를 향하는지 묻고 싶다. (53)
냉장고 문은 열지 마세요
시가 스타트업
자식에게는 요구하지 않던 생일상이며 제사상이며 김치를 요구하는 ‘시가 스타트업’은 며느리를 노예로 간주하고 임무를 부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시가 스타트업’은 본질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도구적 필요에 의한 것. 바로 가장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남성의 집에 남성 혈연을 중심으로 모이고, 이에 부수적으로 묶인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 노동한다. 많은 수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수록, 많은 수의 친척이 명절에 모일수록 남성은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한다. (63)
똑똑한 며느리
시부모는 나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에 대한 시부모의 영향력과 남편에 대한 나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시부모는 내가 당신들의 뜻대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말 앞에 자꾸만 나의 똑똑함을 붙였다. 그리하여 “너는 똑똑한 며느리니까”로 시작되는 문장에 숨은 뜻을 대략 해석할 수 있었다. ‘너도 네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내 말을 따르길 바란다’, 더 나아가 ‘네가 똑똑하다고 나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면 네가 똑똑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괘씸할 것이다’라고까지 느끼는 건 과민할 걸까. 똑똑하다는 말은 일종의 무기 같다. 나를 설득할 논리적 근거가 없을 때 나를 조종하기 위해 무기를 들이대듯 똑똑함을 건드리는 것 같다. (67)
이 사회는 똑똑한 여자를 경계하고 여자가 의식화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여자의 똑똑함에 결코 보상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나의 똑똑함을 감추지 않으려 한다. 총명함을 감추는 동안 나는 감출 필요도 없이 총명함을 잃어왔지만, 이제는 내가 얼마나 똑똑하든 나를 드러내고 원하는 만큼 똑똑하고 싶다. 여전히 어떤 말과 어떤 눈빛에 위축되거나 꺾이는 순간이 올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멈추고 싶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자기검열을 하다가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스스로 묻고 떠올리고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훨씬 더 똑똑해지길 ‘감히’ 열망하기로 결심한다. (69)
딸 같은 며느리
앞치마는 배려일까?
작가 박완서는 산문집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에서 탁월한 비유를 들어 이러한 여성의 처지를 설명. 즉,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람 대접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 명이라도 종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라면 아무리 나머지 종들이 주인과 겸상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 대접이 아니라 특혜를 받고 있을 뿐이며, 특혜란 권리가 아니기에 언제든 빼앗겨도 항의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팔자 좋은 여자도 팔자 사나운 여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아무리 좋은 직장 상사도, 아무리 좋은 지도 교수도, 아무리 좋은 시가도, 그들은 내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자다. 그들은 내게 요구할 수도 있고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들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권력자의 요구를 거스르는 건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되며 때에 따라 거대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기도 하다. (74)
시가와 며느리, 혐오와 희망
물론 틀은 어디에나 있다. 이미 짜인 틀을 가져다가 관계를 판단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매일 일어난다. 그런게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모든 곳에 촘촘하게 존재한다. 가끔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효과적일 때도 있다. 며느리를 바라보는 기존의 틀에 충실한 시부모라면 시부모라는 틀에도 본인들이 고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부모로서 이런 모습을 보여야지, 저런 것을 해줘야지, 자신을 틀 안에 가둔다. 너를 너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나로 보지 못한다. 누구든 틀에 끼워 맞춰지는 과정에서 어딘가 깎여나간다.
그러나 모든 틀의 위계가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어떤 틀은 거부권도 같이 주어지지만 어떤 틀은 그렇지 않다.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게 있는 반면, 하는 게 당연하고 안 하면 욕 먹는 것도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곳은 주로 권력의 아래쪽이다. 권력의 아래쪽을 가두는 틀은 악의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기 마련이다. 권력자 개인은 뚜렷한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구조 자체가 이미 악의적이다. (79)
3. 가부장제를 고발하다
효자도 아니면서
‘목소리를 득고 싶다’는 말이 나에게는 ‘시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말이고, ‘며느리의 안부 전화를 기대하는 심리’는 ‘권력 확인 욕구’이기에, 안부 통화가 끝나면 내 기분은 어쩔 수 없이 매번 참담했다. (85)
남편의 효가 게으름과 비겁함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가부장제 안에서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말의 맥락도 똑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자가 효자라서 아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은 남편이 부모와 아내 사이를 조율할 의지가 없음을 뜻한다. 며느리로서 부여받은 부당한 요구들에 대해 부당하다는 인식이 희박하며 설령 있더라도 본인이 부모와 논쟁하고 설득할 생각까지는 없다. ‘남자가 효자라서’란 부모에게는 착한 아들인 척, 아내에게는 효자인 것처럼 굴지만 실상 자신의 원가족과 새로운 가정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이기심이 본질이며, ‘아내를 힘들게 한다’란 그에 따른 책임 전가와 며느리의 대리 효도를 의미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효의 실체인 것이다. (87)
강자에게는 누구도 감히 참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아내가 이해해주는 한, 남자는 이득만 볼 뿐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는다. 효를 가장한 남성의 이기심은 본인도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근하며 뿌리 깊다.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 통념이 남성의 행동을 포장해준다. “효자라서 그래” 주변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부당한 상황에 처한 여성의 입을 막아버린다. (90)
남편은 돌봄노동을 모른다
타인을 보살피는 것은 성취감이나 만족감도 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다. 번거로운 업무를 하거나 안 하거나 평판에 그다지 상관없는 남성과, 수행하면 훨씬 더 많은 칭찬을 받고 안 하면 은연중에 냉정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여성의 차이. 이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여아는 타인을 보살피는 일에 더 능숙한 상태로 성인이 된다. 돌봄노동에 있어서 실제로 여자가 더 능숙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정관념에 기반을 둔 사회화의 산물일 뿐이다. (96)
이분벅적으로 한쪽 성별은 단순하고 무심하게, 한쪽은 섬세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록 타고난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무심함을 용인받는 성별을 정해놓은 것뿐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남성은 무심해도 되는 특권을 가졌다. 남편이 나의 생활 방식이나 필요에 무심한 반면, 내가 남편의 사소한 호오까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은 철저한 사회화와 학습의 결과이다. (99)
남편은 가사노동을 미룬다
가사 분담의 스트레스는 노동량보다 불균형감에서 온다. 똑같은 노동이라도 내 일이라서 하는 것과 남이 제 몫을 다 하지 않아 내게 미뤄진 일을 하는 건 마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한쪽이 아무리 분배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더 무거운 추를 짊어지고 있는 쪽은 귀신같이 불균형을 감지하게 된다. 공평의 감각, 공정의 감각, 균형의 감각이 기울어질 때마다 가슴속에 화산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한다. (108)
타인과 같이 산다고 혼자 사는 경우보다 노동량이 적어진다면 타인을 착취하고 있는 셈 (114)
딸이니까, 며느리니까
남편은 뭐래?
결혼했는데 왜 입사하셨어요?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결혼해주세요, 임신해주세요, 나가 주세요
결혼과 출산을 하라고 그렇게들 강조하면서, 그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으며 무려 애국자가 아니라고 비난하면서, 막상 현실에서는 과제 수행의 대가로 불이익을 준다. 대부분의 짐을 여성 개인이 짊어지게 만든다. 국가와 기업은 여성의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변함없이 억압하며 요구할 뿐.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는 것만 같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지속해도 이기적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해도 이기적이며, 전업주부를 하면 남편 돈으로 놀고먹어서 이기적, 결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비난받는, 모든 선택지가 벌칙인 삶이다. (134)
4. 오늘의 결혼을 거부하다
가족은 건드리지 마?
이 사회가 보기 싫어하는 건 갈등이 아니라 갈등을 비판하는 여성이다. 여성의 고통이 아니라 여성의 고통을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여성이라는 개인을 외면하고, 여성이 참고 견딤으로써 유지될 집단의 평화만을 강조한다. 여성의 희생이 고귀한 미덕인 것처럼 기만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고생스러운 시집살이 후 여전히 가부장제 안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 서사는 그래서 아주 해롭다. 결론은 항상 모두의 화합이지만, 다 같이 웃고 있는 가족사진에서 누가 참고 누가 희생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다. 시집살이는 전시될 뿐, 애초에 왜 여성이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139)
여자에게 좋은 결혼은 없다
견뎌야만 하는 걸까?
명절을 거부하다
며느리의 몫도 탓도 아니다
관계에서 더 노력해야 할 사람, 더 적은 노력으로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식보다는 부모, 학생보다 교수, 직원보다 사장, 가부장제에서는 며느리보다 남편과 시가일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라고 외쳐야 할 방향은 아래가 아니라 위라고 믿는다. 약자들은 이미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의 안녕과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에. (159)
고부 갈등을 거부하다
여자 간의 갈등인 것처럼 말하지만 고부 갈등의 본질은 ‘며느리 찍어 누르기’와 ‘남성의 책임 회피’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프레임을 빌어다가 남성의 책임을 교묘하게 은폐하며 원래 목적인 가부장제 질서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고부 갈등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흡사 ‘남녀갈등’이나 ‘성대별’같은 단어를 만들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가리고 여성이 받는 억압을 지우는 현상과 비슷하다. 시(부)모와 며느리는 결코 대등한 위치에서 갈등할 수 없다. 진짜로 여자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은 뒤로 쏙 빠진 채 여자들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는 점잖게 싸움을 말리는 체하거나 방관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걸 얻는 모습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62)
시가와 며느리 사이 괜찮은 거리
페미 전사 꿈나무 남편
1인 1침대
결혼이 아니더라도
며느리 사표
결혼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epilogue_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가부장제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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