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노래>
1. 관계의 고통과 자유로움
행복보다 중요한 고통 / 사람 지옥 / 모든 것은 이해의 문제 / 누가 누굴 안다고 믿는 것에 대하여 /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 / 언제나 거리를 둔다 / 부부의 거리 / 기억 / 거절의 기술 / 아버지의 비밀 / 어머니의 사정 / 수정에 대하여 / 이해의 세계
질의응답
○ 일하고 나서 기분 나쁜 일을 쉽게 털어버리지 못해 스스로 병들어가는 것 같아요.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요?
● 가족은 싸우면 안 보기라도 할 수 있지만,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그만두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때문에, 막말로 때려치우거나, 그저 견디는 것 외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은데요. 다만 한 가지. 누가 내 기분을 망쳐놓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머릿속에서 계속 그 일을 곱씹는 분들이 있거든요. 정말 안 좋은 습관이 아닌가 합니다. 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정작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계속 나를 들볶는 거니까요.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번번이 들어주어야 하는 친구는 무슨 죄며, 하소연이란 그걸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 좋았던 기억이 상기되면서 기분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니 가능하면 곱씹지 말고, 억울하고 분해도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그 사람이 내게 무얼 주었든 누굴 미워하느라 고통받고 있는 내 정신과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63)
2.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선택들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 정보와 경험의 부재는 잘못된 선택을 부른다 /
내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동그라미
저도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고, 나도 좋아하는 일 한번 하면서 살아보길 바랐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아무리 카드를 할부로 긁어도 마음속 허기는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동그라미는 채우는 게 아니라 그저 안고 살면 되는 건데. 동그라미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는 건데. 그땐 그걸 잘 몰랐죠. (76)
/ 거짓말 같은 행운 / 삶의 변수로 작용하는 운과 우연들 / 정상적인 인간 /
나를 구한 선택
그러다가 서른다섯 때쯤 그런 저의 인생을 뒤흔들어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뜻하지 않게 인사동에서 와인을 팔게 된 거예요. 처음엔 경험이 없다 보니까 주위에서 컨설턴트를 만나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 사람들이 돈만 주면 메뉴고 인테리어고 다 알아서 해준다는 거였죠. 그래서 만나봤더니 뭔가 이상해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제가 한 며칠 돌아다니면서 알아본 것보다도 동네를 더 모르는 거예요. 인사동에 밤에 유동 인구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라요. 고민을 했죠. 이런 사람들을 믿고 가게를 맡겨야 하나, 하다가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부족해도 내 힘으로 한번 해보자.
어떤 사람들에겐 상투적인 문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흔한 결심이니까요. 그렇지만 이게 저에게는 얼마나 혁명적인 일이었냐 하면, 저라는 사람은 늘 세상에는 나는 모르는 정답이 따로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항상 그걸 쫓아다녔거든요. 그게 어디 있는지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어보는 경험이 저한테는 거의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거예요. 무려 35년이 걸린 거죠.
나를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자신을 한 번이라도 믿어보면 어떤 식으로든 얻는 게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가게 문을 닫고 다시 음악을 하게 됐을 때 가게를 하면서 깨달은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 적용한 것이 다섯 번째 앨범과 그다음에 낸 첫 번째 책입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됐다 싶을 때까지 무한히 작업했죠. 심지어 그때 나온 첫 책은 지금 13년째 고치고 있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했다고 해서 그게 꼭 옳은 방식이고 성공을 한다는 보장은 없겠죠. 하지만 서른다섯 살에 처음으로 제가 저를 믿어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그 뒤로도 계속 세상이라는 공장의 부품으로 살아가길 원하지 않았을까요. 그 한 번의 선택이 저를 구한 거죠. (89)
/ 가장 솔직하다는 말을 듣는 나의 거짓말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대해 /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 주먹 감자 / 선택지는 항상 넓게 가진다 / 사람에 대한 결론은 시간을 두고 내린다 / 선택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해서 하는 것 / 자유, 자유로움 / 한 사람을 살린 선택
질의응답
3. 나는 왜 쓰고 만드는가
début / 해프닝을 현실로 / 나의 글쓰기 이력 /
양의 함정
결국 자기가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 고른다는 행위, 즉 좋은 작품, 나아가 세상의 좋은 것들을 알아볼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때문에 그러한 능력, 즉 안목과 판단이라는 부분이 저는 창작 인생 전체에 걸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모든 걸 좌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7)
/ 나를 이루는 판단과 안목에 대해 / 스파링 / 구체성 / 어떤 불일치 / 내가 좋아했던 창작자들에 대해 / 취향趣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혹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 /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그러니까, 이런 제 기질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 자체에 푹 빠지는 게 아니라 그냥 단지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접근을 한다고 할까? 그래서 제가 맨날 나는 좋아하는 일이 없다, 음악이나 글이나 나한테는 똑같다, 이런 타령을 할 수밖엔 없는 게, 진짜로 음악이나 글이나 영화나 심지어 장사까지 저한테는 그 모든 일이 다 같은 일로 여겨지고 실제로 접근하는 방식도 같습니다.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죠.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나도 남들처럼 어떤 하나에 빠져들어봤으면 좋겠고 음악이면 음악, 글이면 글, 다른 창작자들처럼 내 분야에 어떤 소속감이나 애정 같은 걸 느껴보고 싶은데. 그러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같은 건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저는 그런 게 안 되더라고요. 보통 뮤지션들 보면 음악이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다 하고, 작가들은 또, 문학이 없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말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왜 나는 그 정도로 좋아하는 게 없을까. 왜 나는 이거 아니면 안 되고 그거 없으면 죽을 것 같고 그런 게 없을까.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난 빵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빵의 종류는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빵이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전혀 궁금하지 않을까. 왜 옷을 그렇게 사면서도 남들처럼 복식사나 옷 만드는 공정이나 브랜드들 역사나 이런 데는 일절 관심이 없을까.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 나는 도무지 사랑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놈인가 보다.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건 관심이고 그럼 그 대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져야 하는데, 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지가 않고, 그냥 먹으면 되고 입으면 되고 가지면 되지 다른 건 다 귀찮았으니까. 내 안엔 도무지 사랑이라는 게 없는 것만 같아서 자책하고 힘들어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그런 한탄을 하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냐, 네가 그렇게 빵을 좋아해서 죽으면 관 속에 같이 넣어달라고 할 정도로 평생 그걸 좋아하고 먹어주고 했으면 됐지 꼭 빵을 알아야 되냐. 듣고 보니까 맞는 말 같은 거예요. 그래, 사랑을 하는 데에 방식이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닌데 나는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자책을 했을까. 나는 내 식대로 내가 좋아하는 걸 대했을 뿐인데.
그때 친구들 말에 위로를 많이 받았고 그때부터 저는 저를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이렇게 내 일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비론 어느 한 가지 고정된 직업적 정체성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뭐든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 다시 말해서 창작자인 건 분명하니까 더 이상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전처럼 많이 하지는 않게 됐죠. 사람이, 자신을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건 엄청 큰 선물 같은 일이잖아요. 그때 인생의 큰 짐 하나를 던 기분이었습니다. (156)
/ 음악과 책을 만드는 일은 내게 어째서 다른 것이 아닌지 나는 왜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지 /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법
창작자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 분야의 많은 일을 경험하고 그에 관한 세부적인 부분들까지 배우고 익힐 수 있으면 당연히 좋겠죠. 내가 내 공간 속 복잡한 전선의 배열까지 직접 해결할 수 있다면 나쁠 것 없겠죠.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세부적인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일의 원리에 관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요즘 창작자로서의 수명과 정년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날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보다 더 확실한 수명 연장의 길이 뭐가 있겠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 이상의 압업이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가게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건 내 힘으로 내 공간을 직접 구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164)
/ 태어났으니까 사는 사람
질의응답
○ 창작 생활을 하다 보면 대중의 반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환영받지 못해서 기분이 처지기도 하는데 작가님은 남들의 평가를 어떻게 소화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남들이 좋아해주지 않아도 내가 만든 것을 아껴줄 수 있을까요.
● 인간의 머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훨씬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죠. 그래서 남들의 칭찬 100마디보다 부정적인 평가 하나가 그 모든걸 압도할 정도로 내 머릿속을 흔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작자 개인의 심성이 유약한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람이라 그런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방법을 쓰냐 하면, 누가 나를 평가하면 저는 그 평가를 평가합니다. 그게 내가 새길 만한 내용인지 아니면 걸로도 좋은 말인지를요.
가령 누군가 당신, 혹은 당신의 작품이 별로라고 했다고 칩시다. 그럼 그 말을 한 사람이 잘한다고 인정하는 인물이나 작품들의 리스트를 한번 보자고요. 아마 대개는 당신 역시 동의하기 어렵거나 한숨이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렇듯, 타인의 평가란 작자와의 엇갈림에서 오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그저 어떤 사람과 내가 취향이나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불일치인지 아니면 정말로 새겨들을 만한 평가인지만 가려도 많은 경우 불필요하게 신경 쓰는 일을 줄일 수 있죠.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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