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심리학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비상하는 새 2022. 6. 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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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212)

 

 


1부 노력하되, 애쓰지 말 것

 

Episode 1. 가면을 쓰고 사는 데 지쳤어요 - 낮은 자존감

 

높은 자존감이라는 허상

 

자존감self-esteem이 낮아지는 요인들은 도처에 산재해 있고, 이것은 우리 뇌에 오래도록 상흔을 남깁니다. 주요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한 뇌 영역의 회백질grey matter 부피 감소입니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으며 육안으로 관찰할 때 회색빛을 띠는 부분으로서 정서, 주의 기억, 문제 해결과 같은 다양한 기능에 관여하기에, 여러 정신건강 연구는 회백질의 부피 변화를 중요한 임상증상으로 제시합니다. 다만 회백질 부피 감소는 비교적 일관된 결과지만, 드러나는 문제는 다소 복잡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낮아진 자존감, 낮아진 성취욕구로 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를 보이고, 자살 사고와 자살 시도를 경험합니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성취를 지향하는 열망이 지나치게 끓어올라 성공이나 완벽함과 같은 특정 가치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간에, 자존감은 성취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움직입니다. (19)

자존감이라는 용어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어 오다,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심리학 영역으로 끌어들여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이때 자존감을 성취 수준을 개인의 목표치로 나눈비율 공식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를 수식화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존감 = 성취의 수준 ÷ 야망

이에 윌리엄 제임스는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공의 수준을 높이거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설명했습니다. (20)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절대적 수준의 낮은 자존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각하는본인의 자존감, 자기가치감이 낮을수록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향성은 분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기평가self-rating에 기반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럭저럭 대충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면 됩니다. 저는 강의시간에, 높은 자존감이란 착한 지도교수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 동물인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허상입니다. 물론 자존감이 높은 것처럼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매일매일 위아래로 끊임없이 요동치는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22)

최근에는 상태 자존감state self-estee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삶의 맥락과 고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자기가치감을 뜻합니다. 또한 이 말은 우리 모두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는 유동적인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태도가 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태도 전환을 두고, 또 다시 자신의 자존감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됩니다. (23)

천 개의 가면

 

나는 그렇게 부당하게 취급받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고, 이것이 나의 잘못이나 결함에서 기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을 그 나이에 알맞게, 형편없이 미숙했다.” (29)

어리고 미성숙한 주 양육자는 더 어렸던 우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그런 상황이기에 우리의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과제에 그들이실패를 한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운 나쁘게 일어난, 과거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꼭 하고 싶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들의 실패가 꼭 나의 실패로 이어져야 할까요? 그 오랜 이야기들이 오늘의 당신의 일부를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의 나머지는 어떤 모습으로 있나요? 하필이면 내게 찾아온 불운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당신과 당신의 자존감을 보살피기 위해 지금의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자존감을 높이는 몇 가지 방법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째, 가족들과 뒤엉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가능하다면 주 양육자와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성숙한 수준의 재양육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 성숙한 내면을 구축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자존감이 높은 척해야 합니다. 융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압력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 천 개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양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사회적 관계를 맺어 가는 존재입니다. 다만 이러한 페르소나와 관련한 억압, 고립감, 혹은 팽창이 병리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가면은 다양할수록 좋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자신,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의 자신은 당연히 달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집에서의 모습과 똑같은 태도로 중요한 모임에 참석했다면, 그것이 병리적인 상태입니다. 자신만 아는 자기와 타인에게 보이는 자기가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여러 모습 중에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 있음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자기 혼자서만 이 간극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낮은 자존감과 관련한 가면들은 당신과 당신의 심리치료자만 알면 족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모든 가면을 보여주고 설명하려 하지 마세요. 우리의 가면은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가식도 아니고,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위선도 아닌,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기능이고 기술입니다. (35)

 

Episode 2.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부족한 탓입니다 - 외현적 자존감과 내현적 자존감

 

발끈이라는 말의 동의어는 낮은 자존감

 

자존감은 크게 외현적 자존감explicit self esteem과 내현적 자존감implicit self esteem으로 나뉩니다. 자기선호, 자기수용, 자기가치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외현적 자존감은 타인의 눈에서 보이는 자기 모습을 자기 딴에는 합리적이고 의식적인 수준에서 평가합니다. 의도적이며 통제 가능한 명시적인 자존감이지요. (ex. 나는 그래도 이런 배경에서도 이런 성취를 해왔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외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 자기를 자신 있게 평가한다면 외현적 자존감이 높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우리의 내면에서 비의식적이고 자동적이며 암묵적 수준에 있는 내현적 자존감은 다음과 같이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첫째, 내현적 자존감은 전의식적preconscious인 특성을 보입니다. 둘째, 자동적이며 연합된 형태를 보입니다. (ex. 과거의 일과 유사한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부정적인 자기 인식 같은 것. ‘, 맞다. 내가 원래 그렇지 뭐...’) 셋째, 내현적 자존감은 재빠르게 비언어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분명하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왠지 모르게 그냥 그런생각과 이미지) 넷째, 내현적 자존감은 본인의 정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자부심, 죄책감, 모멸감, 수치심, 시기심 등 살면서 문득문득 치받쳐 올라오는 자의식 정서self-conscious emotion와 관련됨) 뚜렷한 개념적 구분과 달리, 현재까지의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 전반은 외현과 내현의 분류와 상관없이 공통된 뇌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45)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 환자의 뇌 기능 패턴을 탐색한 연구에서 도출된 두 가지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만성적으로 우울한 환자가 자신의 우울과 관련된 부정적인 단어 자극들을 처리할 때 자존감의 허브인 내측 전전두피질이 과잉 활성화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는 달리, 이 자존감 영역의 활동성은 오히려 현저히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우울한 사람들의 내측 전전두피질은 어째서 정상대조군과 달리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이 결과는 정서적으로 둔감blunting해진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우울감에 침잠해 있는 이들이 부정적 자극에 더 이상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임상증상과도 관련 있어 보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결함에 대해 지극히 자의적인 증거들을 견고하게 쌓아올린 이들의 뇌에겐, 자신과 관련한 부정적인 정보들이 새삼스럽지 않았던 것입니다. , 무력감이 깊어질 때 자기관련 정보들은 그것이 즐거운 내용이든 우울한 내용이든 간에 더 이상 뇌를 일렁이게 만들지 못합니다.(->학습된 무기력..) 두 번째로 살펴야 할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우울한 사람들이 자기관련 정보를 내현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특정 뇌 영역의 문제로 치환하여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반면 저하된 뇌 반응성 패턴과 자기관련 정보를 외현적으로 처리하는 것은 분명한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 우울한 사람들의 경우 분명 외현적 자존감과 내현적 자존감이 뇌 내에서 처리되는 방식이 다소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47)

결론은, 본인의 자존감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존감의 높낮이만 파악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외견상 드높은 자존감을 표출하고 있으나, 실제 내면의 자존감은 만성적으로 취약해져 불안정하게 표류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반대로, 표면적으로는 엉망으로 낮은 자존감을 드러낼지라도 속으로는 한껏 높은 자기과대감으로 타인에 대한 분노감이 높아져있을 수도 있습니다. (48)

 

굶주리고, 분노하고, 비어 있는 자아

 

밖으로 보이는 외현적 자존감은 너무나 낮지만, 웬일인지 암묵적인 내현적 자존감이 꽤나 높은 상태를 손상된 자존감damaged self-esteem, with high implicit but low explicit self-esteem 유형이라 부릅니다. 반면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꽤나 괜찮아 보이는데 의외로 내현적 자존감이 형편없는 상태를 취약한 자존감fragile or defensive self-esteem, with high explicit but low implicit self-esteem 유형이라 부릅니다. 이 두 가지 자존감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발현될 테지만, 상당한 분노를 마음 깊이 꾹꾹 누르며 억압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자존감 유형이 보이는 문제의 양상은 아주 다릅니다. ‘손상된 자존감유형은 그나마 내현적 자존감이 높으니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는 자살 충동이 있는 우울증 환자나 신경성 폭식증 환자들 중에 오히려 내현적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현적 자존감이 손상되어 겉으로 보기에 위축되어 있지만,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방어책이나 자구책으로 내현적 자존감을 높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취약한 자존감유형은 겉으로 보이는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달리 낮은 내현적 자존감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은 외부의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이들은 여러 형태의 성취를 이뤄오면서 그나마 외현적 자존감은 차츰 높여 왔을지라도 외부의 갑작스러운 위협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타인을 마구 경멸하고 무시하며 비난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세상이 자신의 태도에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외현적 자기애는 점점 높아지고, 자아는 과다할 정도로 팽창하고 고양됩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는 이렇게 과대한 자기애를 굶주리고 분노하고 비어 있는 자아a hungry, enraged, empty self’에서 벗어나려는 학습된 방어태세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취약한 자존감유형은 어느 자존감 유형보다도 더욱 외부의 평판에 민감하여 자신에 대한 피드백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조리 반응하려 듭니다. 내현적 자존감이 낮지만 외현적 자존감은 높아서 다른 사람의 눈에 굉장한 일을 해온 듯이 보이는 취약한 자존감유형들은 내면의 분노감을 숨긴 채로 타인에게 관대한 척하며 살아갑니다. (53)

 


 

 

2부 타인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 것

 

Episode 3. 나를 인정해줘 자기수용

 

나는 왜 나를 가만히 놔두지 못할까?

 

세상은 높은 자존감의 장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높은 자존감이라는 신화 때문에 그것이 갖고 있는 치명적이나 단점들은 많이 가려져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자존감이 가진 뜻밖의 자질들을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경우 타인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의 사회적 관계의 질은 유난히 높지도 않고, 대인관계를 특별히 오래 유지하는 경향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인해 고립되기 일쑤이고, 스스로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하는 생각으로 음주나 흡연 같이 건강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남들보다 일찍 실행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반면에 낮은 자존감을 지닌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와 피드백에 예민하고 항상 남들의 눈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염려하기에 큰 실수가 적은 편입니다. 또한 이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건 성격적 성숙을 위해서건 부단히, 그리고 부산하게, 여러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64)

내가 이렇게까지 나와 타인을 의식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왜 좀처럼 나를 진짜로쉬게 두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의 뇌는 조금도 쉬지 않고 움직이도록 만들어졌고, 자기지각 및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일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각자의 오랜 역사들로 인해, 이런 자신의 마음상태에 낮은 자존감이란 이름을 붙이고 고통스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은 본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69)

 

나와 똑같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자존감이 건강한 수준으로 높은 사람은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이에 반해 자신감만 높은 사람들은 반드시 진심은 통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자기애적 다독임에 빠져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아달라고 채근합니다.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의 자존감과 관련하여, 당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타의 모범이 되고 얼마나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이 얼마나 통하는지, 자신과 영혼이 통하는 사람과 사귀는지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 자신을 더 편안하게 좋아해 주세요. 당신이 스스로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면, 외부의 적은 절대 당신의 마음을 해치지 못합니다. (75)

 

Episode 4. 이래도 날 사랑해줄 거야? 너도 결국 떠날 거야? - 애정 결핍과 의존성

 

이제 당신이 당신을 지킬 차례

 

나는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우리는 삶의 모든 과정에서 타인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불가능한 것은 차치하고, 애당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많은 인간관계 문제는 실제로 불안정 애착에서 기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거듭해서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어떤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지 보다는, 당시를 어떤 애착관계로 규정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서 당신에게 사과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스스로 예전 상황에 대해 일관되고 성숙한 태도로 재구성하고 수용하는 것을 통해 안정 애착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 봅시다. (92)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다르다
그때의 나는 취약했지만,
지금의 나는 타인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도 충분할 만큼
적당히 불완전하고, 적당히 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예전의 그들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는 현재의 나와 나의 사람들을 지키겠다.

 

UCLA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 댄 시겔은 이렇게 애착관계를 재형성하면 뇌가 재배선rewire the brain된다고 합니다. (93)

 

 


 

3부 완벽주의적 불안에 휘둘리지 말 것

 

Episode 5.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 불안과 완벽주의

 

이만하면 괜찮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자기 평가나 그와 관련된 정서를 공적 자의식public self-conscousness’으로 분류합니다. 물론 자부심 같은 긍정적 자의식 정서도 있지만,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 자의식 정서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대인관계에서 너무 긴장하다 못해 토할 것 같은느낌마저 들고, 한번 이런 생각에 압도되면 상담기간 동안 우울과 불안을 경험한다고 보고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제는 자의식 정서가 아닌 완벽주의와 관련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연구 데이터에서 완벽주의적인 특성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자의식 정서가 우울이나 불안에 미치는 영향이 함께 사라집니다. , 문제의 기원은 어쩌면 나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묶어 버리는 완벽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양육 과정에서 우리에게 지나치게 높이 부여된 기준과 그 때문에 너무 견고해진 초자아superego, 그리고 원가족과의 역동에 따른 죄책감이나 열등감은, 우리를 지나치게 애쓰게만듭니다. 친구나 애인, 가족이나 직장동료, 그 밖에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지나친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마음을 부수어가면서까지 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114)

 

Episode 6.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또 없을 거예요 - 억울감과 외부귀인

 

억울감을 자가발전하는 사람들

 

사람의 뇌는 본래 잘되면 내 덕, 못 되면 남의 탓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본위 편향self-serving bias’라고 합니다. 구차한 변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심리적으로 꽤 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자들은 자기본위 편향이 무너지면 이것이 심리적, 신체적 질병 발생으로 이어지거나, 기존의 질병들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증거들을 제시해 왔습니다. 누군가의 평안을 위해, 혹은 관계와 관련한 왜곡된 생각들로 과도한 죄책감을 의무적이며 지속적으로 경험해야만 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기본위 편향은 점차 약화되어 자신을 지켜낼 기력을 잃게 됩니다. (124)

원망스럽고 억울하게 생각되는 일들 중에는 누구 탓을 하기에 애매한 경우도 있고, 오히려 자기 탓이었던 일도 있습니다. 설령 누구의 잘못이었대도 이제 와서 이미 소용이 없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감과 절망감, 수치심과 모멸감이 뒤엉켜 있는 기억들을 놓고 쏘~~하게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쁜 나가 아닌 불쌍한 나를 설정하는 이유는, 아무튼 살아보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비난이라도 해야 통제감 상실, 불안정감, 불안감, 열패감으로부터 자신의 주의를 돌릴 수 있을 테니까요. (125)

다만 이제 당신 에너지의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들 모두 다 아까운, 당신의 생의 에너지입니다. 그냥 다른 것을 자가발전 해 봅시다. 나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라든가, 귀여움이라든가. (129)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니다

 

그러나 사소한 사건들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억울해하는 것에 총량이 제한된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가는 이후의 삶이 실제로 억울해 질 수 있습니다. 과거의 단편들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게 만들지 마세요. 5년 후의 시점에서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내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 아니면 그 시간에 뭐라도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지 냉정히 살펴야 합니다. 설령 나를 좌절시킨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내가 그 고약한 대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어느새 은밀하게 나에게 침투해서 작동하고 있는 외부귀인의 패턴을 재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너 때문에 나는 아직 불행해!’, ‘너만 아니었으면...’과 같은 자동적인 이미지와 말들과 감정들이 당신을 관통하든 스쳐 지나가든 그저 흘러가도록 두어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얼마쯤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조하면서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한때 내 안에 떠올랐음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억지로 통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각을 억제하려 할수록 그 생각은 더 강력한 힘을 얻는다는 사고 억제의 반동 효과rebound effect of thought suppression’는 이런 수용 기법의 큰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135)

불필요한 자존심과 의존성으로 뒤엉켜 본인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어 있는 당신이 신경 써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이상적인 자기상을 세심히 파악해서 그중에 판타지 수준의 목표는 잘 찾아 떠나보내야 합니다. 이상적인 자기를 설정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하겠지만, 사실 굳이 설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이상적 자아를 설정해두었다면 그것이 현실의 자아와 언젠가는 수렴되기를 바라며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항상 하는 말이지만, 아니면 말고요.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꾸만 살피며 타인의 성과에 불편해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이십대 후반이 넘어서까지 어린 시절을 학대한 원가족에게 분노를 토로하고 있을 가치가 없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마세요. 성인인 당신이, 당신의 보호자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해 주는 사람들이 부재하다면 고질적인 외부귀인 패턴이 고착화되기 쉬우니 이 문제를 함께 다뤄줄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137)

 


 

4부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 것

 

Episode 7. 방금 한 그 말, 무슨 뜻이죠? - 날선 방어

 

자의적인 추정과 의심이 만든 퍼즐 놀이

 

날선 방어에 급급한 사람들이 빈번히 겪는 문제는 정보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하면서 생각이 갑자기 비약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중립적인 이야기에서도 부정적인 의도를 읽어 내는 오귀인, 아무 의미 없는 우연한 사건을 놓고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 넘겨짚는 관계사고 역시 마음이 지쳐있는 일반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증상입니다. 아무런 실체도 근거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믿음은 신앙처럼 단단합니다. (146)

더구나 여기에 해당되는 뇌의 영역들은 정서를 처리하는 역할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서 사고는 단순히 사고에만 그치지 않고 감정적 고통감이 가중됩니다. 화가 날 때 유독 잘 작동하는 작업 기억working memory도 문제입니다. 경험한 것을 잠시 동안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작업을 통해 결과물을 내어놓는 이 작업 기억은 암산 문제를 풀거나, 상대방의 대화를 기억했다가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 등 일상의 모든 순간 흔히 발휘됩니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정서를 표현할 때 이 작업 기억이 더 잘 유지되기에, 분노에 취해 있는 사람은 방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넘겨짚는 버릇과 과거의 기억, 부정적인 감정이 멋대로 뛰어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불필요한 퍼즐놀이를 있는 그대로 잠시 바라보다가 이어서 단호히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나의 존재나 가치감을 누군가 건드린 것 같아 불쾌한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면 , 나 또 이러고 있네하고 세상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정도 아니에요. 설령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빈정거리더라도 그런 이야기들로 당신의 가치가 훼손될 수 없음을 나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알리세요. 그 무례에 기꺼이 휘말려 들지 마세요. (151)

 

나의 버튼이 눌리는 지점

 

Episode 8.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우울감과 삶의 의미

 

가 아닌 어떻게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앞으로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고, 앞으로도 여전히 인생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의 패턴은 전형적인 우울의 증상입니다. 우울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믿음이나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느낌, 행복한 삶에 대한 갈망. 이런 우울의 증상들은 뇌에 흔적을 남깁니다. 주로 기억을 담당하는 양쪽 해마의 부피가 현저히 줄어든 것을 확인했고, 해마뿐 아니라 편도체 및 전전두엽의 부피 감소도 여러 차례 검증되었습니다. 그런데 편도체의 부피가 줄어든 사람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에 주목할 만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SNS 중독입니다. 우울이나 자살 시도가 뇌에 상흔을 남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주하기 고통스러운 사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의 영역에서 건조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흔적을 옅게 하는 방법을 찾는 일 역시 과학의 영역이었으며, 많은 연구자들은 전전두엽과 편도체와 해마의 부피를 증가시키거나 해당 영역의 활동성을 높이는 요인들을 탐색해 왔습니다. 그 요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공부
항우울제 복용
그리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제대로 된 심리치료

압도적인 무력감과 무망감은 우울한 사람을 계속해서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데, 내가 빨려 들어가는 깊이를 모르는 어둠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고 내가 딛고 서 있는 발판을 아래로, 더 아래로 무서운 속도로 낮추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최소 몇 주씩은 노력을 해야 희미한 성과 하나가 보일까 말까 하는 일에 사력을 다해 공을 들이는 과정은 정말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 해야 하지? 이 사람은 왜 나더러 살라고 하지?’를 고민하지 마세요.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지?’가 맞는 질문입니다.

규칙적인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앞으로 꾸준히 공부를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지?
항우울제 복용은 어떤 병원에서 시작하지?
심리치료는 누구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보지?

?’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171)

 

당신의 우울은 어떤 종류인가요?

 

최근의 치료 트렌드로는 우울에 맞서 당당히 싸우겠다!’는 아니며, ‘, 왔어?’가 꽤 괜찮은 답입니다. 우울을 맞아들이면서 당신은 다음의 두 가지를 함께 궁리해야 합니다.

우울의 원인을 탐색하기
나의 기분을 좋게 할 것을 찾기 (177)

 

5부 당신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것

 

실패에 우아할 것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를 정하기엔 힘이 약합니다. 당신은 실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지요. 그러나, 지옥 같았던 상황과 당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들을 지금 다시 만나게 된다 해도, 그때만큼 당신에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나와, 나의 강점과, 취약점과 행복을 느끼는 지점들에 대해 계속 배우면서,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습니다. 이제 나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만큼, 그리고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나는 점차 어른이 되고 있었습니다. (195)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당신이 아무리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관대해져도 당신은 여전히 노력할 것이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천성이 그렇습니다. 이제는 당신 자신을 조금은 멋대로 둬도 되고, 더 수용해 주고 이해해 줘도 됩니다. 애인이든 치료자든, 누군가가 얼마 동안 당신을 안전하게 안아주며 토닥여준다면 그것도 참 좋겠지만, 그럴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안 되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계속해서 알아주면 돼요. 잘하고 있지, 너 잘하고 있지, 하며.

너 잘하고 있지, 잘해 왔지.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건 내가 알지. (206)

희생자 역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생각의 침투현상으로 쉽지 않긴 하다
원가정으로부터 받은 학대를 기억하고 싶지 않고 
현재의 내 삶의 에너지도 앗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츰 흐려지게, 과거에 대한 분노가 떠오르면 그저 바라보고 인정해줄 것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는게 참 어려웠는데
그래도 조금씩 노력하니까 나아지고는 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나아지면 그걸로 된 거다
나이지지 않으면 또 어떤가!
힘을 좀 더 빼고 유연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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