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심리학

<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비상하는 새 2023. 9. 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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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프롤로그 | 이것은일어나는 법에 관한 이야기

나는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태도가 오히려 삶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삶을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Part 1 코끼리와 함께 산다는 것

무기력이 삶을 덮칠 때 _내 안의 코끼리를 마주하다

우울증은 매우 고통스럽다. 특히 무엇이, 왜 그토록 아픈지를 알지 못하면 고통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터무니없게 들릴지라도 내 상황을 설명해 줄 만한 것이라면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이 남자만 설득하면’, ‘이 시험만 통과하면’, ‘내가 지금 이 곳이 아닌 저곳에 있으면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울증은 감정이 아닌 질환이기 때문에 삶의 다음 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 상태에는 변화가 없었다.

경험상 일단 ... 만 하고 나면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다. 삶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바뀌고, 그중 무언가는 언제나 (아직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자신의 삶과 거기 내포된 행복감을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말과 함께 항상 미루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혹은 아끼던 기니피그가 죽어서 슬픈 사람은 가슴에 아주, 아주 강한 통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내가 우울할 때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이 앞으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과 내가 그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는 기분 또한 동시에 느낀다.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든 기분이기에, 내 영혼은 때때로 완전히 닫힌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면 그 고통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 외의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나의 내면은 이미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어서, 만약 내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죽고 싶다는 감정밖에 없을 정도가 된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정답이다 _감정 사용 설명서

나는 우울할 자격이 없어 _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

아마도 나와 부모님의 머릿속에 똑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정신적 질병에 관련한 편견과 오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에게나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다. 그렇다고 그게 질병은 아니다. (맞는 말. 하지만 오랜 시간,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좋지 않다면 질병이 맞을지도)
둘째, 기분이 자꾸 처진다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긴장을 이완해야 한다. 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힘을 내야 한다. (맞는 말일 수도. 그저 기분의 문제라면 이 방법들이 기분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우울증이라면, 그럴 수 없다)
셋째, (, 연인, 아름다운 집, 좋은 성적 등)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기분이 가라앉을 이유가 없다. (맞다. 바로 그 때문에 그저 나쁜 기분이 아닌 질병이라는 것. 질병은 그저 생기는 것이지,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님)
넷째,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 또는 심리적 질병이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고통과 질병이라는 것이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긴장을 이완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 (이 문장은 자신이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섯째,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트라우마도 없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을 리는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많은 경우 정신적 질병에는 특별한 원인이 없으며 급성 유발 인자조차 없는 경우도 간혹 있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환자 간의 경계는 개인마다 고통과 도움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정신과적 진단은 무엇을 질병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의 관습을 토대로 의사와 환자 간의 협상으로 이루어진다.

늘 편두통과 함께였다 _심리 상태와 통증과의 상관관계

원인들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한 편두통 클리닉에서 어떤 의사에게 들었던 비유를 좋아한다. 그는 편두통 환자를 그릇에, 모든 편두통 유발 요인을 물이 담긴 컵에 비유했다. 컵에 담긴 물을 차례대로 그릇에 부으면, 언젠가는 그릇이 넘치고 환자는 편두통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에 부은 물 컵을 편두통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편두통 환자의 목표는 그릇을 넘치게 한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그릇의 수면, 즉 스트레스 수준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고통이 참기 어려운지 혹은 견딜 만한지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가 왜 아픈가를 아는지의 여부다. 몸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이유가 불분명할 경우 의사가 무슨 일인지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치료될 수도 있다. 통증이 지속되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금세 사라질 확률이 높은 통증은 항상 느껴지거나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보다 더 견딜 만하다. 후자는 의학용어로 만성화라고 한다. 한 통증 클리닉에서 참석했던 통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도중에 한 환자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이 정도의 두통에 어떻게 대처하는 걸까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상담사의 답변은 놀라웠다. “지속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 통증에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더 민감해집니다.”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균형을 잡으려면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보는 대신 시선을 늘 앞에 두고 유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을 당뇨나 천식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병이 생겼나?’라는 질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현재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이 문제에 대처할 방법은?’일 것이다.

 

Part 2 삶은 침대 밖에 있으니까

그렇게 또 균형을 찾는다 _심리치료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어떤 상담 방향이 가장 효과적이냐는 질문에 학계는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방법을 불문하고 심리상담이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확실한 근거를 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환자와 상담사의 좋은 관계가 치료의 성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입증되었다.

심리치료는 아프기 이전의 삶을 되찾아주는 신속한 수선이나 수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내 말을 믿어주길 바란다. 나도 이 말이 틀리길 바랐다). 그보다는 감정적, 지적 체조와 같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이 충분한 치료를 받은 후에 혼자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을 먹어도 될까 _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난 당신의 상담사가 아니야 _우울증을 겪는 이가 곁에 있다면

우울한 상태의 반대말이 꼭 인생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우울한 상태의 반대는 삶을 느끼는 것이다.

그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라고 당사자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 심지어 단호하게 최후통첩을 날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네가 스스로 상담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한, 나도 몇 시간이고 자살에 대한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야.” 그 대신 상담소를 찾거나 진료 예약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끝까지 전문가의 도움을 절대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서 그 구멍을 메워줄 의무는 없으며 선을 그어야 한다. 질병에 대해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치유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도움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고, 안심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난 당신의 상담사가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꺼이 당신을 상담사에게로 데려다줄 수 있어.”

 

Part 3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유산의 경험 _감정에 충분한 공간을 내어줄 것

감정에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준다면 아무리 최악의 감정일지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검은색도 하나의 색이다 _슬픔의 속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 _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트라우마

하지만 사실은 다시 흥분해야 한다. 기억과 함께 번뜩이며 떠오르는 것, 심장을 자극하는 것, 배를 뒤트는 것은 그 감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요구하는 몸의 반응이다. 거기에 아직 마저 다 느끼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 블루와 우울증 _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것

 

Part 4 가끔 행복했고 자주 우울했던 이들에게

나와의 거리 두기 _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법

할 수 있어하고 싶지 않아” _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난 할 수 있어.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해방인 것.

또 하나의 모험 _우울증에 걸린 채 엄마가 된다는 것

나에겐 분노가 없다 _딸의 ADHD를 눈치채지 못한 이유

죽고 싶다는 생각 _자살 충동은 내 상태를 알려주는 지표

 

에필로그 | 다만 조금 불안정할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질병을 성격의 한 측면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중요한 측면이긴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하나의 단면으로 말이다.

나는 늘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쓰려면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질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수단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독자들에게 우울증 없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고, 대신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나는 내 질환을 전혀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에 지배당하지도 않는다. 대신 내게는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때가 되면 나와 내 상담사, 의사는 내게 무엇이 도움이 될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그 증상이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살아내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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