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단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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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친 게 아니라 우울한 거야
하노버 의과 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쇼핑 중독자 대부분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 연구는 ‘구매-쇼핑 장애 BSD(Buying-Shopping Disorder)’를 주로 다룬다. 이는 쇼핑에 사로잡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를 겪는 사람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그리고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물품을 산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기쁜 일이 생겼을 때나 나쁜 기분을 없애고 싶을 때, 혹은 자기 불일치 self-discrepancy를 해결하기 위해 산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현상을 겪는 이들은 자기조절 self-regulation 능력이 높지 않기에 돈을 많이 벌어도 과잉 지출을 계속하며, 물건을 병적으로 모으기도 한다. 현재는 이를 질병으로 정식 분류하지는 않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 질병과 증상 등을 분류한 국제 질병분류인 ‘ICD-11’의 임시 범주에는 포함되어 있다. (28)
# 불안은 소비를 불러온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으로 불안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불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찾다 보면 결국 ‘나는 왜 지금 돈을 못 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곤 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잉여 인생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 기저에 있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계속되면 마음에 병이 찾아온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지금 여기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프리츠 펄스가 창시한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욕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를 때가 많다.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기 어려운 내적, 외적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외부 자극에 사회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고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지금 여기, 즉 현재에 집중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90)
# 나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
늘 현재에 집중하지 않았다. 지금은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내가 하는 일, 내 주변 사람들에 집중하지 않았다. 무지개를 바라보듯, 이상을 꿈꾸며 살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대학 시절, 이집트에 한 달 반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그 더위 속에서 내가 침대에 앉아 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황당하다. 나는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 아랍어를 배우려고 잠시 이집트에 간 것이었고, 6개월 뒤에는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 당시 고민은 아랍어나 이집트 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라 6개월 뒤 한국에서 할 일에 대한 것이었다. 옆 침대를 사용하던 한국인 언니가 내 고민을 듣고 지은, 굉장히 어이없어하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이집트가 아닌 6개월 뒤의 한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진지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돌아간 뒤, 고민했던 부분대로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그렇게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나는 늘 불안을 안고 살았다. 현재 내 모습이 꿈꾸던 이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늘 꿈을 꾸기만 하는 사람은 그 꿈이 실현되지 않으면 절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아프게 된다. 나처럼.
꿈이 있는 것, 이루고 싶은 미래가 있는 것은 좋다. 그러나 ‘매일 살아내는 삶의 합이 내 인생’이라는 말처럼, 내가 살아내는 현재와 순간들이 결국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원했고, 그 능력이 있어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을 꿨다. 따라가면 멀어지는 무지개처럼, 희미해지는 꿈을 좇으며 절망했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 느끼는 것 모두 무시한 채 달려왔다. 이제야 나는 현실을 직시한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부끄럽다고 여긴 내 모습을 바로 본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위해서. (93)
#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감사하는 마음과 감사일기에 대해 조사해봤다. 이 둘의 긍정적 효과를 다룬 연구들이 존재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감사를 하면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늘고 자존감도 올라간다고 한다. 감사를 하면 긍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연히 삶의 좋은 부분에 집중하게 되므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방법이나 도움을 더 잘 요청한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며 생긴 질투나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준다고 한다. 감사는 타인의 선함에 집중하는 행동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질투의 감정들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는 ‘유물론적 갈망’을 줄여준다고 한다. 감사와 유물론(물질주의)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감사는 개인과 그 관계 등이 나아지는 것에 성공의 초점을 맞추지만,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에 기초해서 본다. 유물론적 갈망이 높은 사람은 삶에 대한 만족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낮고, 높은 우울증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해 감사는 유물론적으로 삶을 평가하는 행위(돈을 많이 벌고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등의 생각)을 줄여준다. 감사하는 마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나누는 것을 즐기고, 삶의 성공이 물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132)
# 나이로비에서 돈을 쓰지 않는 이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나는 세 가지 노력을 했다. 첫 번째는 앞에서 소개한 감사일기 쓰기다. 기록을 남기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긍정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내 주변 환경을 강제하는 것이다. SNS 줄이기.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친구들과의 만남 줄이기 등이다. 내 자존감이 낮아질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세 번째는 “그럼 뭐 어때” 하고 생각하기다. [에고라는 적]에 따르면 결국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거나 가리려고 하는 것은 모두 내 자아ego가 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렇게 입고 가서 없어 보이면 어쩌지? 좋은 식당에서 비싼 밥을 사지 않으면 쪼잔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모든 생각이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괴롭히던 내 정체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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