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쪽) 부엌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과 관계맺음에서 부엌이란 말뚝과 거기 묶인 줄을 누구도 시원스레 제거하지는 못했다. 왜 말뚝이냐 하면, 부엌에 있지 않더라도, 부엌에 있을 필요가 없더라도, 부엌에 있어야 할 존재라는 사회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부엌에서의 역할을 기대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소위 ‘바깥일’을 하더라도 부엌과 관련한 수발노동을 요구받거나 부엌일을 하는 존재에게 ‘큰일’을 맡길 수 있느냐는 평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10) 시간과 장소는 인간 삶에서 중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하루는 24시간이라지만, 누구나 24시간을 공정하게 누리지는 않는다. 누구는 각종 수발노동을 받아 가며 24시간의 몇 배를 누릴 수 있고, 누구는 각종 수발을 바치느라 자기 시간이란 걸 못 가질 수..